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재: 핵을 넘어 생태사회로-4]

한국 정부는 '녹색성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불행히도 이 정부가 말하는 녹색의 핵심은 핵발전이다. 한국 정부는 전력에너지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약 40조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추가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정부는 지난 2010년에 핵발전소를 전략 수출산업으로 지정했고, 2011년 후쿠시마 대재앙을 계기로 앞으로 20년 동안 전세계에 80기의 핵발전소를 수출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 3대 핵발전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야심만만한 구상을 세워두고 있다. 아울러 오는 2014년 만료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앞두고 일본처럼 핵 처리 권한을 갖기 위해 은밀히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 2012년 3월 26~27일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우리는 핵무기는 국가나 세계의 안보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위협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핵발전은 녹색발전이 아니며 핵안보는 생명안보가 아님을 천명했다. 진정한 안보는 핵보유국들의 안전이 아니라 전 지구생명공동체의 안전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요한 14:27)임을 고백했다.

우리는 정부와 국민에게 핵발전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해 강조해야 한다. 핵발전 사고는 매일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매일 일어나고 있다. 핵발전은 실수 없는 인간을 요구하지만, 그런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후쿠시마를 보고 혀를 찰 때가 아니다. 얼마 전에 우리도 고리 핵발전소에서 후쿠시마 바로 직전의 상황까지 갔었기 때문이다. 한 협력업체 직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지난 2012년 2월 9일 고리 1호기에서 블랙아웃(blackout) 사고가 일어났다. 회사는 조직적으로 그것을 은폐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술자리에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문제는 고리 1호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후한 핵발전소이고 30년의 수명을 다한 지난 2008년에 이미 폐쇄되었어야 하나 당시 안전검사 '미달'에도 불구하고 10년 수명연장을 받아 지금 추가 운전 중이라는 사실이다.

수명연장 검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로를 둘러싸고 있는 압력용기의 내구성이다. 이 압력용기는 장시간 방사능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성자로 인해 매우 약해진다. 깨지기 쉽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정전 사태가 일어나면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긴급(노심)냉각장치(ECCS)가 가동되는데, 이 안전장치가 오히려 '비수'가 될 수 있다. 뜨겁게 데워진 유리잔에 갑자기 찬물을 부으면 '쨍' 하고 깨지듯, 오랫동안 사용해서 약해진 원자로에 갑자기 냉각수를 부으면 금이 가거나 심지어 폭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고리 1호기는 압력용기 파괴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수명이 연장되었다. 이유는 엄격한 파괴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이 나오자 느슨한 방식의 비파괴검사를 실시하여 거기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조직검사에서 암으로 나왔는데, 초음파검사에서 암이 안 나왔으니 괜찮다는 논리"다. 지금 우리는 후쿠시마를 바라볼 때가 아니다. 바로 우리집 앞마당에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 "한국 교회는 계속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단체와 연대해 고리 1호기가 폐쇄될 때까지 기도하며 행동해야 한다." 사진은 8월 20일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범종교 생명평화 순례' 출발에 앞서 고리원자력발전소 앞에서 기도하는 천주교 참가자들 ⓒ문양효숙 기자

그러므로 우리는 고리 1호기를 반드시 폐쇄시켜야 한다. 고리 1호기는 1977년 6월 임계(핵연료가 처음 열을 발생시킨 시점) 이후 35년이 지난 국내 최고령 핵발전소다. 폐쇄 여부의 최종결정권을 가진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결국 지난 7월 4일 재가동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 정부는 전세계에서 현재 가동 중인 435기 핵발전소 가운데 30년이 지난 것이 전체의 41%인 178기에 달한다는 점, 그리고 40년 이상 가동 중인 핵발전소도 32기(7.4%)에 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핵발전에 대한 반대는 만성적인 전력수급 불안과 국가 재정 부담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고리 1호기 재가동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고리 1호기는 향후 30년 이상 가동한 노후 핵발전소 처리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 월성 1호기(1982년 11월 임계)는 오는 11월에, 고리 2호기(1983년 4월)는 내년 4월에 각각 설계수명 30년의 시한을 채우게 된다.

