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신부 "우리는 절반쯤만 가톨릭"
서공석 신부 "가톨릭교회, 청산 못한 과거 많아 … 복음 퇴조"

정양모 · 서공석 신부의 ‘우리 시대의 신앙, 다시 읽기’ 특강이 지난 2일,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특강은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동화 신부)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공동 주최했고, 2백여 명이 참석해 두 원로 신학자의 강연에 귀 기울였다.

정양모 신부 “주님의 기도, 사랑의 계명과 잘 어울려 감탄 절로 나와”
논쟁 사화 “안식일이 사람 위해 생겼다”는 답변, “예수님 인본주의 사상과 들어맞아”

▲ 정양모 신부

정양모 신부(안동교구 원로사제)는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나는 예수를 이렇게 본다>라는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정 신부는, 이 책 내용의 일부인 주님의 기도, 예수님의 감사 기도, 게세마니 간구,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 등 성경과 교회사에서 돋보이는 기도를 소개한 데 이어, 예수님의 논쟁사화와 대담사화의 정리해 해설했다.

정 신부는 '주님의 기도'에 관해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아빠의 돌보심에 힘입어 우리가 우리의 나날을 꾸려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대짜배기 기도문”이라며 “어쩜, 예수님의 핵심 훈계인 사랑의 이중계명과 그렇게도 잘 어울릴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감상을 전했다.

특히 정 신부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구에 관해, ‘저희’는 ‘저희 모두’를 가리킨다며, 이 간구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훈계와 썩 잘 어울린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진심으로 이 간구를 바친다면 혼자서만 독식하지 않고 빈자들의 의식주를 돌보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며 “자신이 먹고도 남는 음식은 빈자의 몫이다. 자신이 입고도 남는 옷은 빈자의 몫이다”라는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상기시켰다.

또한, 정 신부는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의 ‘유혹’은 예수 추종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 하느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자만의 유혹, 하느님이나 다른 사람과 화해하지 않으려는 불화의 유혹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간구와 이 부분을 관련해 생각해 보면 ‘유혹’은 “혼자 먹으려는 독식의 유혹, 식탐의 유혹”이라며, 이 유혹을 피하는 길은 모든 고등종교에 있는 덕목인 ‘나눔’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정 신부는 그리스도교 일각에서 강조하는 ‘십일조’에 관해 “유대교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십일조가 없어졌는데, 이를 되살려서 걷고 불투명하게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면에서는 이슬람교가 낫다”며 이슬람교의 계명인 ‘다섯 기둥’(五柱) 가운데 하나가 ‘희사’이며,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에 바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수입의 40분의 1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정 신부는 마르코 · 마태오 · 루카 등 공관복음서에 실린 ‘예수의 논쟁사화와 대담사화’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자세히 밝혔다. 특히 그는 예수님 일행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다 밀 이삭을 뜯은 일에 관한 논쟁을 소개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굶주림은 준법 예외 상황”이라는 것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가지 않았다”는 것,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응답 등 세 가지였다. 정 신부는 이 가운데 두 번째 대답이 “태초에 사람이 창조되었고, 안식일은 나중에 사람의 휴식을 위해서 제정됐다”는 뜻으로 “예수의 인본주의 사상과 딱 들어맞는다”며 “이것이 예수님의 답변일 것”이라고 말했다.

▲ 부산 가톨릭센터 교육실을 가득 채운 청중이 정양모 · 서공석 신부의 특강을 들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예수 공부, 예수 흉내” … “우리는 절반 정도 ‘가톨릭’이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세례받은 지 22년 됐다는 한 신자는 “가톨릭교회에도 교리와 제도를 강조하는 주류와 그렇지 않은 비주류가 있는데, 이를 들여다보니 헷갈린다”며 신앙생활을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도움 말씀을 해달라고 청했다.

정양모 신부는 “천주교 신앙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게 아니고, 옛날 옛적 지중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딱 들어맞게 만들어졌고, 그 이후에도 지중해 사람들이 2천 년 동안 가꾼 것”이라며 “그게 한국인에게 그대로 들어맞는다면 기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평생 성경을 공부했지만, 천주교 신앙이 나에게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한다.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하며, 이 때문에 “물려받은 신앙의 언어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신부는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면 우리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오래된 이름이고,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밝히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 그 이름대로 살면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 예수 공부 좀 더 하고, 예수 흉내 내면 되겠네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우리의 삶, 죽음, 부활을 짝 맞추면 됩니다. 예수 팔자가 우리 팔자 아닌가요? 예수 공부는 끝이 없고 예수 닮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36~37세에 돌아가셨어요. 40세를 못 넘겼습니다. 제가 진실로 예수님처럼 살았다면 사십을 못 넘겼어야 하는데, 예수님보다 곱빼기를 더 살고도 잘 웃고 잘 먹습니다. 예수 공부하는 척, 예수 닮는 척만 한 것이죠. 그것만 해도 예수님은 어여삐 봐주십니다. 그래서 살만한 거예요.”

