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두 번째 화요일에 '비판적 시선'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독일인으로서 살펴본 한국 정치와 세계 정세, 그리고 사회문화 이슈에 대한 상반된 견해들을 조망하며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집필해 주신 게르만 호흐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국 정부의 공격적인 반중 정책으로 야기된 새로운 국제 정세로 대한민국은 국제 무대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한국 대기업들의 선도적 기술력과 고도로 발전한 방위 산업도 이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폴란드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최근 무기 거래를 통해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무기생산국이자 무기수출국 중 하나로 부상했다. 2022년 5월에 출발한 보수 우파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특히 동아시아권에서의 이해관계에 무조건적으로 보조를 맞추며 미합중국-나토 진영에 밀착했다. 이는 당연히 정치 경제적, 군사적 관점에서 중국에 대항할 것을 요구받는 포지셔닝이었다. 

새 한국 정부의 망설임 없는 친일 노선은 중국에 맞서는 새로운 미-일-한 3국 동맹에 길을 열었다. 올해 8월, 3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활성화시킨 이 동맹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데올로기와 수사학이 모두 일치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나토가 사용하는 어법 그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방 정책이자 자신의 정책에 기반한, 이른바 “규칙에 기초한 질서“(rules-based order)를 강조한다. 이 국가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 국가'로 여기며 중국, 러시아, 북한을 '독재 국가'로 간주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미국, 일본, 한국은 그들의 이중적 기준과 이중 윤리로 비판받고 있다. 

국내 정치에 있어 윤석열 대통령은 반대 진영의 (그의 견해로는) '비자유주의적인' 또는 '공산주의적인' 노선에 선을 그으며 '자유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건다. '적'이라는 카테고리를 새롭게 활성화해 북한, 중국, 러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과 정치적 반대 세력 모두와 단호하게 싸우려 하는 것이다. 현재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써가며, 한국전쟁 이후로 지속되어 온 한미 동맹에 기초를 둔, 그의 견해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일종의 십자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적과는 외교적 방식으로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소통이나 타협도 있을 수 없고, 한결같이 싸워 적을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소신이다. 윤 정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법기구를 활용해 국내의 적을 탄압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정부의 오른팔이 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민주주의적 삼권 분립의 원칙이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 작년 7월 기사 'Una guerra mondial em pedacos scheibchenweise?'(부분적 세계대전인가?)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는 지난해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한국과 일본 정상도 초청된-에서 나토의 새로운 핵심 전략 콘셉트로 인정된 '적' 개념을 다뤘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관해 러시아를 '자유주의 세계'의 직접적인 적으로, 그리고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했다. 보프는 '적'이라는 카테고리 또는 '친구와 적'이라는 틀이 본래 나치 친화적인 법학자이자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에게서 비롯된 것을 지적한다. 슈미트에 따르면 정치적 사고와 행위는 친구와 적의 구분을 토대로 한다. "위대한 정치의 절정은 적을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과 일치한다."

윤 정부가 북한에 대해 과거 보수주의 정부들이 사용했던 대로 '적' 또는 '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북한을 '주적'으로 칭하며 대한민국의 선제 타격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2023년 2월 초에 발간한 대한민국 새 정부의 '2022 방위백서'에서 북한을 결국 공식적인 '적'으로 명명했다. 당시 남북한의 입장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다. 2022년 4월 초에 북한이 로켓 실험을 한 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서욱 국방부 장관은 대한민국이 북한 전 지역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김여정은 북한 관영 통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북한은 남한을 주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남한이 선제 타격으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북한은 남한을 공격 목표로 삼을 것이다."(<Sky News>, 2022.4.5: '북한은 서울이 도발할 경우 서울을 목표물로 삼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이 반응을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시그널로 해석하고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새롭게 기울였다면 긴장완화 정책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는 실현되지 않았고 북한은 2022년 9월에 결국 새로운 핵무기 법을 발효시켜 핵무기 선제 사용을 가능하게 했다. 

2022년 말에 열린 북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명백한 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핵 문제의 권위 있는 학자이자 북한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는 '푸틴-김정은 정상회담이 북한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라는 <FP>기사에서,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때까지, 그리고 나아가 2022년까지도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및 그에 따른 남한과의 관계 개선 전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2년 중에 북한은 이 전략을 완전히 철회하고 그 이후 러시아 쪽으로 돌아선다. 지난 몇 달 동안 남북이 서로에게 쏟아내는 말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결국 윤 정부는 지난 11월 22일 오후 3시부터 2018년에 남북한이 이룬 9·19 남북군사합의의 1조 3항을 효력정지하기에 이르렀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12월 9일 헤커의 책 "핵의 변곡점"을 추천하며 윤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이 책의 내용은 “외교와 대화가 북한에게 핵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 아니라, 합의 파기와 대화 중단이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핵발전을 촉진시켜 왔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고 문 전 대통령은 강조했다.

미국과 대한민국이 왜곡되고 과장된 '적'의 개념을 내려놓고 외교적 접근을 통해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끌어들이는 새로운 형태의 긴장완화 정책으로 나아갈 때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보장될 것이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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