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등 주최
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된 시점에서, 홈리스 지원체계를 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5일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홈리스행동, 한국도시연구소, 정의당 심상정, 이은주 의원실 주최로 ‘홈리스 지원체계 평가와 재편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본격적인 토론회에 앞서 나충열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는 이 토론회가 빈민사목위원회와 빈곤사회연대 등 연대단체들이 1년 반 동안 홈리스개정법 연구를 위해 힘쓴 노력이 결실을 맺는 자리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현실적인 정책으로 가는 길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으로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먼저 김준희 책임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이 홈리스 정책의 현황을 발표했다.
2011년 노숙인복지법이 만들어질 당시 시민단체, 연구자, 당시 야당은 낙인 이미지와 주거취약계층 전체를 포함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노숙인이 아니라 홈리스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홈리스가 외래어라는 이유로 ‘노숙인’, ‘부랑인’으로 나누어져 있던 용어를 ‘노숙인 등’으로 통일했다.
노숙인복지법 상 ‘노숙인 등’은 ‘상당 기간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문제는 홈리스 정책 대상이 거리, 노숙인 시설, 쪽방 거주자로 한정돼 있어, PC방, 만화방, 찜질방 등 비숙박용 다중이용업소나 열악한 고시원, 여인숙 등에 장기 거주하는 이들은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숙인은 1만 1340명이며, 쪽방 주민은 6192명이다.
김 연구원은 주거지원 사업에서 지원대상은 확대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공급 물량이 부족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주거 상태, 소득이나 재산 이외에도 개인의 성향, 능력을 판단해 주택을 제공하는데, 입주신청서에 병역, 혼인 여부, 직업 경력과 실직 원인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한다는 것도 문제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간 뒤에도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아 지역사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날 토론회에는 홈리스 당사자들이 발표에 나섰다. 그들은 임대주택에서의 삶은 “고립된 섬”과 같다고 증언했다.
“6년 전, 연고 없는 동네로 배정된 매입임대주택에서의 삶은 고립된 섬 같았다. 나가도 마땅히 갈 데가 없고, 사람들 얘기하는 데 끼어들 수도 없어 빙빙 겉돌았다. 갈수록 집 밖에 나오기 힘들었다. 나는 다시 동자동 쪽방에서 산다. 사람이 집만 좋아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짧은 매입임대주택 경험으로 깨달았다.”
또 다른 당사자는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간 지 1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매일 동자동 사랑방(동자동 쪽방 주민 모임)을 찾는다.
“지금도 매일 동자동에 온다. 동자동까지 1시간 10분 걸린다. 동자동에 오는 이유는 무언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던 분들을 도와 드릴 수 있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크고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희 연구원은 전국에 노숙인급식시설은 4곳으로 대부분 종교단체 등 민간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며, 거리 홈리스뿐 아니라 쪽방, 고시원 등 저소득 가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가구 등에게 적절한 식생활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의료 부문과 고용 부문에서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홈리스의 의료기관 접근성 문제, 지자체별 고용지원 및 공공일자리 지원에 큰 편차가 있는 것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노숙인 등이 겪는 문제는 주거, 의료, 고용, 인권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부처 간 협력이 중요하다. 김 연구원은 "그러나 현재 부처별, 지자체별 사업을 총괄하고 조정해서 지원하는 종합 컨트롤타워 역할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22개 부처 협의회를 통해 연방정부의 대응을 조정하는 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어 특히 홈리스는 주거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홈리스 예방과 지원에 국토교통부의 보다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숙인 등’ 지원 법 개정 방향을 발제한 장서연 변호사(공인인권법재단 공감)는 주거 지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주거 우선 원칙(Housing First)’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이를 위해 주거기본법에 나오는 주거 지원 필요계층에 ‘노숙인 등’을 명시해 주택 공급의 근거를 만들고,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또한 주거 지원을 목표가 아닌 출발점으로 보고, 국토부의 역할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이밖에도 홈리스 당사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국무총리 산하에 ‘노숙인 등 정책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 노숙인복지법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주거, 의료, 급식 등 각 부문에서 어떻게 법이 개정되어야 할지 설명하면서, 노숙인 복지서비스를 지원할 때 성별, 연령, 장애, 질병, 알코올 남용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되고, 고용, 의료 영역에서의 차별 금지 등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홈리스 당사자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복지부, 지자체(서울시) 관계자의 이야기도 나왔다.
한 여성 홈리스는 “여성 홈리스는 화장실하고 친하다. 위험과 비하가 가득한 거리에서 화장실은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피난처지만, 코로나 시기 방역을 이유로 노숙인 시설에 있는 화장실마저 출입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성별을 고려하지 않는 노숙인 정책으로 여성 홈리스가 가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저기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여성 홈리스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뭉뚱그리지 말고 개별적으로 복지를 지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식당에서 일하면 이 백은 버는데 여자들이 왜 와서 밥을 먹냐’는 비난에 급식소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며 여자들만의 공간이 있길 바랐다.
또 한 40대 남성은 “자활근로, 자활기업, 취업성공패키지, 희망리본 등 정부의 일자리 정책 제도를 따랐지만, 종착은 직장이 아니라 거리였다”고 말했다.
"고용을 통해 노숙을 벗어나는 과정은 험난하고 온갖 수치와 모욕과 무시를 당하면서도 취업에 실패한 결과는 취업 못한 본인 책임으로만 남는다.”
그는 “구직자의 현실을 고려해서 충분히 기다려 주는 일자리 대책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보건복지부 김혜인 자립지원과장은 제2차 노숙인 등 복지 종합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발제자들이 강조한 것처럼 주거우선 정책이 기본 정책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며, 이를 위한 국토부, 지자체와의 협력은 고민이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이진산 자활지원과 주무관도 복지부가 복지 종합계획을 수립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와 국토교통부에서 해마다 그 계획을 실행하고 결과를 평가받는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내용을 정리한 카드뉴스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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