고리 핵발전소 30km 안에 있는 주민은 약 342만 명, 월성의 경우는 127만 명이다. 전세계적으로 고리 핵발전소만큼 대도시에 인접해 많은 수의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여기에는 대규모 산업시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번에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핵무기 보유능력을 갖추겠다고 이야기한 정몽준이 지배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의 울산공장은 고리 핵발전소에서 약 26km, 월성 핵발전소에서 약 22km 거리에 있다.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은 고리에서 약 27km, 월성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다. 울산 지역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전국 생산액의 13.56%, 전국 수출의 15.31%나 된다. 그러니까 고리나 월성에서 사고가 날 경우 인구는 물론이지만 이 나라의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빤하다.

앞서 언급한 사실이긴 하지만, 탈핵법률가 모임인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도 핵발전소 사고는 고장이나 자연재해 말고도 미사일이나 제트기로 테러를 가하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국내 핵발전소의 격납건물은 연료탱크가 가득찬 상태인 점보비행기의 충돌에 견딜 수 없다. 김 변호사는 따라서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핵발전소이며,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것만이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강조한다.

최근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는 유효 가동 기간이 지난 고리 1호기 재가동 승인을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30년이 넘는 핵발전소를 순차적으로 폐쇄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교회는 계속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단체와 연대해 고리 1호기가 폐쇄될 때까지 기도하며 행동해야 한다.

핵은 결코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다. 핵은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 전체의 생명안보를 위협하는 자멸의 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핵무기의 전면적 폐기와 핵발전의 완전한 종결을 요구해야 한다. 핵우산을 통한 방어든, 핵공격을 통한 방어든, 핵을 통한 안보는 진정한 안보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핵발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비 녹색정책에서 벗어나 재생가능 자연에너지에 기초한 진정한 녹색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각국 정부는 더이상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완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핵에너지 체제를 더이상 확대하지 않고 거기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핵 지뢰밭 동북아시아에서 생명의 연대가 시급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하면, 현재 전세계에는 모두 440여 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550여 기가 새로 건설 중이거나 앞으로 건설될 계획이다. 한국에는 1978년에 첫 핵발전소인 고리발전소가 부산 기장에 들어선 이래 현재 모두 21기의 (곧 23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데, 원자로 가동 대수로 한국은 세계 5위지만(미국이 104기로 1위, 프랑스가 58기로 2위, 일본이 54기로 3위, 그리고 러시아가 31기로 4위), 핵발전 밀집도에 있어서는 세계 1위다. 일본은 54기나 되는 원자로를 가지고 있고, 중국은 현재 14기를 가동 중인데 후쿠시마 대재앙 이후에도 중국의 동해 연안에 27기의 원자로를 추가로 짓고 있다. 한마디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 지뢰밭'이다. 만약 앞으로 다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확률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다.

중국과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이고, 일본은 핵무기 비보유국이면서도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재처리 시설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곧 상세히 살펴보겠지만 일본은 이미 막대한 잉여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엄청난 양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동북아시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생명의 연대를 이루는 일은 곧 세계평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의제가 되었다.

▲ 백낙청, '2013년 체제 만들기', 창비, 2012
백낙청 교수는 그의 책 <2013년 체제 만들기>(창비, 2012)에서 현 정부가 들어서서 '비핵 · 개방 · 3000'이라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작년 11월 29일 담화에서 북의 자발적 핵 포기 가능성을 배제해 버렸으므로 스스로 자기 정책의 실질적 파탄을 자인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2005년 베이징 6자회담이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합의는 북이 핵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무장을 어떻게 방지하느냐에 대한 합의였다.

그런데 지금은 북이 핵실험을 2회나 했고, 우라늄 농축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졌고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의 성격도 달라져 있다. 게다가 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북미간 불신이 더욱 깊어진 상태다. 북의 김정은 체제가 안착하고 오바마가 재선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겠으나, 김정일 위원장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칭송되는 핵무기 보유를 북이 완전히 포기하는 일은, 비록 김위원장 자신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임을 거듭 강조하긴 했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것임을 지적한다.

