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을 말한다-24]

▲지금 밖에서 보는 이 나라는 '근조 민주주의, 근조 대한민국'이다. (사진: 이광수)

“만수야 너 언제 인간 될래?” 영화 <반두비>에서 민서가 쏘아붙인다. 이주노동자인 자신의 친구 카림을 부려먹고 월급도 주지 않은 사장. 그 사장집에 찾아가 이렇게 말하며 그의 뺨을 때린다. 그리고 온몸으로 분노를 표현하며 집기를 부순다. 분노, 그리고 폭발.

민서가 그렇게 폭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카림의 분노에 공감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카림의 ‘위치’에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인종-젠더-돌봄-소통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 ‘위치’의 문제로 다가온다. 왠지 <택시 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백진희가 주연한 <반두비>. 이 작품은 현실이 ‘누구-어떤’ 위치에서 구성되고 있는가를 드러내려 한다. 곧, ‘위치’가 현실을 만든다.

유학생의 ‘위치’에 대한 고민

‘유학생의 꿈’이라는 주제를 받고 고민하다 결국 이것도 위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유학을 가기 전에 했던 고민들이다. 석사과정을 시작하기 전부터 공부하는 것을 진로로 선택했던 나는, 일찌감치 박사과정에 대해 조금씩 고민을 해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내에서 공부할 것인가 유학을 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런데 당시 분단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당연히 유학을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한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유학을 갈 필요가 있다면 그곳은 다름 아닌 북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국내에서 하는 게 제일 낫다고 판단했다. 다음으로, 이른바 학문의 종속성 문제였다. ‘제1세계’ 학문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한국의 학문. 특히 한국적 맥락의 고려없이 ‘선진국’의 이론을 그대로 따르려는 데서 오는 폐해와 ‘유학파’라며 왠지 목에 힘을 주는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마디로 나도 그렇게 될까 봐, 경계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역시 모르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상황이 결국 나를 유학으로 이끌었다. 짧게 말하자면, 나의 관심분야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선생님이 있는 이곳으로 온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영국으로 유학을 온 거의 유일한 이유는, 동반(지도)선생님이 여기 계시기 때문이다. 동반선생님이 다른 나라에 계셨다면, 아니 혹시 한국에 계셨다면 난 굳이 영국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자기합리화(?)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꼭 학문의 종속/식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국내에서 하는 공부가 학문의 ‘주체성’ (문제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대로 쓴다)을 보증해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이미 상당한 정도 국내 학문현실이 식민화되었다고 했을 때, ‘주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경계를 정하고 있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경계와 장소 자체를 문제화할 수 있는 어떤 힘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한국이냐 외국이냐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 유일한 기준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그렇더라도, 공부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영토와 이를 포함한 문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걸 직접 느끼면서 언제나 긴장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면에서 난 동반선생님을 잘 만난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지금 말하는 게 ‘서구’의 맥락과 상황이라는 거죠. 성주가 알고 있는 한국적 맥락은 또 다를 거예요.” 선생님 자체가 이런 문제에 민감하시고, 나 역시 더 민감해지려고 한다.

한편, 유학생은 그 위치로 인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특권을 부여받은 것 같다. 일단 한국적 맥락에서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 특히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뭔가 있어 보이는’ 어떤 지위를 누리게 된다. 재외교포들이 해외 유학생으로 자신의 신분을 속이거나, 학력위조 사건에서 영어권 대학의 학위취득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지위가 갖는 힘을 말해준다. 이런 현실에서 유학생은, 그 지위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어쩌다 유학생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 가거나,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몇몇 유학생들의 공간에 가면, 그런 느낌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사실 나 자신도 개인적인 공간에 일기 비슷하게 글을 쓰곤 하는데, 결국에는 내 자랑을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닐까 하며 많이 멈칫하게 된다).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는, 정작 그 특권에 둔감할 때가 많다. 권력자는 권력 자체에 신경을 쓰지 그 권력이 행사되는 과정과 그로 인한 결과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런 ‘노동’은 권력자가 아닌 다른 이들이 대신한다. 권력자는 자신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신경쓰는 것이 전부에게 신경쓰는 것과 동일하게 된다. 때문에 권력자는 권력이 ‘관계’의 영역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학생의 특권과 권력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다.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경우, 유학생으로서 당연히 여기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사치/여유’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에 민감하고자 한다.