한편 ‘가톨릭’(Catholic)이라는 용어에 관해 정 신부는 “서기 110년 경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가 붙잡혀 로마로 압송되며 여러 천주교 공동체에 보낸 편지에서 이 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보편적'이라는 뜻의 가톨릭은 "우리 교회는 폭이 넓다. 인종 차별, 신분 차별, 남녀 차별 안 한다. 주님 안에 하나”라는 의미라고 밝히며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천주교가 그렇게 차별을 안 하는가” 하고 물었다.

정 신부는 가톨릭교회가 원칙적으로 인종과 신분에 따라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을 “장한 일”이라고 평가했지만,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남녀를 차별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천주교가 여성 주교 · 사제는커녕 여성 부제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절반쯤 가톨릭이다. 아직도 멀었다”고 말했다.

서공석 신부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 …
“돌봐주고 가엾이 여기는 실천이 하느님 뒷모습”

“성서나 전통의 문서 안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신앙인의 삶이고, 성서와 전통의 문서들은 과거의 삶을 문자화하여 전하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모세 사건이나 신약성서의 예수 그리스도 사건은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를 일으켰다. 따라서 진리는 신앙인의 삶 안에 있다.”

▲ 서공석 신부
‘오늘을 위한 그리스도 신앙’을 주제로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서공석 신부(부산교구 원로사제)는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신앙생활은 교리를 배우고, 계명을 지켜, 은총을 얻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며 “이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간 삶의 시대적, 지역적 새로운 가능성들의 원동력”이 됐다.

서 신부는 신앙과 실천에 관한 논의를 펴나가며 탈출기의 구절을 인용했다.

“내 모든 선한 모습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며, 야훼라는 이름을 너에게 선포하리라. 나는 돌보고 싶은 자는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고 싶은 자는 가엾이 여긴다.” …… “내 얼굴은 보지 못하겠지만 내 뒷모습만은 볼 수 있으리라.”(공동번역, 출애 33,19-23)

서 신부는 이 구절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돌보아 주고 가엾이 여기는’ 실천을 하는 사람들 안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라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돌봐주고 가엾이 여기는 실천이 하느님의 ‘선한 모습’이며 그것이 하느님이 지나간 뒤 나타나는 ‘뒷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변한 사람들의 삶”이라고 말했다.

가톨릭교회, 복음은 퇴색하고 중세 유럽식의 실천이 더 많이 보여
예수님은 특수 복장 입지 않았고 ‘작대기’ 짚지도 않았다

서 신부는 강연을 마치며 “복음이 퇴조하면 ‘믿어라, 지켜라, 바쳐라’ 하고 말하는 민속종교의 언어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서 신부는 "이렇게 되면 복음은 빛을 잃는다"며, "우리가 역사와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에 그 시대와 사회의 언어로 신앙을 표현하지만, 시대가 지나면 과거에 얻은 것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우리 가톨릭교회 안에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것이 많아서 복음은 퇴색하고, 유럽 중세 사람들의 실천이 더 많이 보인다”고 우려하며 판공성사, 주일미사 참례 의무, 봉사 직무자들에 대한 신분적 개념, 순종의 강요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사람이 식사를 거를 수도 있는데, 주일미사 한 번 빠졌다고 ‘대죄’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 신부는 “‘이상한 옷’을 입고 높은 사람 행세한다”며 성직자의 복장에 관해 비판했고 “예수님은 특수 복장을 하지 않았고 ‘작대기’를 짚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질의 응답 시간에 한 참가자는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었다. 이에 서 신부는 “‘실체’라는 용어는 ‘우연’과 대립되는 것으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나왔다”고 소개하며, 빵과 포도주의 실체변화란 물리적 · 화학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우리가 성체를 예수님의 몸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이며, 영성체란 “우리가 이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인식하고 먹고 마시겠다”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결국 이는 “예수님의 삶이 우리 안에서 다시 재현되도록 하겠다는 뜻”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성당에서는 말하지 말고 시키는대로만 하라?
"그런 시대 지나갔다. 신자 대중도 이런 강의 듣고 비판 정신 갖는다"

강의에 참석한 부산교구의 한 사제는 “서 신부님이나 정 신부님은 신학적으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데, 이런 대중강연을 무분별하게 한다는 것은 좋지 못하다. 신부님들, 수녀님들, 좀 더 신학 기초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야 한다”면서 “오늘 질문한 참석자들이 신부님들의 대답을 듣고, 본당에 가서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왜 신부님은 그렇게 가르치시느냐’고 물으면 더 신자들에게 혼란이 되지 않겠느냐”고 문제제기했다.

이에 서공석 신부는 “어느 성당에 가니 ‘모이면 기도하고 나가면 전도하자’고 써붙여 놨는데, 이는 ‘성당에서는 말하지 말고 시키는대로 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며 “너무 염려하실 필요없다”고 답했다. 이어서 서 신부는 “지금은 정보가 많이 흐른다. 이런 강의가 있으면 와서 마음에 드는 것은 선택하고, 그러면서 비판 정신도 가질 수 있다. 제가 말하는 것도 여러분이 다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고,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틀렸다고 말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다음 '지금여기 특강'은 '수행' 주제로 박기호 · 이연학 신부가 강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다음 특강은 6월 23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서울 신수동 예수회 센터 3층 성당에서 박기호 신부(예수살이공동체 길벗 사제), 이연학 신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원)를 초청해 '수행'을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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