(편집 : 장기풍)
“하느님 사랑의 표징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교종, 1월1 6일 연중 제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16일 낮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연중 제2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우리가 복음서에서 읽는 표징들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실마리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이날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가나안 혼인 잔치에 관한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표징이 어떻게 제자들의 믿음에 불을 붙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복음서에 나오는 표징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단서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서에 묘사된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의 ‘포도주의 기적’(요한 2,1-11) 표징은 예수님의 놀라운 힘보다는 기적을 낳게 한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주의를 이끕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항상 우리와 가까이 있고, 부드럽고, 동정심이 많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밀하고 신중하게 행동하셔서 혼인 잔치가 난처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구해 주셨고 이 문제를 조용하게 예수님의 개입으로 이끄신 분은 성모님이었습니다. 주님은 난처한 상황을 문제로 만들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개입하셨습니다. 하인들이 물로 항아리를 채우게 하시고 이를 포도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 단순하지만 놀라운 표징은 ‘하느님이 어떻게 가깝고 은밀하게 행동하시는지’ 보여주며, 그 순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예수님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첫 번째 기적은 특별한 치유가 아닌 인간의 필요에 대한 간단하고도 구체적인 응답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행동하시기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가나안에서의 마리아처럼 그분께 간구한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를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표징’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분의 사랑에 정복되어 그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는 또한 포도주가 된 원래 물의 질은 일반적이지만 하느님 표징으로 변화되었을 때는 더 높은 질로 바뀐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은 것을 원하시며 제한이나 요구사항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기쁨이 희석되지 않고 완전하도록 보장하는 방법을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순간에 처하더라도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 사랑의 표징을 찾으십시오. 우리의 어려운 순간에 주님께서 우리 삶에서 어떻게 일하시고 우리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기억하거나 발견하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까우심과 부드러움에 대한 개별적이고 사랑스러운 표징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으로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와 마리아의 전구를 체험한 순간을 되살리면서 가나안에서처럼 항상 세심하신 어머니께서 우리 삶에 하느님 임재의 징표를 소중히 여기도록 도우소서. 아멘”
“브라질 홍수 희생자들 위해 기도”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후 최근 몇 주 동안 브라질 10개 주에 걸친 집중호우에 의한 홍수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했다. 교종은 “저는 최근 몇 주 동안 브라질 여러 지역에서 폭우와 홍수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가까이 있습니다. 특히 희생자와 그분들의 가족, 그리고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구호에 힘쓰는 모든 분의 희생과 헌신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한편 브라질은 최근 10개 주, 특히 바이아와 미나스제라이스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며, 25명이 사망하고 집, 학교 및 기반 시설 파괴로 피해지역 주민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브라질은 2019년 1월 25일 270명이 사망한 브루마지뉴 댐 붕괴의 영향으로 이번 홍수에도 10만 명이 넘는 주민들에 경보를 발령한 파라지미나스 인근 우시나 데 카리오카 댐을 포함해 브라질 전역 42개 댐에 대한 공포심도 높아지고 있다. 역사적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오루프레투에서는 1800년대 식민지 시대 건물이 토사와 진흙으로 무너졌으며, 현재 374개 도시에서 비상 상태로 305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에 가톨릭 국제 카리타스는 브라질 카리타스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지원에 나섰으며 미국과 유럽연합도 응급 지원을 결정했다. 유럽연합은 우선 100만 유로를 긴급 지원금으로 보냈다.
