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전통과 라틴어 미사 제한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Traditionis Custodes)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라틴어 미사 거행을 크게 제한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 전례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관심이 없어서인지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아서인지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차원에서조차 이 자의교서에 관한 공식 논평도, 이 문헌의 한국어 번역문도 없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라틴어 미사가 종종 다양성이 아니라 혼란과 분열만을 불러왔기에 이를 제한하는 이 자의교서는 환영할 만한 일로 보인다.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토착어 미사를 포함한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반대하고 라틴어 미사를 고수해, 끝내는 파문당한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 그가 세운 ‘비오 10세회’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전임 교황 베네틱토 16세는 세계 주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도 없이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2007)을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두 로마 가톨릭 전례’가 존재하게 되었다.1)
라틴어 전례 허용은 단지 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존 시노드’ 당시 개막식에 사용한 원주민 여인 조각상인 ‘파차마마 상’을 성당에서 훔쳐내 강물 속에 던져버린 ‘전통주의자’ 같은 이들에게 정식 밥상을 차려준 격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전통의 수호자’가 라틴어 전례나 미사 자체를 완전히 금한 것은 아니어도 해당 교구장과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제한 조건을 명시한 것은(4, 5항),2) 사실상 이를 크게 약화시킨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자의교서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동시대인들과 대화함으로써 교회가 ‘세상의 영혼’이 되고자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계승과 발전을 ‘전통’으로 다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교회사 차원에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노달리타스?’, 단지 번역의 문제인가
교황청은 라틴어가 아니라 각 지역 교회의 모국어 전례 거행을 교회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이와 사뭇 다른 길로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난 10월 중순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그간 쓰던 ‘공동합의성’이라는 말 대신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 발음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결정한 것만 해도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동합의성이 여러 뜻을 담고 있는 ‘Synodalitas’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3) 공동합의성이라는 용어가 그 뜻을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고민은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를 그대로 표기하자는 주교단의 결정은 영 개운하지가 않다. 단어 하나를 번역할 능력이 없어서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를 써야 한단 말인지 납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톨릭 신학은 그 용어 하나를 제대로 번역해 낼 수 있는 역량조차 없다는 말인가? 그런 일을 해내는 것이 신학자의 역할이 아닌가?
과연 시노달리타스라는 용어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신자가 얼마나 될까? 비록 ‘공동합의성’이라는 말이 그 함의를 다 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말이니 일단 알아들을 수는 있다. 이는 이번 시노드의 핵심이 특히 신자들이 시노드 정신에 동참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그 정신을 소개하면서, 교구, 전국 또는 대륙, 세계 차원으로 열리는 시노드에 평신도들이 적극 참가하도록 주교들이 시간과 열정을 들여 교육도 시켜 가면서 함께 평등의 교회를 만들어 가는 훈련의 장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듣는 교회’(listening Church)를 만들어 가 보자는 게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간곡한 뜻이 아니던가? 신자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언어로 어떻게, 무슨 뜻을 전할 수 있겠는가?
평신도 모두를 신학자로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신도들이 그 모든 뜻을 어원적으로 따져서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주교회의에서 펴낸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이라는 번역서도 냈고, 또 공동합의성이라는 말을 낯설고 어려워하면서도 교구, 수도회, 우리신학연구소 같은 교회 엔지오를 중심으로 조금씩 시노드를 향한 소모임이나 교육 등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시노달리타스라는 낯선 외국어로 바꿔 놓음으로써 그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단정은 섣부를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로 된 주제를 두고 교구별 시노드를 해야 할 판이어서 몇 배는 더 힘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쨌든 교회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등의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황과 전체 하느님 백성의 노력을 각 교구에서 열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 과정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의미를 교회 구성원들이 모두 실제로 체감할 수 있다면, 현상적으로는 거의 사어가 된 라틴어로 돌아가는 역행과 퇴보로 비칠지언정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픈 진정성은 드러날 것으로 믿는다.
