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을 말한다-27]

▲국립대 법인화는 끝 없는 등록금 인상과 그로 인한 학생들의 고통만 가져올 것이다. (사진: 이광수)

현재 한국 대학은 기초 학문 붕괴, 등록금 폭등 등의 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현 정부 들어 이상의 문제들을 더욱 부추기는 정책안이 상정돼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한동안 유보되어온 ‘국립대 법인화’를 말한다.

‘법인화’란 단체나 재산이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되는 일을 뜻한다. 국립대 법인화란 따라서 정부의 대학 재정적 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면 된다. 정부의 의지대로라면 국립대 역시 앞으로 사립대와 마찬가지로 시장경제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줄어든다면 앞으로 국립대는 어떤 위기에 직면할 것인가. 무늬만 국립이지 사립과 실질적인 차별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등록금 폭등은 감수해야할 것이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국립대라는 ‘희망’도 사라질 것이다. 학문의 양극화 역시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른바 ‘돈 되는’ 학문만이 살아남고 기초학문은 폐기 처분 될 공산이 크다.

국립대 법인화 문제는 비단 국립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국립, 사립 할 것 없이 경쟁 체제에 놓일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이런 법인화 과정 속에서 한국 대학 전반에 퍼질 수 있는 폐해에 대해 살펴보았다.

법인화, 대학 비만 가속화

국립대 법인화 정책은 대학 자율성의 제고, 대학 경쟁력과 대학운영의 효율성 강화 등을 명분으로 한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줄어드는 한편 대학재정은 ‘독립채산제’로 전환된다. 국립대들도 시장원리에 입각해 사립대와 마찬가지로 경쟁체제 속으로 빨려들어 오게 되는 것이다.

재정 지원 축소의 작동원리는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에 의한다. 이 법안은 본격적인 ‘법인화’로 가는 징검다리이다. 법안의 골자는 국립대학 재정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일반회계와 기성회계를 교비회계로 통합 관리하자는 것에 있다. 또 재정위원회를 설치해 재정운영의 책임성과 민주성을 담보하고, 대학발전 및 장학금 확충을 위해 발전기금을 법인으로 두는데 목적한다.

그런데 법안의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대학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국립대 구성원들도 막상 이 법안을 들여다보더니 “결국 정부의 재정지원이 어려우니 각 대학은 수익사업이나 등록금 인상을 통해 알아서 살아 남아라는 소리”라고 성토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서울대를 제외한 지방 국립대들은 통폐합의 기로에 설 수 있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해당 대학이 속된 말로 ‘돈을 어떻게 잘 굴리느냐에’ 혹은 ‘실질적 권력에 어떻게 잘 보이느냐’에 따라 학교의 운명은 판가름 난다.

추상적인 재정·회계법안의 허점을 등록금이라는 괴물이 놓칠 리 없다. 이제 능력 있는 인재들은 형편이 어려우면 국립대 입학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고, 이를 통한 계층 간 차별화의 심화 역시 더욱 확대될 조짐이다.

한편 법인화가 본격화되면 국립대와 사립대의 경쟁을 통해 한국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끊임없이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일본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일본은 법인화 이후 대학 등록금이 무려 5배나 뛰었다고 한다.

이러한 돈벌이 경쟁은 대학재정 확충에 도움이 되는 학문만 살리려는 의지로 반영되기도 한다. 대학의 기초학문이 붕괴되고 있는 암울한 상황에서 이는 더 가속화될 것이며 이른바 ‘돈 되는’ 실용학문만이 전격적인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개성화, 특성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미 학문의 균형적 발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국립대마저 사립대식의 ‘학문=자본’이라는 등식을 추구할 경우,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순기능은 마비될 수 밖에 없다. 비판적 지성을 양성하는 대학의 역할은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대학들이 이미 많은 학과들을 통폐합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문학, 영문학, 철학 등의 학문들은 대학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근근이 버티어 왔지만 최근 들어 사라져 가는 추세다. 한 대학 관계자는 “국문학은 우리말이니 배울 필요 없고, 영문학은 영어학원에서 배우면 된다”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는 앞으로 국립대에게도 대대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최근까지 일부 국립대에서는 이미 적용된 사례가 있다.