“모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에 참여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16일 삼종기도 마무리 후 전 세계 기독교 신자들을 향해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임을 상기시키면서 종파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주간만큼은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투쟁과 기도에 전념하라고 초대했다. 교종은 이 기간 모든 그리스도인은 메시아이신 왕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에서 베들레헴으로 온 동방박사의 경험과 관련된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주제에 맞추어 묵상하게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교종은 성서 말씀과 유사하게 다양한 배경과 전통을 가진 모든 기독교인은 ‘완전한 일치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이며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치를 위해 기도하면서 각자의 투쟁과 고통을 바칠 때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바티칸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평의회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자료를 발표했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일정과 묵상주제”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18일부터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맞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로마 시내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저녁 기도로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바티칸 전례사무국이 1월 14일 발표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종은 좌골신경통 악화로 2021년 행사를 주재할 수 없었다. 올해 주제는 삼왕 또는 동방박사의 경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바티칸 그리스도교 일치 촉진평의회와 함께 중동교회 평의회에서 선택했다. 일치주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태오복음 2장 2절부터 12절까지의 내용의 전체 또는 특정 주제에 대해 매일 묵상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일치 주간 동안 매일의 묵상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날(1월 18일)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2절)
둘째 날(1월19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2절)
셋째 날(1월20일)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3절)
넷째 날(1월21일)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6절)
다섯째 날(1월22일) “동방에서 본 별이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9절)
여섯째 날(1월23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11절)
일곱째 날(1월24일)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11절)마지막 날(1월25일)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12절)
“복음 증거와 자비의 행위에 뿌리를 두고 나아가십시오.”
교종, 수도회 총회 마무리하는 레귤러 성직자 회원들 격려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15일 수도회 총회를 마무리하는 레귤러 성직자회(테아티노) 회원들을 만나 그들이 기도, 경배, 공동생활, 형제애를 기초로 빈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성령께 열린 마음으로 전진하도록 격려했다. 레귤러 성직자 수도회는 성 카제탄 잔 피에트로 카라파(바오로 4세 교종)와 보니파시오 드 콜레, 파올로 콘실리에리가 가에타노 티에네와 함께 1524년 9월 24일 복음을 충실히 따르고, 거룩한 교회법을 준수하며, 형제적 생활을 하는 성직자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수도회를 설립했다. 레귤러 성직자회는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고 설교와 병자를 돕고 최악의 상황에 빠진 성직자들의 신분을 개선하는 목표에 따라 세 가지 서약과 규범을 준수하고 형제적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회로 클레멘스 7세 교종에 의해 1533년 정식 승인되었다. 수도회는 처음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1530년 가에타노가 총장에 선출되면서 크게 변화되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레귤러 성직자회 164차 총회를 맞는 수도회를 환영하면서 그들이 이 긴 역사 동안 하느님 섭리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를 회고했다. 교종은 이번 총회 주제에 대해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를 포함하는 복음화를 위해 세계로 뻗어가는 ‘선교’와 ‘파견’을 강조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자선을 통해 영적인 삶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표현했다.
말씀 요지.
여러분의 ‘살아 있는 복음’으로서 개인의 성덕을 위해 노력하고 교회개혁에 기여한 증언을 높이 평가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개인과 공동체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인 ‘살아 있는 복음’을 교회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는 우리 모두가 본받도록 부름을 받은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영적인 역동성으로 다양한 방법을 찾은 성도들에게서 배우면서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증언들을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테아티노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오늘날의 도전에 대응해 카리스마를 실천하는 방법에 집중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의 기초인 성 카자탄이 강조한 가지 측면, 즉 개혁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카자탄 성인의 초기 경험을 회상하면 성인께서는 그 시대의 만연한 영적, 도덕적 타락을 보면서 자신의 기도와 영적 양성을 발전시킨 다음 병원에서 병자들을 보살피러 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들이 교회의 ‘진정한 개혁가’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깊이 있고 일관성 있게 살 것인지 묻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신앙여정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테아티노가 논의하는 두 번째 목표는 친교입니다. 성 카제탄의 증언을 떠올리면 그는 자신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사도들을 본받아 복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같은 사명을 가진 일반 성직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영웅적인 예가 많지만 기독교 공동체생활은 서로에 대한 보살핌, 지원, 연대의 일상적인 많은 작은 몸짓과 외부의 사역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몸짓으로 구성됩니다. 그들은 서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지역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가십의 피해를 항상 피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테아티노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를 더 잘 선포하고 살기 위해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기 위해 선교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테아티노가 이 길을 계속해서 걸으면서 서로와 교회를 섬기며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이러한 열정과 봉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기도와 경배, 공동생활과 형제애, 빈곤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의 본질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면서 유연하게 어떠한 경직성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성 가에타노는 저의 조국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복음화했으며 8월 7일 그의 축일은 이 도시의 큰 행사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성 가에타노를 ‘빵과 노동의 수호성인’으로 숭상하고 있습니다. 친교와 선교에 대한 여러분들의 여정과 헌신에 저는 테아티노 사람들과 동행하기 위해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전구를 위해 기도를 드립니다.
