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을 말한다-22]

이화여대 정문 바로 옆에는 아주 큰 동굴 같은 건물이 있다. 바로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이다.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것으로, 서울시에서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외관은 화려할지 모르겠으나 이 건물이 대학의 상업화를 상징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볼 때마다 거북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을 배제한 학내 공간, 이화캠퍼스복합단지
대학에 입학한 해인 2006년, 학교는 한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하 캠퍼스를 짓는다고 했다. 완공이 다가올수록 학생과 대학 본부 사이에서는 과연 지하캠퍼스라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구성될 것인가에 대해서 첨예한 대립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지하캠퍼스에 들어올 시설들을 살펴보니 쇼핑몰과 다름없는 수준이라며 학생들의 자치공간을 더욱 확보해줄 것을 요구했다.
완공된 지하캠퍼스의 이름은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로 결정되었다. 여기에 들어온 상업시설들은 스타벅스, 교보문고, GS25 편의점, 유명 꽃집, 고급 레스토랑, 푸드코트, 영화관 등이다. 학생들은 스타벅스는 정문 근처에도 있으니 이화사랑(학교 내에 있는 까페테리아로, 김밥, 빵, 커피 등 간단한 먹을 거리들을 비교적 저렴하게 파는 곳이다)을 또 만들거나, 편의점을 대신하여 생협이 입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싼 푸드코트에 관해서 본부 측은, 기존의 학생식당과 경쟁을 하게 되면 메뉴의 가격이 저렴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이 푸드코트에서 파는 음식의 가격은 5000~8000원 선에서 결정되어 푸드코트를 타학교의 학생식당처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생들의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24시간 운영하겠다던 열람실은 밤 10시까지로 이용시간을 제한해버렸다. 사물함을 설치하긴 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더 나아가 학교 총무과에서 검인도장을 받지 않은 포스터는 게시판에 부착할 수도 없다. 외부인들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재학생이라고 해도 ECC내 강의실을 빌리려면 불필요하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과연 완공 전 학교에서 주장한 것처럼 ECC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는가? 아무리 살펴봐도 내 눈에 비친 ECC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그렇게 주장한 걸까? 얼마 전 우연히 한 인터넷 기사를 보고 나서야 이 궁금함이 풀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ECC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에 대해 대학 본부 측은 ‘학교에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교수님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ECC는 사실 교수님과 외부손님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반발하는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서 열람실 몇 개와 사물함 몇 개를 주고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결국 ECC는 강의 뿐만 아니라 ‘장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그것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대학의 상업화,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 상업시설을 이용하면서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업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학내에 그러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이미 학교 공간이 상업시설로 들어차는 순간부터 상업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뉜다. 같은 등록금을 내고 같은 학교를 다니는데도, 학교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차별이 생기는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싼 대학 등록금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비싼 상업시설의 존재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학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용하면 되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안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이미 상업주의가 얼마나 대학을 물들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학교는 학생을 개개인의 소비자로서만 바라보며, 소비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학생들이 대학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제한이 생긴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대학의 이러한 태도는 등록금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1~2년 전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비판하는 학생들에게 대학 본부에서 (정확히는 학생들과 대면한 자리에서 총장님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형편의 학생도 있지만, 낼 수 있는 학생들도 있다. 낼 수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학생들을 당혹케 한 적이 있다.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학교, 학생들의 자치 공간과 생협, 그리고 저렴한 학생식당 대신에 각종 상업시설을 이용하라는 학교, 돈이 없어 그럴 수 없다면 그냥 그렇게 살라는 학교의 입장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모든 것이 ‘소비’ 위주로 사고되고 있으며, 교육마저도 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교육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소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교육의 공공성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사적인 소비재로 만들어버리는 한국사회의 움직임이 대학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이화여대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직접 대학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성균관대, 아주대, 중앙대를 비롯하여 상업시설이 늘어선 지하캠퍼스를 지은 고려대, 민자기숙사를 건설한 서강대 등 이미 한국사회의 여러 대학들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처럼 되어가고 있다.
기업화된 대학들은 학생을 이윤추구의 도구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취업시장에서 더 잘 팔리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학졸업요건의 하나로 토익을 보게 하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게 한다. 보다 잘 팔리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광고를 시작하고 새 건물을 올리기에 바쁘다. 학생이 좀 더 좋은 학습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 교수가 좀 더 좋은 연구 환경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대신 땅투기를 하고 새로운 캠퍼스를 짓고 심지어는 펀드에 투자까지 한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 중 남는 금액들이 장학금으로 쓰였던 것이 아니라 투기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교수들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것,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들은, 대학이 그만큼 ‘본업’에 소홀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울려 잘 살기를 배우는 대학으로
대학이 이렇게 ‘장사’에 열중하는 현상은 한국사회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에서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최고 기준은 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이며, 이러한 기준은 효율성이라는 모습으로, 이윤이라는 모습으로, 경쟁이라는 모습으로 위장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효율성, 이윤, 경쟁은 그 자체로는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함께 어울려서 잘 살기(부자로 산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위한 공간으로서 사회가 존재한다면,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은 사회적으로 보장 되어야 한다. 교육의 공공성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조건들 중 하나이며, 대학이 기업처럼 변질되어 가고 있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인식의 형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미래는 점차 바뀔 것이라고 희망한다.
글 정우현 (이화여대 재학생, 대학생사람연대 활동 중)
사진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사 전공)
*이 기획물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http://stip.or.kr/가 함께 진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