하지만 백낙청 교수의 핵심적 제안은 북핵 문제는 결코 핵문제에만 매달려서는 풀 수 없는, 전체 한반도 문제의 급소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부시 행정부가―실은 한때 클린턴 행정부도― 대북강경노선으로 기울었을 때 김대중 · 노무현 정부와 한국 측 전문가들의 끈질긴 설득이 미국의 강경노선을 경계하고 마침내 방향을 바꾸는 데 기여한 바가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한국 정부의 주도력이 중요한데 이 한국 정부의 정책을 바꾸거나 정부 자체를 교체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국민뿐이다. 그 점에서 남한의 민간사회라는 '제3당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북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하려면 이른바 체제보장에 대한 북측의 요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할 터인데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 그리고 대규모 경제원조가 더해지더라도 남한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반도의 재통합 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할 '국가연합'이라는 장치가 마련되어갈 때 비로소 북측 정권으로서는 비핵화 결단을 내리고 자체개혁의 모험을 감행할 그나마의 여건이 충족되는 것이라고 백낙청 교수는 강조한다. 그는 현 단계 시민참여형 통일과정의 핵심 현안인 국가연합 건설 작업과 북핵 문제 해결의 현실주의적 인식 사이에 뜻밖의 친화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2013년 이후 한반도가 6·15 시대의 재가동을 시작으로 9·19 공동성명의 이행과 남북연합의 건설 과정에 들어설 때, 남북이 공유하는 '2013년 체제'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낙청 교수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면서 특히 최근 일본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만들어진 일본의 군사 관련 세 가지 금기 사항이 최근 들어 모두 해제되었다. 첫째로, 1969년에 우주를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우주의 평화 이용 원칙'은 1998년에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 시험을 하자 "우주 이용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추진한다는 다섯 글자를 넣어" 군사용 첩보위성 4기 체제를 선언하면서 깨뜨려 버렸다. 둘째로, 2011년에 무기 수출 금지 3원칙을 수정하여 무기 공동 개발과 수출을 허용함으로써 또 하나의 금기도 깨뜨려 버렸다. 셋째로, 결국 지난 6월 22일 일본 정부는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국가의 안전 보장에 이바지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마지막 금기마저 깨뜨리고 기어이 핵무장화의 길을 내딛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에 이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중단했던 플루토늄-우라늄 혼합산화물(MOX) 연료 가공 공장의 추가 공사를 승인함으로써 핵발전소가 폐지되더라도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플루토늄 관련 시설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세상에 천명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핵발전소 존폐와 상관없이 군사용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롯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을 존속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오모리 현 롯카쇼에 위치한 롯카쇼무라는 일본 핵 관련 시설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전국의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모아 플루토늄을 추출해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고가 끊이지 않아 사실상 가동이 중단되었던 상태였는데, 이번에 MOX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의 추가 건설이 허가 난 것이다. 그런데 이 공장의 완공예정은 2016년이다. 하지만 MOX를 원료로 사용하는 고속증식로 몬주는 2050년에나 상업화가 가능하다. 여기서 이번 공장 건설 허가의 목적이 무엇인지 너무도 분명히 드러난다.