“경제는 이윤이 아니라 사람과 지구에 대한 봉사”
교종, 팬데믹 이후 미래에 관한 바티칸 온라인 회의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12일 바티칸이 개최한 ‘팬데믹 이후 미래에 관한 회의’ 참석자들에게 세계 경제를 통해 사람과 지구에 봉사하기 위한 구체적인 약속을 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회의는 바티칸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와 코로나19 위원회 및 다국적 전문 서비스 네트워크인 딜로이트와 함께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재생 가능한 경제구축의 미래를 준비하다’라는 주제로 화상으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비즈니스, 금융, 개발 경제학 및 학계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자연, 사람, 사회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제안했다.
교종 메시지 내용.
“우리는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미래에 대비하는 바티칸 코로나19 위원회 역할이 막중합니다. 코로나19 위원회는 ‘가장 좋은 과학과 복음의 현실주의,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접근방식을 변경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류는 새로운 불의와 불평등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공평한 백신 배포, 빈곤의 증가, 무기 거래, 환경이 직면한 위협에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대원칙에 대한 의도 선언이나 메시지’를 공개하는 대신 오히려 비즈니스 리더들이 성공의 척도를 이윤 확장과 단기수익이 아닌 ‘극도의 빈곤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수’로 재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와 금융이 사람들과 우리의 어머니 지구에 봉사하도록 구체적인 약속을 하고 역할을 다할 것을 촉구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모든 사람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일깨우고 우리 모두가 다른 미래를 준비할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희망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바티칸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의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은 참가자들에게 “이번 대유행은 인류가 ‘현재의 생활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고를 받은 가장 최근의 것일 뿐이며, 평소와 같은 비즈니스 사고방식을 버리고 점진적이고 일차원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할 것을 촉구하는 또 다른 경종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체르니 추기경은 “미래의 변화에는 지금 창의성이 필요합니다”라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창조적 정신을 일깨울 수 있다고 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를 되풀이했다. 그는 또한 교종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 평화롭게 함께 살도록 근본적이고 총체적이며 체계적인 변화를 향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바티칸 이주민 및 난민위원회 차관 파비오 바지오 신부는 이민자들은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정부가 이민자를 사회에 완전히 통합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이민자들의 잠재력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바지오 신부는 “오늘 올바른 선택을 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주 흐름의 글로벌 거버넌스, 모든 나라의 필요와 기회에 주의를 기울이는 다자간 대화, 인도주의적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공동책임, 문화 간 응집력 있는 사회구축을 선택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총무 알렉산드라 스메릴리 수녀는 회의 마무리에서 평화, 행동, 언어, 상호연결과 보살핌이 경제시스템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스메릴리 수녀는 “우리가 성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평화와 경청에서 시작해 식별에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행동의 상호연결이 중요하며, 우리는 혼자 구원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보살핌의 구체적인 행동과 우리가 먼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시스템을 비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바티칸 통신부 편집국장 알레산드로 지소티가 진행했으며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현악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막을 내렸다. 바티칸 홍보부는 보도자료에서 참가자들이 모두 다른 종류의 경제모델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역은 하느님 말씀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교종, 프랑스 ‘가톨릭 액션’ 회원들 접견하고 격려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1월 13일 바티칸을 순례한 프랑스 가톨릭 운동 회원들을 만나 하느님의 말씀이 모든 가톨릭 사역의 뿌리며, 청사진이라고 강조했다.
