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7일과 28일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열린 지 5년이 지났다. 이 회담의 실패는 이후 몇 년간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 모두가 엄청나게 악화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측이 북한의 제의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회담을 갑자기 중단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민간 경제와 주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UN 제재를 해제하는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핵무기연구소(NWI)를 폐쇄하겠다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안보상의 이유로 외교적 프로세스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존의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기를 원했다. 미국 ​​정부는 이 제의를 거절했고, 제재 해제의 기본 조건으로 북한이 먼저 모든 핵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최대주의(맥시멀리즘) 입장을 견지했다. “좋지 않은 합의보다는 아예 합의가 없는(no deal) 편이 낫다.” 이런 결정은 부시 정권 때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가장 급진적 대표자 중 하나인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머리에서 “테러와의 전쟁”과 “악의 축”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잘 알려진 대로 북한도 이 “악의 축”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저명한 핵 과학자이자 핵 안보전문가이며 북한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는 볼턴과 트럼프의 결론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영변 핵무기 연구소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브레인 센터'이며 그 규모는 미국 국립 핵 연구소 두 곳인 로스앨러모스(헤커 자신이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소장을 맡았다) 및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와 비슷하다. 핵 연구소 폐쇄는 결국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종료를 의미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헤커는 당시 트럼프 정부가 하노이에서 나온 북측 제의의 진정한 차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잘못 평가했으며, 존 볼턴의 경우처럼 이를 고의적으로 무시하여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헤커의 판정은 명확하다. "좋지 않은 합의가 아무런 합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전 외교부 차관이자 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최종건 교수도 헤커의 평가를 공유한다. 문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왜 당시 미국 정부에 더 과감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바이든 정부 역시 어떤 새로운 외교적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3월 5일, 정 박(박정현)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관리가 돌연 북한의 최종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를 언급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가까운 미래에 어떤 구체적인 정치외교적 조치를 취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9년 2월 27일 두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만났다. ⓒ백악관&nbsp;Shealah Craighead<br>
2019년 2월 27일 두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만났다. ⓒ백악관 Shealah Craighead

헤커는 김일성부터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북한 지도자가 언제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최우선 전략적 목표로 삼아 왔음을 이제까지 미국의 어떤 정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협상할 자세가 부족했던 것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의 실패로 북한 지도부는 이러한 기존 전략을 재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5년 후인 2024년 2월 말,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는 더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악화하였다.

2021년 북한은 영변 핵 시설을 다시 가동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핵무기 프로그램 추가 개발을 재개했다. 북한은 미국에 등을 돌리면서 2023년 가을, 근본적인 전략 방향을 수정하며 러시아와 더 긴밀한 경제, 군사 분야 협력에 합의했다. 그와 동시에, 남북 관계 역시 급속도로 악화하였다. 2년 전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면서 더 나빠졌지만 그 이전부터 남북관계는 이미 악화하고 있었다.

북한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의 주저하는 태도 때문에 남북 관계 강화에 대한 기대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기대했던 개성공단 재개와 한국 관광객을 위한 금강산 관광 재개는 미국 정부 반대에 문재인 정부가 결단력을 발휘해 맞서지 못한 탓에 무산됐다. 한국이 좀 더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했더라면 상황은 나아졌을 것이다. 게다가 문 정부는 북한이 위협을 느끼고 있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결국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024년 초, 김정은은 남한과 북한이 두 적대국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간주한다고 선언했다. 북한 헌법에서 단일민족, 화해와 통일 추구에 관련한 언급이 모두 삭제됐다. 남북한 사이의 모든 협정과 조약은 파기되었다.

현재의 국제정치 상황을 보며 여러 정치 관측자는 이미 '신냉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한이 실제로 냉전 시대의 기억을 되살리는 두 적대 진영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양측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현실적인 긴장완화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양측은 상대에 대한 공격적 표현을 자제하고 외교와 실질적 논의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군사적 충돌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더 현명한 자세로 2018년 남북 간 군사합의서 복원을 추진하고, 무엇보다 남북 간 의사소통 채널을 다시 구축해야 할 것이다. 1991년 12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체결된 기본조약은 무력 포기와 평화공존과 협력이라는 모든 핵심 사항을 당시 이미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언급했던 남북 양측에 중요한 준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근본 목표는 북한과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는 단일민족 또는 민족정체성이라는 이념적 조건 없이도 실현될 수 있다.

과거 분단 독일의 두 나라였던 독일연방공화국(FRG/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GDR/동독)의 예를 들어볼 때, 두 국가는 국제법상 일반적인 두 주권 국가 간 관계에 완전히 상응하지 않는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1972년 서독과 동독이 체결한 기본조약에서는 국제법상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수준보다 낮은 수준의 상호관계에 합의하였다. 두 국가는 마침내 서독의 수도 본(Bonn)과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에 이른바 ‘상설 대표부’, 즉 공식 차원은 아니지만 실질적 차원에서 대사관과 동등한 역할을 하는 사무소를 열기로 합의했다. 한국 상황에 적용하면, 이는 서울에 북한의 상설 대표부가 평양에 대한민국의 상설 대표부가 설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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