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양기석 신부, 천주교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총무]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 2,16-17)

양기석 신부(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총무, 수원교구)는 핵발전을 선택한 인류의 죄는 하느님과 같아지고 싶어 선악과를 따먹었던 첫 인류의 죄와 같다고 말했다.

8월 말, 고리부터 삼척까지 5대 종단 탈핵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탈핵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인터뷰 중 간간이 울리며 양기석 신부를 찾는 전화들……. 잠시 짬을 내어 지인들을 만날 여유도 없는 것 같았다.

▲ 양기석 신부는 "핵발전은 인간 스스로 신이 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정현진 기자

핵발전은 돌이킬 수 없는 창조질서 파괴 행위
방사능 다시 불러낸 인간, 하느님 권위에 도전한 것

"과학자들은 지구상에서 방사능이 없어진 후에야 생명이 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다. 하느님은 태초의 혼돈과 어둠을 정리한 후 창조 행위를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방사능은 하느님이 생명을 심어 주기 위해 제거하고 깊이 숨겨둔 것이라고 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다시 꺼냈다. 생명을 주재하는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양기석 신부는 "하느님의 영역에 들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인간의 능력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이 결국 핵발전을 만들었다"면서 "이는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며, 극단적인 우상숭배"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허락된 만큼만 누리고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어 모든 것을 관장하고자 한다"며 "이것이 핵발전을 가능케 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양기석 신부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체르노빌을 보라. 피폭자들이 처참하게 죽어갔고, 그 후로 태어난 2세, 3세까지 질병에 시달리고 기형의 운명을 살고 있다"면서 "이는 질병과 기형을 넘어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되는 과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유전자까지 손상되는 피폭 후의 인간은 이전의 인류와 다른 종이 되는 것이다. 이는 '핵'으로써 창조질서와 창조물을 파괴하는 사탄의 역할을 인간 스스로 자임하는 것이며, 교회가 '사회적 죄악'이라 부르며 반대하는 명확한 이유"라고 역설했다.

양기석 신부가 '탈핵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비단 그가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총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4대강 반대 활동에 참여하던 중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접하면서 4대강 사업과는 또 다른 큰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 핵발전은 더 이상 발전 방식이 아니라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파괴 행위"였다. 핵발전 문제를 고민하던 중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등이 제안해 독일에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독일의 탈핵 정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고, '탈핵'이 결코 대안 없는 반대 운동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 후로 양기석 신부는 사제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뛰어들었다.

몸담고 있는 조직과 단체를 중심으로 탈핵 강의를 기획하고 스스로 강사가 되기도 한다. 교구 내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기도 한다. 얼마 전 수원교구 사제 연수에서는 '탈핵'이 주요 이슈가 되기도 했고, 교구 내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신축할 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주변부터 조금씩 변화를 시작하는 것 같아 기쁘지만, 양기석 신부는 여전히 아쉬움이 많다고 말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핵발전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할뿐더러,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더라도 여전히 '남의 일'이라는 것이다.

양기석 신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숨죽이고 말하지 못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라며 "탈핵을 외치는 이들은 이것이 잘못되면 끝이라는 절박감을 갖고 스스로 움직이고, 연대하고 있다"고 희망을 말한다.

▲ 지난 8월 20일부터 4일간 진행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범종교 생명평화 순례'에 참여한 양기석 신부(왼쪽 첫 번째) ⓒ문양효숙 기자