연설 내용.
가톨릭 운동 프랑스 회원들이 교종을 만나러 바티칸을 순례한 것은 약 100년에 달하는 여러분의 오랜 전통입니다. 여러분의 이번 바티칸 순례의 주제는 ‘오늘의 사도’라고 들었습니다. 주제에 맞게 오늘날 효과적인 사도가 되라는 소명에 대해 숙고해보기로 합시다.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함께 걸을 때 그분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은 경험한 일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 사건에서 하느님의 임재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함으로써 행동을 시작합니다. 이는 즉,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세 단계를 말해줍니다. ‘보는 것’이 첫 번째 기본 단계입니다. 기독교인의 보는 것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사건, 우리의 역사, 가족, 문화와 기독교적 뿌리를 구성하는 사건을 관찰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관찰한 것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강조한 것처럼 기억은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 판단하거나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과 도전을 허용하는 순간입니다. 이 단계의 핵심은 ‘성경에 대한 언급’입니다. 즉, 자신의 삶이 하느님 말씀의 정밀한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문제입니다. 세상과 우리 삶의 사건과 하느님의 말씀 사이의 만남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호소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톨릭 운동은 경험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으로 특히 집단생활을 통해 진정한 시노드 실천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교회도 시노드 과정에 돌입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여러분의 기여가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시노달리타스는 의회방식으로 단순한 토론이나 과반수 합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채택되어야 하는 스타일이며, 주인공은 성령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함께 나누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 행동은 복음이 가르치는 방법대로 항상 하느님의 주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역할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행동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불과 몇 년 전과도 같지 않습니다. 오늘날 특히 유럽에서 기독교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도에 대해 더 회의적이며 덜 까다롭고 덧없는 관계를 추구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정서성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보다 더 취약하고 더 연약하고 믿음에 덜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의미와 진리를 찾고 덜 관대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운동은 신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이들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와 이웃 사랑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가톨릭 운동의 사명입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삶과 교회에서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구체적 헌신이기도 합니다.
“성 요셉처럼 자식을 위해 도전하는 부모가 영웅입니다.”
교종, 바티칸 미디어와 인터뷰, 성 요셉의 아버지들에 대한 모범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티칸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인터뷰에서 성 요셉은 오늘날 아버지들에게 강인함과 부드러움의 본보기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성 요셉에게 헌정된 특별한 해는 2021년 12월 8일 끝났지만, 요셉 성인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관심과 사랑은 끝나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는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을 통해 성 요셉의 역할과 모범에 대해 계속 강조하고 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지도 2021년 내내 성 요셉에 대한 월간 특집을 발행해왔다. 성 요셉에 관한 사도서한의 각 장에 초점을 맞춘 ‘Patris corde’(아버지의 마음)라는 제목의 특집은 성 요셉의 아버지로서의 ‘부성’은 물론이고 마리아와의 이상적인 대화에서 어린이와 어머니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아버지의 다양한 측면, 도전과 복잡성에 대한 주제를 공부하고 싶은 열망을 일으켰다. 이날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친밀감, 오늘날 자녀에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교회의 포용을 보여주었다.
인터뷰내용.
질문: 교종님은 성 요셉에게 헌정된 특별한 해를 선포하셨고 성 요셉에게 편지를 쓰셨으며 그에게 헌정된 일련의 교리교육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성 요셉은 교종님께 어떤 의미입니까?
