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월 23일 원주교구 신구교 일치기도회와 원주선언의 삶의 자리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여러 교파들은 일치기도회주간을 갖는다. 갈라진 상태에서 이 세계 민중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역표징이 되어 온 것을 반성하면서 새롭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만나 우애를 회복하고,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과 섬김을 세상에 증거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아래에서는 1976년 원주교구에서 마련한 신구교 일치기도회가 갖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같은 시도가 오늘 우리에게서 시도되는 신구교 일치기도회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요 기쁨이 될 것이다.

세계 가톨릭 교회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한국 교회의 교회일치운동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는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가 있다. 이 기구는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산하기구이다. 1964년 11월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가톨릭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갈라져 나간 이후 새롭게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 안에서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일치 교령>을 발표한다. 우리나라 주교회의는 다음해인 1965년 7월에 주교단 교서를 통하여 공의회의 뜻을 지역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주교회의는 1968년에 이 기구를 확대하여 비그리스도교 영역까지 포용하도록 하여 “일치위원회”로 확장 개편하였고, 1999년에는 이 기구의 명칭을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계 그리스도 교회는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 사이에 “교회일치기도주간”을 갖고 그리스도교회의 재일치를 위하여 노력한다. 1976년 1월 23일 원주교구 주교좌 원동 성당에서 신구교 일치기도회를 연 것은 바로 이런 일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한 사례이다.

교회일치기도회는 1908년에 뉴욕의 폴 와트슨(Paul wattson) 신부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1908년 1월 18-25일에 그리스도교의 두 기둥 베드로와 바오로를 기억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집에서 새롭게 일치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바티칸 공의회가 <일치교령>을 공포한 이후 교황청의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는 개신교의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설립한 '신앙과 직제위원회'와 함께 1966년부터 공식적으로 기도주간 자료를 준비하여 신구교 합동으로 일치기도회를 열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에서 본 것처럼 1965년 7월에 주교단 교서를 통하여 일치위원회를 신설하면서 “갈라진 형제들과 대화를 하되, 서로의 상이점이나 단점을 들추어내기를 피하고, 공통성과 장점을 찾으면서 교회의 공동 목적을 위하여 나아가”기를 권고한다. 이런 정신에 따라서 전국의 교구들은 1966년에 교구 단위의 일치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의회의 교회일치 정신을 신자들 가운데 뿌리내리고자 노력해 간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구교가 서로 방문하면서 기도회를 열어 갔는데, 주교회의는 1968년에 처음으로 신·구교 연합 일치기도회를 개최였다. 이후 1986년부터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등이 연대하여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갖는 일치기도 주간에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화합과 일치를 고양하는 일치 기도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1976년 1월 23일 원주교구 신구교 일치기도회

원주교구에서는 1966년 3월에 지학순 주교와 양대석 신부와 오미카엘 신부가 원주지구 목사 월례회에 함께 참석하여 세계 교회의 교회일치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이후 원주교구는 교회일치기도회의 전통을 세워가기 시작하였는데, 1972년부터 여러 해 동안 교회일치 주간에 개신교와 공동으로 일치기도회를 매년 개최하였다. 이런 토대 위에서 지학순 주교가 1974년 7월에 구금, 구속당하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해 9월 22일에 신구교가 연합해서 원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회의 정의와 민주화를 위하여 기도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다시 1976년 1월 23일에 유신체제 하에서 민중이 신음하는 속에서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하던 그때 원주교구는 신구교일치기도회를 개최하면서 신구교의 일치, 민중과의 일치를 실천할 것을 선언하면서 민중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원주교구 신현봉 신부를 비롯하여 이영섭, 안승길 등 여러 사제와 장일순, 김용연, 김영주, 정인재, 김상범, 박양혁 등 여러 평신도, 그리고 서울교구의 함세웅, 김택암, 양홍, 안충석, 김승훈 등과 전주교구의 문정현, 대전교구의 이계창 신부 등이 참여하였다. 개신교에서는 원주 지역 백구영, 최충수, 전의남 목사 등이 참여하였고, 함석헌, 서남동, 문익환, 문동환, 조화순 목사 등이 함께하였다.