현재 일본이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플로토늄의 양은 국내에 6.7t, 영국과 프랑스 재처리 시설에 23.3t 등 총 30t이다. 핵폭탄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급 플루토늄은 고작 30~50kg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일본이 고도의 핵개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는 근거 중 하나는 '고속증식로 몬주'의 존재다. (몬주는 대승불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문수를 의미한다. 우리의 동해쪽 후쿠이 현 쓰루가 시에 세운 몬주 고속증식로는 1995년 가동 4개월만에 고장이 났고 재가동 3개월만인 2010년에 또 고장을 일으켜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고속증식로는 핵연료의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꿈의 원자로'로 불린다. 여기서는 무기로 사용 가능한 순도 97.6%의 플루토늄이 나온다. 일반 원자로에서 사용한 '사용후 핵연료'에도 플루토늄이 포함되어 있지만 군사용으로 전용하기에는 순도가 낮다.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도 소위 꿈의 원자로라는 고속증식로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사고 위험과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실상 상용화를 포기한 상태다. 현재는 인도와 중국과 러시아 정도가 고속증식로를 개발 또는 운영 중인데 이것은 사실상 군사용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사고 위험은 높은 반면 상용화 가능성이 낮은 몬주를 천문학적 비용(향후 10년간 몬주의 유지와 연구, 개발비로 연간 약 3천억 엔, 한화 약 4조 3천억 원을 투입할 예정)을 퍼부어 가며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핵무기 개발이라는 이유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문제는 미국이 이를 허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핵연료 재사용을 명분으로 1960년대부터 고속증식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미국은 냉전 체제에서 소련과의 대결 상황을 감안하여 이를 용인했다. 일본은 이 속에서 '당장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지만 핵무기 제조의 경제적이고 기술적 능력은 항상 보유한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 왔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결국 1987년 미일 정상회담에서 관세 등 미국의 경제적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미국의 허가 없이도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비교해 한국은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로만 있을 뿐이다. 일본은 원자로에 사용되는 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원심분리기와 연 800t에 달하는 폐연료봉 재처리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라늄 핵폭탄과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모든 기초 시설을 갖추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할 때 꼭 핵실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5대 핵 보유국은 핵무기 검증 실험을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하고 있는데 미국은 NOVA, 영국은 VALCAN이라는 핵융합 실험 장치를 갖고 있다. 일본도 GEKKO-XII라는 핵융합 실험장치가 있어 일본은 사실 북한보다 핵무기 개발에 더 근접한 나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핵무기를 대륙간탄도탄과 결합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는데 일본은 이미 OREX라는 대기권 재돌입 실험 장치를 통해 대륙간탄도탄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해 놓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올 여름 2회에 걸쳐 지구 대기권 재돌입 실험을 다시 한다고 한다. 즉각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로켓 M-V는 이미 세계 정상급이다. 이는 언제든지 대륙간탄도탄으로 전용될 수 있다. 북한이 시도하는 액체연료 형식 로켓과 관련해 일본은 지구 저궤도에 16t짜리 인공위성을 올려놓을 수 있는 실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일본은 이렇게 '평화'라는 미명 하에 핵무장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소리 없이 갖추어 놓은 것이다.

일본이 핵무장으로 나아가는 명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북한이다. 두 차례에 걸린 북의 핵실험은 이미 모든 능력을 갖춘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데 핑계 거리가 되고 있다. 둘째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을 갖고 있다. 또한 중국은 유인 우주선을 성공시키고 항공모함을 일본의 해양 교통로로 내보낼 수 있으며 중국 남단 해남도 해저에 잠수함 기지를 가지고 있기에 일본은 불안을 느낀다.

그러니까 실로 2차 대전에 끝난지 60여 년만에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가 다시금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6자 회담이 북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면 일본의 핵무장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리고 북한과 일본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하면 한반도 주변에 핵무기 제조 능력이 없는 나라는 남한밖에 없게 된다. 남한도 심각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동북아는 명실상부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 지뢰밭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동북아시아에서 '생명의 연대'가 시급하다.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생명의 연대를 이루는 일은 곧 세계평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의제가 되었음을 자각하고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를 이루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근래 일본의 반원전, 자연에너지 운동가인 데쓰나리가 최근 한국을 방문하여 한중일 3국의 시민사회종교단체가 연대해 한중일 3국 중 어느 나라에서 핵발전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자국민은 물론 이웃나라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해 사고를 낸 전력회사, 핵연료 제조업자 등에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는 등 무한책임을 묻는 운동도 벌여 나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한마디로 핵발전소가 파산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2012년 5월 14일자). 이런 아이디어도 동북아 생명연대에 참고할 만한 제안일 것이다. (계속)

장윤재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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