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희생자를 요구하는 파괴적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이 전쟁에서는 무기로만 싸우는 게 아니고 언론 플레이를 동원해 싸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방식의 '내러티브'와 '프레임 씌우기'다. 일어난 사건을 어떤 확고한 틀에 집어넣고 특정한 표현방식으로 얽어맨 뒤 그것을 지치지도 않고 무한반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처음부터 2023년 10월 7일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조직 하마스의 무장공격을 "괴물 같은" 혹은 "악마적인" 테러 행태로 규정하고, 그것이 사무치도록 깊은 유대인 혐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절멸하려는 악의적인 시도에서 비롯한 테러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애써 왔다. 이에 따라 하마스 테러리스트에 관한 언급이 끊이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정책에 대해 한마디라도 비판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먼저 자신이 그 '테러리스트'와 무관하며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나치 이후 가장 끔찍한 유대인 박해 사건이 된 이 "트라우마를 야기한 테러 공격"으로 이스라엘 민간인 120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그 사이 이 숫자를 자체적으로 수정했는데, 실제로 이스라엘 측의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36명을 포함해 695명이었으며, 군 사망자가 373명, 외국인이 71명으로 모두 합해 1139명이었다. 이스라엘 측 목격자들과 이스라엘 군의 증언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키부츠와 뮤직페스티벌 부근에서 발견된 시신 중 다수는 이스라엘 군의 탱크 공격과 아파치 전투헬기 공격에 의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군에서도 자신들 쪽에서 '한니발 독트린'을 발효한 것이라고 시인했다. 이스라엘인들이 적의 손에 떨어져 포로나 인질이 되느니 차라리 목숨을 잃는 편이 낫다는 것이 한니발 독트린이다. 

서방 언론은 이런 사실을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번 설정한 내러티브 방식을 변경 없이 고수한다. 하마스 전사들이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행한 폭력 행위들과 성폭행을 최고 강도로 비판하고 전쟁범죄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까지도 모두 당연하게 동의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에서도 심각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프리랜서 탐사 저널리스트 조너선 쿡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왜 언론은 10월 7일에 이스라엘 스스로가 행한 공격의 증거를 무시하는가?"('Israel-Palestine War: Why is the Media Ignoring Evidence of Israel’s Own Actions on 7 October?', www.middleeasteye.net)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즉시 홀로코스트와 비교되고, 하마스 전사들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족 전체가 나치처럼 취급된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들과 언론은 "인간의 탈을 쓴 이 짐승들을" 나치와 나치 독일인들처럼 그들의 거처와 더불어 가차없이 쓸어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그래야만 마침내 유대인 혐오와 반유대주의를 지상에서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외친다. 팔레스타인 민족을 절멸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이처럼 홀로코스트에 연관 지어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런 내러티브와 프레임 씌우기를 '문명화된 (서방세계의) 가치 공동체'는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였다. 이스라엘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런 인정은 인구가 대단히 조밀한 가자 지구와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그곳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 폭탄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공격은 야만에 맞서는 문명사회의 투쟁으로 포장된다. 이제 '테러단체' 하마스와 10월 7일의 "테러 공격"이라는 표현은 끝없이 반복되며 뚜렷한 낙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 규정과 낙인은 팔레스타인 민족 전체와 다양한 팔레스타인 조직 전체로 확장된다. "저항운동"(하마스 자신이 스스로를 규정하듯) 또는 "해방운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곧장 테러리스트 동조자 또는 반유대주의자로 의심받게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무엇보다도 유럽 국가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실감한다. 아랍 지역에서 온 무슬림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독일에서 이들은 반유대주의자 또는 유대인 혐오자로 의심받아 국가 권력 통제를 받는다. 이스라엘 국가 존립을 명시적으로 인정해야만, 즉 자신이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이민자가 독일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규정이 독일에서 논의되고 있다. 독일의 작센안할트주에서는 이미 이에 상응하는 법이 발효되었다. 뿐만 아니라 "요르단 강에서 서안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과 같은 슬로건도 바이에른주에서는 금지되었다. 이 슬로건이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에 가로막히지 않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온전한 독립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슬로건은 국가 이스라엘을 없애버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확실하게 반유대주의적인 내용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이스라엘 국가 존립과 안전을 보장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으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자 전쟁에서 인간성을 침해하는 이스라엘의 명백한 범죄에까지도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대신 독일 및 다른 유럽 국가들은 가차없는 폭격으로 '너무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을 우려할 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을 향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좀 적게 죽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오로지 사망자 수가 너무 과격하고 끔찍하게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이스라엘의 자위권일 뿐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재소환하는 모순은 오메르 바르토프(Brown University)와 크리스토퍼 브라우닝(UNC-Chapel Hill)을 비롯한 국제적으로 저명한 홀로코스트 및 반유대주의 연구자들이 2023년 11월 20일에 발표한 '홀로코스트의 남용에 대한 공개서한'(An Open Letter on the Misuse of Holocaust Memory)으로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한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섞여 있는 이 학자들의 그룹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을 역사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를 강조했다. 75년간의 팔레스타인 민족 추방 역사, 이스라엘의 65년간 팔레스타인 점령사, 그리고 16년간의 가자지구 봉쇄 역사를 지적한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폭력 원인을 왜곡하고 반아랍 인종주의로 나아가는 결과를 불러온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 공개서한 작성에 참여하고 이에 서명한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 연구학자 라즈 시갈(Stockton University)은 오메르 바르토프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다. 그는 이미 2023년 10월 13일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인종청소(대량학살)의 교과서적인 사례'(Textbook Case of Genocide)로 지칭하며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공격 방식이 '인종 청소'로 평가할 요건을 충족한다고 본 것이다. 시갈의 시각에 동의하는 많은 인물 가운데는 기후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도 포함된다. 툰베리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팔레스타인 민족에 대한 '인종 청소'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으로 인해 툰베리가 반유대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툰베리가 이끄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에 참여해 온 독일 지부는 툰베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의 노선에 발맞춰 무조건 이스라엘 편에 서기로 한 것이다. 서방 언론, 특히 독일 언론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와 이스라엘 내러티브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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