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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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절대로 주교가 못 됩니다. 제가 보기에 다른 건 문제가 없는데 선배한테는 영성이 없어요. 본인도 인정하시죠?”
언젠가 나보다 꼭 10년 늦게 신부가 된 후배가 생맥주집에서 내게 한 말이다. 요즘 우리 교구에도 새 보좌주교에 대한 소문이 심심찮게 돌고 있는 터다. 허, 참. 내가 언제 주교가 되고 싶다고 했나? 그런 건 단 한번 꿈도 꿔보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만약 그렇다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웃을 거다.) 그래, 내게 기도와 신심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은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영성이 없어서 주교가 못 된다? 후배 신부가 얘기한, 내게는 없다는 영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같은 사람도 보는 눈에 따라 옳은 사람, 그른 사람일 수 있듯이 영성 또한 보는 눈에 따라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이가 좀 든 뒤에야 겨우 가능했다. 김수환 신부의 영성을 높이 평가해서 주교로, 추기경으로 낙점한 사람은 누구일까? 추기경의 업적이 큰 만큼 그를 추천하고 임명한 분들의 혜안 또한 대단하지 않나?
한 조직의 책임자의 영성이 바로 그 조직의 성격과 방향을 드러낸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처럼 국가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경우 그의 영향력은 동네 골목 구석구석까지 미친다. 우리는 이미 여러 명의 대통령을 겪으면서 이 사실을 터득해왔고 지금 다시 한 번 더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운찬 총리 임명을 본다. 정운찬을 지명하고 추천한 사람은 정운찬 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그저 고만고만한 사람일 것. 이 산하를 살리자면서 끝내는 죽이는 데 공조할 것이다. 소인배는 절대로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인기가 있는 인물을 중용하지 않는단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우리가 뽑았다. 그러나 다시는 안 뽑을 수도 있으니 그나마 참담함이 조금은 덜하다.
교회 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순명과 복종을 신자의 도리로 여기는 교회에서 교황과 주교들의 영성이야말로 교회란 무엇이며 누구인가, 또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가시적인 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임기도 없는 교구장이나 교황이 영성을 말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시대의 징표를 못 읽거나 외면한다면? 그 결과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 전도되어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면 누구를 탓해야 하나? 오직 천주교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장상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모든 업을 고스란히 내가 뒤집어쓴다고 생각해보라.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일개 작은 본당에도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그 공은 오로지 본당신부에게 돌아가지만 본당신부의 잘못에서 생긴 피해나 손실은 거의 어김없이 신자들의 공동 책임이 되는 것을. (그나마 본당신부는 임기라도 있다.)
여러 교구에서 새 주교님들이 많이 탄생했다. 머지않아 새 추기경이 나실 거라는 이야기도 돈다. 누가 우리교구의 교구장이 되고 또 누가 우리나라의 새 추기경이 되느냐는 우리 모든 신자들의 지대한 관심거리다. 그만큼 이 사회와 교회에 미치는 그분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알아서 우리에게 꼭 알맞은 분을 보내주실 거라 굳게 믿고 묵주기도만 하면 될까? ‘하느님의 뜻’을 내세우는 임명권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영성을 찾을까? 임명되자 곧바로 용산을 찾는 주교와 추기경을 볼 수는 없을까? 하늘을 쳐다보며 처분만 바라는 우리의 처지가 딱하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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