'세계 정의'와 공동합의적 교회상
올해는 제2차 세계주교 시노드(1971)가 열리고 이어 발표된 시노드 최종문헌 '세계 정의'(Justice in the World) 발간 50주년을 맞는 해다.4) '세계 정의'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교황청 문서 가운데 ‘구조적 불의’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또 ‘정의평화’ 활동이 복음의 본질적(constitutive) 요인임을 분명하게 선언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Catholic Social Teachings, CST) 가운데 하나다. 문외한이어서 그렇겠지만, 2021년이 거의 저물어 가는 마당에서도, 한국 교회에서 이 문헌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행사나 글을 접하지 못한 탓에 개인적으로 이 칼럼에서나마 이를 밝히고 뜻있는 이들과 함께 잠시라도 이를 기억하고 싶다.
이 문헌의 6항은 이렇게 말한다.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 활동에의 참여는 복음선포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이 명백”하며, 따라서 “인류를 구원하고 온갖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할 교회의 사명”이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에서는 익숙한 수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공의회 문헌을 포함해 교회의 공식 문헌에서 만나기 어려운 정의와 교회의 사명을 직접 화법으로 전달하는 귀한 대목이다. 이 문서의 공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의평화를 통한 세상에의 개입을 교회의 사명으로 말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쇄신되어야 함’을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교회가 정의를 증거하고자 할 때, 교회는 사람들 앞에서 감히 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이는 먼저 이 사람들 눈에 정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교회의 행동 규범, 교회 재산, 생활양식 등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38항)
이 구절은 “여성에게 사회 생활과 교회 생활에서 책임과 참여가 마땅히 주어져야 함을 촉구”하면서, 이를 위해 “적당한 방법을 강구해서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도록 제안”(40항)하는 내용과 더불어 ‘교회 안의 정의’를 분명하게 요청하고 있다. 분명 ‘구조적 불의’를 분명한 어조로 공식 인정하고 막연했던 교회 안의 정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는 점에서 2차 바티칸공의회를 한 걸음 진전시킨 진보적 문헌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고 '세계 정의'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다. 공의회, 특히 '사목헌장'이라는 든든한 기반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목헌장'이라는 뼈대 위에서 돋아난 ‘새 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목헌장'은 많은 이에게서 보이는 일상생활과 신앙의 괴리를 현대의 중대한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신도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세상의 시민으로 행동해야 한다’(43항)고 제안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회심을 실천할 방도로서 교회가 세상의 일부이듯이 평신도 역시 시민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교회와 신도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유기적이고 통합적 이해는 교회와 세상을 성스러움과 속됨이라는 이원론으로 나누는 교회의 뿌리 깊은 습관을 그 기저에서 부정한다. 이 점은 AI, 포스트 휴먼, 생명과학, 사이보그 등 과학기술과 윤리의 문제가 점점 중요해지는 현 상황에서도 더욱 빛을 발하는, ‘축의 시대의 종교성’을 넘어서는 21세기 영성의 바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공동합의적 교회상의 구현 없이, ‘시노달리타스’를 우리의 언어와 피와 살로 살려냄 없이는 교회가 이런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는 사실이다.
주
1) 그의 전임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라틴어 전례와 관련해 세계 주교들을 상대로 설문을 조사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자의교서와 그 결과로 이어진 라틴어 전례 사용과 관련해 세계 주교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수행했다. 그 평가 설문조사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었고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자의교서를 내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Rita Ferrone, “A Living Catholic Tradition”, Commonweal, September 2021 참고.
2) Francis, "TRADITIONIS CUSTODES" On the Use of the Roman Liturgy, Prior to the Reformof 1970.
3) 배선영, “주교회의, 공동합의성 우리말 번역 '시노달리타스'로 결정”, <가톨릭뉴스지금여기>, 2021.10.14. 참고.
4) 한국에서는 김남수 주교가 번역해 '세계 정의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1987년에 출간되었다. 김남수, '세계 정의에 관하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참고. 이 칼럼에 인용한 부분은 김남수 역을 필자가 수정한 것임.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