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을 말한다-29]

고등교육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일제고사, 교육정보 공시, 자사고 등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교육정책들이 대체로 초중등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3불 폐지 움직임이나 입학사정관제 확대와 같은 것들은 고등교육분야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건 고교졸업생의 대학진입 단계에 관한 정책입니다.
묵묵히 일하면서 가끔씩 방송 뉴스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학에 관한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년에는 대학자율화 조치가 추진되었고, 올해 들어서는 국립대 법인화, 그 중에서도 서울대 법인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대학정보 공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등도 이루어집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 '시장' 중심
이들 정책의 흐름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하면, ‘대학의 시장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야 ‘대학의 자율성 제고’로 부르고 싶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에 가장 적합한 표현은 '시장'입니다.
예컨대 작년 9월에 나온 <대학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계획>은 대학운영자의 자율권 보장입니다. 학생, 교수, 직원 등 대학구성원들의 자율권 신장이 아닙니다. 대학운영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조치들을 추진합니다. 따라서 말은 ‘대학자율화’이지만, ‘대학의 경영권 보장’이라고 지칭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그리고 이건 기업 내에서의 결정권과 자율권이 오너에게만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노동자나 원료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뿐, 자율권이라고는 ‘짤리기 전에 먼저 관두는’ 자유 정도만 있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지난 8월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은 모 언론의 기고문을 통해 “대학의 의사결정권은 학교법인에서 비롯되고, 운영 주체는 학교법인의 이사회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라고 말하면서 교직원은 피고용자, 학생은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는데,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의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올해 들어 속도를 내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도 같은 흐름입니다. 학교수 기준으로는 12.8%, 재적학생수 기준으로는 25.4%에 불과한 국공립대를 아예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장의 적은 국가’라는 단순한 이분법, ‘시장은 무조건 옳다’는 굳은 믿음에 의거한 정책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그림은 오너의 결정에 따라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처럼, 법인 이사장의 결정에 따라 교직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학생을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는 겁니다. 또한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이미 만들어진 졸업장이나 학생 상품을 보고 대학을 쇼핑하는 겁니다. 여기에 국가나 사회는 개입 불가입니다.
비정규직 교수 늘리는 게 시장원리
우리에게 시장은 익숙합니다. 동네 구멍가게나 대형마트이건, 백화점이건 간에 오늘도 어디에선가 상품을 삽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싼 값에 질좋은 상품 구매’라는 최대 만족을 취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대학도 과연 그럴지 의문입니다. ‘질좋은 상품’의 경우, 그 대학에 있는 교수님들과 연관있습니다. 교육의 질은 교수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시장화가 상당히 진척된 미국 영리대학의 경우, 비정규교수의 비율이 약 55%입니다. 미국 전역에서 170개 캠퍼스를 운영하는 ‘매출액 1위’ 피닉스 대학은 98%가 비정규교수입니다. 당연히 미국 내에서도 영리대학의 질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시장원리에서 보면 괜찮은 상황입니다. ‘저비용 고효율’을 해야 하니, 인건비는 가급적 줄이는 게 맞습니다. 자기 대학의 상품에 치명적인 불량이 나오지 않는 한도까지 비용 절감을 꾀해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규직 교수보다 비정규직 교수가 입맛에 맞습니다. 물론 교육의 질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의 비전임교수 비율은 전문대학 72.8%, 대학 61.2%입니다. 국립보다는 사립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 영리대학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좀더 늘릴 수 있습니다.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경력이 오래 되거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더 싼 비정규직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조건이라도 있으면, 그 전에 조치를 취해 피해가야 합니다. 물론 교육의 질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등록금 많이 받는 게 시장원리
‘싼 값’은 이해가 엇갈립니다. 시장에서 학생은 등록금이 싸기를 바라고, 대학운영자는 비싸게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수요와 공급 곡선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네 대학에서는 공급자 곡선만 보입니다. 그리고 ‘대학등록금 자율화’로 대학운영자가 마음대로 등록금을 정하게 된 다음부터는 오르기 바쁩니다. 결과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허리만 휩니다.
그러나 대학운영자 입장에서는 최적입니다. 많은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비싼 등록금으로 고수익을 창출하고 많은 비정규직 교수로 비용을 절감한다면, 이만한 ‘저비용 고효율’이 따로 없습니다. 최적의 시장인 셈입니다.
이상한 시장
그런데 우리네 대학은 이상한 시장입니다. 할인판매가 없습니다. 동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월상품 염가 판매’도 없습니다. 오르기만 하는 비싼 등록금만 보일 뿐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수학 능력과 장래 선택할 진로를 감안해 스스로 대학을 선택했다. 등록금은 그 선택에 대한 비용으로 볼 수 있다”고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은 말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대학을 선택’하였는지는 의문입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학을 강요당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래서는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불량일 경우 상품을 사지 않아야 합니다. 가격이 비싸면 물건을 구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급자가 소비자의 의사에 맞게 가격과 상품의 질을 제고합니다.
하지만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했다고 해서, 일반고 졸업생이 고려대를 불매하는 일은 없습니다. 어느 대학의 등록금이 비싸도 빚을 내어 마련하기 바쁩니다. 중앙대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진중권 교수를 짜른다고 해서, 중앙대 진학 희망자가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주요 대학들이 비박사 시간강사들을 대거 해촉하여도 소비자가 외면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장이 절대선’이라는 믿음을 우리 대학에 이식하려는 노력은 곤란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공급자 왕’과 ‘소비자 봉’의 관계를 극대화시킬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권력의 경중에 따라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게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비싼 등록금을 강요받는 학생이나 일상적이면서 불안한 해촉의 위험에 있는 비정규직 교수의 편이 되어 힘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중장기적으로는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이럴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동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다른 형태, 즉 ‘부자 명품시장 對 서민 박리다매시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물론 이 형태는 ‘만족하는 부자 對 불만있는 서민’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식기반사회라고 다들 이야기하지만, 가능한한 많은 이들이 잠재력을 실현하고 창의적이면서 자율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체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운영자 입장에서는 상관없는 미래일지 모릅니다. ‘저비용 고효율’로 자기 회사의 수익만 창출하면 되니까요. 여러 서민보다 한 부자를 잡는 게 고수익일 테니까요.
글 송경원 (진보신당/ 교육)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이 기획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http://stip.or.kr/가 함께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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