고통의 땅에서 떨어져 있는 고통

영국에 오기 전이었던가. (지금은 친구로 지내는) 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작가를 알게 되어 대화를 나누었다. 이스라엘의 폭력이 난무하는 팔레스타인 소식을 밖에서 듣는 심정에 관한 것이었다. 작가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던 것 같다. 차라리 그 안에 있으면 마음이 편할 거라며, 멀리서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소식을 접하는 건 기분이 참으로 안 좋은 것이라 했다.

뭐랄까, ‘고통의 땅에서 떨어져 있는 고통’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덧 나도 그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가늠하기 힘든,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아 어떤 것을 나열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용산참사를 비롯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야 하는 상황. 인터넷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끌려가는 세상. 이 모든 것을 정직하게 보도해야 할 언론마저 ‘접수’되고 있는 현실.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다치고, 죽는다. 멀리서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분노한다.

유학생이 누구던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사회적 공간에서 벗어나 공부를 하는 학생이다. 그 공간이 무참히 짓이겨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위치. 적어도 나로서는 정말 복잡하고 괴로운 상황이다.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유학을 와있던, 그래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당시 유학생의 심정이다. 사실 이곳으로 오기 전인 2008년 여름까지, 이런저런 집회에 자주 나갔었다. 어떤 친구와 서로를 “집회친구”라고 부를 정도였다(나는 그 친구가 집회 도중 경찰의 방패로 뒷통수를 가격당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거리에 나갔다고 해서 크게 바뀐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직접 어떤 공간에 나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답답하다. 그나마 유학생 시국선언이 있어 함께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대단한 일을 계획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유학생 신분이 확정된 뒤로는 ‘몸 사리기’를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집회였던 작년 8∙15. 부끄럽게도, 유학을 위해 산 운동화가 색소를 탄 경찰의 물대포에 젖을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더 나가서는, 혹시 경찰에 잡히면 출국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적어도 당시는, 직접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의 빚’이랄까 이런 것이 많다. 운이 좋게도, 지금의 유학생활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끔 ‘나만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였다. 논문관련 면접이 주된 이유였지만, 한 달 정도 잠깐 한국에 갔다. 집회 또는 그와 유사한 행사에도 몇 번 나가고, 봉하마을에도 다녀왔다. 그러던 중,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라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의 곁으로 가셨다. 그래서 다시 이곳으로 오기 직전, 분향소에서 ‘벽을 보고 욕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유학생은 어디에서 꿈꾸는가

‘무엇을’ 꿈꾸는가는 ‘어디에서’ 꿈꾸는가와 떼어낼 수 없다. 꿈 자체는 그 꿈을 꿀 수 있는, 혹은 꿈을 꾸고 있는 위치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학생의 꿈보다는 ‘유학생은 어디에서 꿈꾸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유학생으로서의 나는, 유학생의 ‘위치’에 더욱 민감하고 치열해질 것을 꿈꾼다. 그렇다면 그 꿈을 나는 어디에서 꾸는가. 한국에서 전해져오는 소식들에 주먹을 쾅!하고 내려쳤던, 어떤 바보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는 말에 눈물을 흘렸던, 그래서 그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연구실 내 책상, 이라 답하겠다.

* 덧붙이는 말씀: 수많은 비정규교수들의 어이없는 해고 소식을 계속 접하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함께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내드립니다. 국회 앞 천막에서 뵈었던 김영곤/김동애 선생님이 예전보다 훨씬 핼쓱해보이셔서 가슴이 아렸습니다. 정부-국회-대학은 교원지위회복 요구에 하루빨리 성실히 응해야 합니다.


박강성주 (영국 랑카스터대 박사과정)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이 기획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http://stip.or.kr/ 함께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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