교종: 저는 성 요셉에 대한 친밀감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성 요셉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키워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아름답고 단순한 방식으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대표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셉은 평범한 사람이고 그의 거룩함은 그가 경험하고 직면해야 했던 아름답고 추한 것들을 통해 자신을 성인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서, 특히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에서 성 요셉이 구원이야기 시작의 중요한 주인공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 탄생 사건은 난관과 문제와 핍박과 흑암으로 가득 찬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은 세상에 나실 아들에게로 오시기 위해 마리아와 요셉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말씀으로 지으신 육신을 낳은 분이라면 요셉은 그를 보호하고, 양육하고 자라게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어려운 시대의 사람, 구체적인 사람,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 요셉에는 두 가지 특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의 현저한 영성은 꿈의 이야기를 통해 복음에 반영됩니다. 이 기록은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줄 아는 요셉의 능력을 증명합니다. 기도하는 사람, 강한 영적인 삶을 가진 사람만이 우리 안에 거하는 다른 많은 음성 가운데 하느님 음성을 분별할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요셉은 구체적인 사람, 즉 문제에 직면해 있는 현실적인 사람이며, 어려움과 장애물에 직면했을 때 희생자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신 그는 항상 반응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창의적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습니다.
질문: 이 큰 시련의 시기에 성 요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어떠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교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고, 많은 가족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많은 사람이 죽음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쫓기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매우 어려운 시기, 이 어두운 순간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를 격려하고, 돕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요셉은 암울한 시대에 밝은 증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에 그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두어 다시 길을 찾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성 요셉 축일인 3월 19일 교종님의 성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종: 저는 3월 19일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성 요셉이 계속 저를 도와주고 제 옆에 있을 것이며, 제가 그를 의지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친구로 계속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위해 중보하고 기도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과의 친교에서 오는 이 관계는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 요셉에게 헌정된 해가 추상적인 친교가 아니라 구체적 관계로 자신을 표현하고 구체적 결과를 가져오는 구체적 친교의 심오한 가치를 많은 그리스도인이 재발견하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질문: 우리 신문의 ‘Patris corde’(아버지의 마음) 특집에서 성 요셉에게 헌정된 특별한 해에 우리는 성인의 삶을 아버지의 삶과 얽혔지만 오늘날 아이들의 삶도 엮었습니다. 오늘의 어린이, 내일의 아버지는 성 요셉과의 대화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교종: 한 사람은 아버지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확실히 어린이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려해야 할 첫째 사항입니다. 즉, 우리 각자는 삶이 우리를 위해 남겨둔 모든 것을 제외하고 무엇보다 먼저 그들을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관계에서 오는 누군가에게 맡겨진 아들이나 딸이라는 것입니다.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갖고 자신의 삶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날, 즉 우리가 아버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날이 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겪은 경험을 함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우리가 경험한 아름다운 것들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 이 개인적 경험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요셉이 예수님과 맺은 친자관계가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예수님 설교도 아버지에게서 정확히 가져온 이미지와 참조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하느님과 인간의 친자관계에 대한 경험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그토록 좋은 아버지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사람의 사랑과 부성애에서 그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언급을 발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미래의 아버지가 될 오늘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어떤 아버지가 있었고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역할을 우연의 결과나 단순히 과거 경험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누군가를 책임지는 방법을 자각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질문: ‘Patris corde’(아버지의 마음) 특집의 마지막 장은 요셉을 그림자 속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선물할 줄 알면서도 아이가 자유롭게 자라게 하는 아버지. 공간과 시야를 차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상을 주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이 이 사회에서 가능할까요?