이공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인화는 연구 성과의 특허, 벤처기업의 운용 등을 통해 개별기업이나 대학 차제의 수익 창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응용과학기술 분야의 연구만을 부추길 수 있다. 일례로 일본의 도쿄대는 법인화 이후 술을 만들어 파는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어 폐해로 지적된다. 한국의 사정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학원 또한 대학재정 운영의 상당한 견인을 해주고 있으니 따라서 대학원의 부피도 한층 거대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확충을 위해 대학은 해당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인재들을, 심하게 말하자면 ‘기여입학제’로 여겨질 만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석박사 소지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실정. 법인화 이후 이는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이러한 학문의 차별화와 대학원 경영의 폐해는 대학 시간강사 문제로까지 연장된다. 기초학문을 등한시하는 풍토와 이 분야 대학원생들을 끊임없이 양산해내는 모순된 구조에서 대학 시간강사 문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국립 사립 공존 노력 절실

국립대 법인화를 두고 사립대학들은 찬성의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간 공정 경쟁을 국립대가 재정지원을 통해 방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립대의 이러한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립대는 우선 국립, 사립 할 것 없이 재정지원의 온당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인해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수많은 검토를 통해 확인되었다. 다만 정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머니를 열고 있지 않을 뿐이다.

국립대로서의 서울대는 법인화와 관련해 다른 국립대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서울대는 ‘국립대’를 하나의 올가미로 보고 있고 그 자체가 서울대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요소라고 믿고 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차등 지원’에서 가장 이득을 볼 대학이 서울대이기 때문이다.

법인화 과정에서 정부는 각 대학에 예산 지원을 매년 조금씩 줄이는 동시에 6년마다 경영을 평가해 예산을 차등 지원키로 했다. 현재 서울대는 그 성격상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법인화가 본격화 된다면 향후 나머지 국립대는 떡고물이나 바라며 통폐합의 갈림길에 설지도 모를 일이다.

‘돈 맛’을 알고 있는 사립대의 경우에서 봐왔듯, 등록금 인하 여부와 국립대 차등지원과는 하등의 관련성이 없다. 서울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 역시 그에 걸맞게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의 교육열이 가장 큰 배후세력이라는 점에서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서울대는 왜 유독 최고를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불응’은 한국 사회 전반의 양극화 현상을 촉진시켜 왔고 그 현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와 관련해서는 서울대 외부의 문제 제기도 중요하겠지만 서울대 구성원들의 자각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서울대 교원 절반 이상이 법인화에 찬성하고 있어 그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이상과 같이 국립대 법인화는 이미 팽배해 있는 한국 대학의 폐해들을 더욱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따라서 정부는 법인화 추진에 페달을 밟을 것이 아니라 한국 대학의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야 한다.

대학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국립대는 기초학문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 대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립대가 이미 자본의 논리에 입각해 응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면 국립대만큼은 기초학문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우리사회 최소한의 학문적 토양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물론 여기에는 재정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궁극에는 학문 발전의 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야할 네트워크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국립대학들 간의 학문적 교류를 용이케 하는 네트워크를 형성시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는 ‘국립대 권력’이라는 오해가 불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린다. 앞서 지적했듯 사립대는 현재 응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돼 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교류는 필수불가결한 시점이다. 국립과 사립의 공존을 위해서도 사회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도 각자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80%가 넘는 사립대의 비율을 축소시킬 필요성도 요구된다.

여대생들이 삭발을 감행하면서까지 등록금 문제와 싸우고 있는 현실. 법인화 문제까지 가중되면서 한국 대학 문제의 주름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국립대 법인화’ 문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할 것이다. 실제 법인화가 추진되면 지금까지 살펴본 문제들보다 더 큰 문제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엮이어 나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글 최규재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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