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을 말한다-23]

▲사립학교 설립자들은 학교의 공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사진/이광수)

 

투자(投資)와 출연(出捐)의 차이

사립학교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먼저 투자와 출연의 차이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투자든 출연이든 돈을 내어 놓는 행위라는 점은 같다. 그러나 투자는 이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원금은 물론 그에 따른 과실을 챙겨 갈 수 있지만 출연은 주로 공익을 위한 것이므로 돈을 내 놓는 순간부터 소유권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 다르다.

대체로 사립학교는 개인이 돈을 내어 설립하게 된다. 그러나 학교는 국민 교육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공익기관이므로 학교 설립을 위하여 돈을 내는 행위는 투자라고 하지 않고 출연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립학교 설립자들이 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돈을 투자했다고 생각하면서 학교를 마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 기업처럼 다루는 데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학교법인(學校法人) 구성 이유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팔고 사는 학원과 달리 국민 교육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공익기관이기 때문에 설령 개인이 돈을 출연하여 세우는 경우에라도 개인이 혼자 임의로 경영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신에 덕망 있는 사람들과 교육 전문가들로 학교법인(속칭 재단)을 구성하고 이 법인이 학교를 경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설립자가 학교법인의 이사장 직책을 맡고 자신의 가족들과 친인척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교의 공익성이 손상되는 경우도 역시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학교 법인이 해야 할 일

학교 설립자는 공익적 목적에서 돈을 출연하고 필요하면 또 출연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돈의 출연이 설립자의 주된 역할이라고 한다면 법인을 구성하고 있는 이사장과 이사들 역시 학교에 재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재정적 기여 다음으로 그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역할은 학교 설립자들이 나름대로 내세운 숭고한 건학이념(建學理念)을 실현하고 바람직한 학교 교육이 가능하도록 민주적인 의사결정 제도를 확립하고 업무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허울만의 법인 이사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사들이 학교를 위하여 적극적인 기여는 하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학교에서 부정이나 비리가 없도록 감시만이라도 잘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사장이 실제로 하는 일

우리나라에서 순수한 목적으로 학교 설립을 위하여 돈을 출연하고 존경 받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도 꼽아 보기가 어렵다. 대신에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은 설립자나 그의 친인척들의 생계 수단이 되고 있으며 간 혹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기도 하다. 돈을 벌 목적으로 학교를 세운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좋은 뜻으로 많은 돈을 출연하여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수입이 없다면 생계를 학교에 거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런 학교에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외에는 법인의 수입이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법률에 의하면 법인 회계와 학교 회계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고 등록금은 전액 학교 회계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법인이 경영을 하고 있는 학교에는 돈(등록금)이 있지만 법인 자체는 수입 한 푼 없는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계를 학교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이사장(또는 설립자)이 생계를 위해서 실제로 해야 하고 또 실제로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답은 합법적이든 또는 불법적이든 ‘말썽 없이 등록금을 빼내는 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등록금을 빼내는 일 말고도 이사장에게는 적지 않은 기타 수입이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교수, 직원 채용에 다른 기부금 또는 사례금, 각종 공사나 물품 구입에 따른 리베이트, 거액의 이월 적립금 운용에 따른 금융기관의 격려금 등을 들 수 있다.

학교장 밑의 허수아비 이사장들

원칙적으로는 이사회가 학교장을 선출하게 되어 있으므로 피고용자인 학교장은 업무를 처리하며 이사장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강한 권력을 독점한 학교장 밑에서 허수아비 이사장이 더부살이하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이사장에게는 공식적인 보수(월급)가 지급되지 않는 반면에 학교장에게는 지급이 되며 사회적인 명예나 지위도 일반적으로 이사장 보다는 학교장이 앞서게 된다. 따라서 학교를 개인회사처럼 생각하는 학교 설립자는 스스로 학교장에 취임하고 대신에 부모처자 심지어는 장인 장모를 꼭두각시 이사장으로 내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이런 학교가 너무나 많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사실이 학교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개정사립학교법의 핵심 내용

세상에 말썽이 나지 않는 부정이나 불법 행위가 있을 수 없다면 학교를 마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 기업처럼 경영하거나 생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정이나 불법행위가 교육 현장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예방하고 학교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개정 사학법의 핵심 내용은 (1) 이사 정수의 1/4을 학교 구성원들이 추천하여 선출하는 소위 개방 이사제도 도입 (2) 감사 1인 이상을 학교 구성원들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선출하는 소위 개방 감사제도 도입 (3) 학교 경영자의 부정 또는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4) 이사장 친인척에 대한 학교장 취임 제한 등이다.

사학 경영자들의 개정사립학교법 반대 이유

개정사립학교법의 핵심 내용은 학교의 이사회를 개방하여 학교의 공익성을 보장하려는 것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 경영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은 이를 극렬히 비판하며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강력히 주장한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비리 학교는 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소수 학교의 비리를 빌미로 모든 학교를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비리 학교가 2%에 지나는 않는 것이 아니라 비리가 노출된 학교가 2%라면 결코 소수가 아니다. 비리는 많은 사립학교에서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고 경험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2) 이사회를 개방하면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하여 좌경교육을 하게 된다.-전교조는 소수 집단에 불과하므로 불가능한 일이다. 전교조 내부에서도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교조가 접수한 재단이 단 하나도 없음이 이를 입증한다. 더구나 대학에는 전교조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3) 종교 단체 소속 학교에서 종교 교육이 불가능해진다. 개정사립학교법 시행 후에 종교 교육이 불가능해졌다는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 이 가정이 옳지 못함을 입증한다. 종교단체 소속 학교들은 이사회를 독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사회를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고 오히려 그렇게 하면 종교교육의 효과도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좋겠다. 종교 교육을 이유로 이사회 개방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종교단체 소속 학교는 굳이 이사회를 개방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여론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들 학교 경영자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주장이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꺼리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이사회에 단 한명이라도 불청객이 들어오면 학교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기 때문임을 모르면 바보 아니겠는가?

갈등의 해소 방안

학교의 공익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개정사학법은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점이 있다. 사립학교를 설립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모두 예비 범죄인 취급하여 학교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한 것과 다른 생계 수단이 없는 소위 생계형 학교 경영자(학교장)들을 무조건 일정 기간 후에 사직하도록 강제한 것은 문제가 된다.

여건이 열악한 소도시나 농촌지역에서 개인의 재산을 출연하여 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봉직해온 생계형 학교 경영자들 중에는 지역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여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떠나야 하는 이런 분들 대다수가 개정사학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립학교법은 양자택일의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이사회를 개방하면 설립자나 그의 친인척이 학교장을 할 수 있고 만약 이사회를 개방하지 않으면 못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대형 비리는 대학에서 터지고 있으므로 대학에 대해서는 초, 중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대형비리를 저지르는 대학들이 가만히 않아서 생계형 중등학교 경영자들의 투쟁 덕을 보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립학교 설립자들은 스스로 학교의 공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여 명예를 지키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이철세 (사단법인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교권위원장, 전 배재대 교수)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이 기획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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