교종: 아버지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측면 중 하나는 ‘참 자유’입니다. 사랑은 항상 자유를 만듭니다. 사랑은 감옥,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소유하지 않고, 조종하고 싶지 않고, 그의 사명을 방해하지 않고 예수님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자신의 아름다움, 독특함, 선택, 소명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적절한 시기에 자신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좋은 관계에서 과도한 주인공으로 장면을 완전히 채우고 높은 곳에서 이미지, 기대, 실제로 가시성을 부과하려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 발 물러서는 법을 아는 완전히 ‘요셉과 같은’ 특성, 두 번째 자리에도 빠질 수 있는 겸손은 아마도 요셉이 예수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가장 결정적인 측면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셉은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전기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특정 시점에서 그는 예수님이 그의 모든 직업과 모든 사명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스스로 물러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미지에 직면해 우리는 한발 물러서서 다른 사람, 특히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기준점을 찾도록 허용하지만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는 방법을 알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질문: 교종님은 오늘날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사회의 기본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다시 강화하기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교종: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어머니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 관점은 생명을 낳고 중생시키는 자비, 곧 사랑인 교회의 모성을 행사하는 길이기 때문에 저 역시 이 관점을 강조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까?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새롭게 생명을 얻는 방법이 아닐까요? 자비가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성적일 뿐만 아니라 부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가부장적 사역을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가 이 부성적 측면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아이들이 책임지고, 자유를 행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조건에 놓이게 하는 부성적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자비가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하고, 격려한다면, 다른 한편, 하느님의 사랑은 단순히 용서와 치유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고 바다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질문: 이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에 더욱 공포가 도약을 마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교종: 그렇습니다. 역사상 이 시대는 인생에서 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무능력으로 특징지어지는 기간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종종 결정하고, 선택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교회는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할 때 뿐 아니라 무엇보다 큰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격려할 때 그러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에는 항상 어떤 결과와 위험이 따르지만 때때로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참 아빠는 일이 잘 될 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실패를 마주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아버지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승리가 아니라 실패를 경험하는 방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성품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넘어짐과 나약함의 경험에서입니다.
질문: 영적인 부성은 교종님께 매우 중요합니다. 어떻게 사제가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까?
교종: 우리는 앞서 아버지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아버지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제는 이미 아버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그 다음 교회의 아들로 인정함으로써 처음부터 부성애를 조금씩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교회는 항상 누군가의 얼굴이고 구체적 상황이며 우리가 정확한 이름을 지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믿음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책이나 단순한 추론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그것은 우리의 관계를 통과하는 실존적 통로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경험은 항상 누군가의 증언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것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과 좋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방법을 아는 중요한 능력을 유지하는지의 여부, 영적인 삶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말해 자녀가 자기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고, 자유를 가능하게 하고, 큰 결정을 내리도록 부추기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영적 아버지가 맡겨진 사람들의 양심을 대신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에 대답할 때나,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삶을 지배할 때가 아니라, 신중하고 동시에 확고하게 길을 제시할 수 있을 때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사제는 신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고 분별력을 돕습니다.
질문: 이러한 영적차원의 부성애를 강화하기 위해 오늘날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교종: 영적 부성은 경험에서 나오는 은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 아버지는 자신의 이론적인 기술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만 그는 자녀들에게 유용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순간에는 영적 부성애라고 정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계의 긴급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이 동반자의 역할은 남성만의 특권이 아니며 사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 모성이기도 합니다. 많은 훌륭한 수도자들, 봉헌된 여성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경험의 짐을 가지고 있는 많은 평신도 남성과 여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적 관계는 심리적 또는 치료적 성격의 다른 경로와 혼동하지 않고 이 역사적 순간에 새로운 노력으로 재발견해야 하는 관계 중 하나입니다.
질문: 코로나의 비극적인 결과 중에는 많은 아버지의 실직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교종: 저는 그 가족들의 고통,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악화된 특별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통을 가까이 느낍니다. 자식을 먹일 수 없다는 것, 타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와 관련해 저의 기도와 친밀함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지원은 이 사람들, 이 가장 작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전쟁을 피해 탈출한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족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들은 유럽과 다른 지역 국경에서 거부당하고 고통과 불의의 상황을 경험하고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기꺼이 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에게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의 용기를 보기 때문에 저는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헤로데의 폭력과 권세 때문에 외국 땅으로 도피해야 하는 이 유배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오늘날 같은 시련을 겪고 있는 이 형제들과 정확히 가깝게 만듭니다. 이들이 아버지로서 같은 경험과 불의를 겪었음을 알기에 성 요셉에게 신뢰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 모두와 가족들에게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을 항상 기억하고 가능한 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