신현봉 신부는 이 일치기도회 미사에서 마태오 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비유에 근거해서 “누가 우리의 주님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런 가운데 당시 박정희 정권이 민중에게 가하던 수탈과 억압, 그리고 김지하, 박형규 목사 등 민주 인사들에 대한 조직적인 탄압에 신구교가 일치하여 복음적으로 응답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신구교의 일치, 그리스도 교회와 민중의 일치,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부 관료와 민중의 일치를 이룰 것을, 그리고 갈라진 남과 북의 일치를 이룰 것을 역설하였다.

이것은 한국 주교단이 1965년 7월에 발표한 사목교서에서 말한 “교회의 공동 목적”을 예수님이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신 가난하고 고난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섬김의 실천으로 통합하여 제시한 한 구체적인 사례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치 교령은 이미 이렇게 명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현대에는 사회 영역에서 널리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다 공동 활동을 하도록 부름 받고 있으며, 더구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모든 그리스도인은 더욱 더 그러하다. ... 인간 존엄성의 올바른 존중을 위하여, 또는 평화 증진을 위하여, 또는 복음의 사회 적용을 위하여, 또는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학문과 예술을 진보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또 기아와 재난, 문맹과 빈곤, 주택난이나 불공정한 부의 분배와 같은 현대의 곤경에 대한 온갖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는 이러한 협력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는지 또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향한 길을 닦을 수 있는지 쉽게 배울 수 있다.

공의회가 이 교령을 통하여 말하는 것처럼, 현대에는 특히,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과 평화, 정의, 그리고 건강한 문화의 증진을 위하여 연대하고 공동으로 활동할 부름을 받고 있다.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일치하여 이같은 활동을 수행하도록 불리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과 생명의 질을 고양하기 위한 이같은 활동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치를 더욱 굳건하게 실현해 가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치교령은 그리스도 신앙의 실천 차원을 아래와 같이 선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모범을 도덕적으로 적용하는 투신을 통해서도 일치 대화를 심화시켜 갈 수 있음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와 찬양에서 열매를 맺는다. 또한 생생한 정의감과 진실한 이웃사랑도 생겨난다. 이러한 신앙은 또한 정신적 육체적 불행을 덜어주고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사회 생활 조건을 더욱 인간답게 개선하며, 세계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적지 않은 활동들을 펼쳐 왔다.

이것은 그동안 갈라졌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화해하고 새롭게 일치하는 것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원주교구는 신구교의 일치와 신구교 그리스도인들과 가난하고 신음하는 민중과의 일치를 향한 한 복음적 투신을 통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일치교령에서 호소한 신앙과 실천의 통합을 충실하게 증거하였던 것이다."


원주선언

이 일치기도회에 참여한 신구교 지도자들은 다시 원주교구 교육원으로 이동하여 함께 우애를 다지면서 뜻을 함께 모아서 처음에는 제목이 없었으나 훗날 <원주선언>이라고 일컬어지기 시작한 문건에 서명하였다. 이들은 여기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일치 단결을 구현하기 위하여 억압조치들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투옥한 민주 인사와 학생들을 석방하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외국 자본에의 노예화를 극복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며 도시빈민들의 주거와 생존권을 지킬 촉구하였다. 이와 더불어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자주외교를 실현할 것과 핵전쟁의 방지를 위하여 남북대화를 진전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 선언은 34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선언이 민중 현실에 복음적으로 응답하였던 데서 오는 것으로서, 당대 교회 지도자들의 복음과 역사 현장에 대한 충실을 증거한다. 또한 이것은 우리 사회가 경제 규모의 비약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정치, 사회의 질의 측면에서 여전히 낙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아픈 현실을 증거하기도 한다.

삶의 자리에서 이룬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운동  

세계 신학계의 흐름과 한국 역사 현장에서 솟아오르는 신학의 충만을 대조하는 작업을 수행해 온 한 신학도로서 말할 수 있다. 원주교구 일치기도회와 원주선언 사건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를 어떻게 이룰지, 그리고 이를 위하여 열리는 일치기도회의 존재 이유와 방향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서 증거한, 20세기 세계 교회사에서 주목할 한 위대한 사례로 평가받을 날이 올 것이다.

2010년 다시 세계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을 맞으면서 나는 기도한다. 교회의 일치 이유를 복음적으로 통합한 기도회와 기도의 실천이 구현되기를. 그리하여 진정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스도교와 이웃 종교들, 모든 교회와 민중들,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지방, 남과 북, 정부와 시민, 그리고 민중과 자연이 모두 생명의 서로 살림 안에서 충만한 일치와 평화에 이를 수 있기를.

황종렬 (두물머리복음화연구실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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