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시-박춘식]

 ⓒ한상봉 기자

깔때기 모자

- 박춘식

 아담한 시골 성당 - 수녀님이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 성탄 밤미사 때 아기 예수님에게 드릴 쪼그마한 선물 하나씩 들고 오세요 - 사탕 강아지 인형 빵모자 - 그리고 별 풍선 아기곰 색연필 참새 -

아빠 엄마가 아파 누워있는 가난한 베드로는 밤 미사에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 엄마가 그걸 알고 - 라면 상자를 곱게 오려 깔때기 모자를 만들고 - 초록별 군밤 찹쌀떡 사과 비둘기 썰매를 모자에 예쁘게 그렸어요 - 베드로야 미안해 - 이 모자를 아기 예수님께 드려라 -

베드로가 깔때기 모자를 쓰고 성당으로 타박타박 - 아이들이 모두 손가락질로 놀렸지만 - 베드로는 꺽꺽 엄마 아빠 생각하며 눈물 뚝뚝 - 신부님 수녀님이 손뼉을 크게 치면서 - 우와! 멋있다 - 최고다 - 하니까 갑자기 깔때기 모자가 성당 천장까지 올라가서 - 높다란 성탄 나무가 되고 - 별들과 꽃들이 천장 가득 반짝거렸어요 - 그때 엄마 아빠는 집에서 누워 하느님께 뜨거운 눈물 기도를 바쳤어요 - 밥을 굶는 아이들을 로사리오에 담아 - 밤새도록 하늘어머니께 빌고 또 빌었어요 - 그 해 성탄 밤미사는 하늘만큼 땅만큼 향긋하고 아름다웠어요 -

<출처> 반시인 박춘식 미발표 신작 시 (2013년 12월)

하느님은 낮은 곳으로 오십니다. 하늘의 은총은 독선 거만 권위 독단 근처에도 가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사람에게는 하늘의 빛살 대신에 암흑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탄과 새해의 축복은 낮은 마음으로, 낮은 몸으로 내려옵니다. 백 년 전에도 그러하였고 십 년 전에도 그러하였습니다.


 
 
야고보 박춘식
반(半)시인 경북 칠곡 출생.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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