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통일이 더딘 이유
- 박춘식
남북이 하나 되도록 비는 종이비행기 - 하늘나라 대문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 하느님 책상 위에 내려앉는 비행기는 겨우 열 개 남짓 - 하루 수백만 개의 비행기가 올라오지만 대부분 대문 앞에 떨어진다 - 온갖 칠을 하고 금 딱지 붙이고 - 이력서를 적어놓고 멋있는 그림을 그려놓고 - 자기 자랑을 가득 적고 사진을 붙여놓고 - 돈도 얹어놓고 명함도 올리고 - 통일되면 한 자리 청탁도 하고 남을 욕하는 글도 있고 - 비행기 뒤에 색종이 꼬리를 붙이고 하느님을 모시려는 초대장도 있고 - 자기가 설계한 높은 집도 있고 아무개는 나중에 지옥에 보내야 한다는 글도 있고 - 천사들이 몽땅 소각장에 보내려고 할 때 하느님께서 이름만은 적어두라고 하여 - 이름 책이 매일 수십 권 만들어진다 - -
그저 하얗기만 하고 - 말끔하고 - 가벼운 종이비행기만 - 하느님의 책상 위에 사뿐 착륙한다 - 천사가 사진과 이름을 적어 두면 - 이름과 사진이 종이 안으로 숨는다 - 자기는 죄가 너무 많아 하느님을 뵈올 수 없다고 - - -
<출처> 반시인 박춘식 미발표 신작 시 (2013년 8월)
거만한 자의 기도는 아무 힘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겸손임을 성경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섬기는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듣는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기가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하는 선생의 말은 학생들의 귓바퀴에서 곧바로 빙그르르 떨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교회 안이나 교회 밖에서 오만함의 경쟁 틈새를 다녀야하는 느낌을 가지고 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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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박춘식
반(半)시인 경북 칠곡 출생.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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