ⓒ문양효숙 기자

탈핵, 신앙인들이 움직여야 할 이유 명확하다
가장 약하고 아픈 이들 앞에 짓는 핵발전소, 악하고 슬픈 일

"탈핵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들리는 말은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하지만 내 일은 아니라는 인식, 그래서 현재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려는 태도, 공고한 핵 권력층이 움직이고 있는데 마냥 정부 탓만 하고 있는 것……. 최근 대선주자들의 탈핵 정책도 모순이 많다. 표를 의식해서인지 탈핵을 하겠다고 하지만 당장 핵산업을 포기하지도 않고, 고리발전소는 폐쇄하겠다고 하면서, 신규 발전소는 허용하고 있다. 심각하게, 제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양기석 신부는 "결국 이 문제는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나서서 변해야 하는 문제다. 지금 하고 있는 활동도 삶의 변화, '나의 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를 위한 것인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본은 주교회의가 주도해서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거리로 나와 핵발전을 멈추라고 외쳤다. 일본이 했다면 우리도 가능하다. 천주교 신자 10만 명만 모인다면 정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양기석 신부는 이번 탈핵 순례길에 대해, "핵발전소가 들어선 곳은 특히 지리적으로 주변이 낙후됐고, 저학력 · 고연령층이 많은 지역이다. 한 마디로 알아도 문제제기하기 어렵고 쉽게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들, 삶이 너무 척박해서 경제적인 요인에 쉽게 마음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이들만 찾아 핵발전소를 짓고 있다"면서 "이런 비인간적인 정책이 너무나 슬프고 악하지 않은가"라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우리 사회 수많은 곳에 있는 작고 아픈 사람들,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이 핵발전소와 송전탑이 들어서는 지역의 사람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양기석 신부는 "이번 순례에서 종교와 기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행복하고 생명이 보호되는 세상'을 바라는 염원은 모두 같았다"면서 "그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 "아직은 외롭고 먼 길이지만, 멈추지 않고 옳은 길을 갈 것"이라는 양기석 신부 ©정현진 기자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 그러나 멈추지 않고 이 길을 갈 것

"지지와 연대의 뜻을 밝히는 이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아무리 기도하고 생각해 봐도 이것이 옳은 선택이기에 할 수 있는 만큼 해 나갈 것이다."

양기석 신부는 요즘, 선배 사제들이 사회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독일에 갔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독일 그린피스 회원 60만, 분트라는 환경단체 회원 40만이라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독일 그린피스 1년 예산은 한국 돈으로 약 550억 원. 덕분에 자체 연구소를 운영할 수도 있고, 실무자들도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대우를 받으며 일한다. 수많은 회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소신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은 양기석 신부가 보기에 꿈같았다.

그러나 "길게 숨을 쉰다 생각하며, 멈추지 말고 그 길을 가라"는 조언을 들은 양기석 신부는 자신이 '씨 뿌리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양기석 신부는 "누군가는 밭에 씨를 뿌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일구고, 누군가는 열매를 거둬들일 것"이라며 "그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지금 문제를 인식한 누군가가 시작하고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나라도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그런 사회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 가장 나쁜 미래, 돈 없는 노후보다 핵발전소

"우리 모두 조금 가난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제 어머니께서는 '모든 사람이 조금씩만 덜 가지면 한 사람 몫이 더 나온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도로시 데이)

양기석 신부가 요즘 가슴에 담고 있는 말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한다. 교육비를 지출하고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다. 그러나 핵발전소 사고 한 번이면 우리의 모든 미래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이어서 그는 "안전한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삶을 바꿔야 한다"며 "그것은 독점과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다른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양기석 신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면서 "그런 예수가 요구하는 것조차 우리들의 구원이다. 그런 예수를 따른다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옳은 길을 선택하고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뚜렷한 방법이 없어 조금 답답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고 탈핵의 움직임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양기석 신부는 말한다. 그래서 그 자신 역시 기회가 닿는 대로 목소리를 내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자리를 불문하고 뛰어다니는 중이다.

그는 '핵'이라는 문제가 워낙 전문적으로 보이는 까닭에 자신은 알고 있어도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나 자신도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정리하고 우리 신앙에 맞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며 "조금 더 용기를 얻고 공부해서 위험을 알리고 안전한 삶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역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라는 게 양기석 신부의 생각이다.

양기석 신부는 "대안은 이뤄지고 있다"면서, 우선 몸의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하듯, 우리 삶 안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보자고 독려한다. 그는 "가정에서 쓰는 전기 10%만 줄여도 핵발전소 하나를 가동하지 않아도 된다. 사소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이제 단순한 절약을 넘어 생명을 지키는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시민, 특히 신앙인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된다"며 "시작이 어렵지만, 변화를 모색하고 머리를 맞대면 더 나은 방식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양기석 신부가 몸담고 있는 수원교구는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제들은 핵발전에 관해 공부를 시작했고, 본당 건물이나 교구 건물을 보수 · 신축할 때, 태양광 등을 이용할 궁리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환경운동가 출신 시장을 둔 수원시는 '환경 수도'를 목표로 삼고,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원 햇빛발전소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양기석 신부는 이런 시도가 새삼 반갑고 고맙다. '나비 효과'처럼 한 곳에서의 움직임이 다른 지역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양기석 신부의 꿈은 한국 교회 전체가 '탈핵'을 외치는 것, 그로부터 전세계가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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