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해방신학포럼’, 대량학살 규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2024년 ‘세계해방신학포럼’(WFTL)에 참석한 신학자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대량학살과 신식민주의에 희생되고 있는 토착 원주민들과의 연대를 밝혔다.

세계 5개 대륙에서 온 참가자 40여 명은 2월 19일에 낸 성명서에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식민 통치하고 또 현재 가자 지구 및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계획적 대량학살(genocide)”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유대 신학을 비롯해 서구 신학 가운데 이러한 “학살을 정당화해 온 시온주의(Zionism) 성경 해석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해방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신학 해석의 핵심 자리이자, 하느님에 대한 이해와 그것이 오늘날 세계인의 삶에서 갖는 함의에 있어 중요한 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해방신학포럼은 2005년 제5차 세계사회포럼(WSF)이 열린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에서 공식 출범했다. 2001년 제1차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라틴아메리카 신학자들은 많은 사회운동 및 민중운동 활동가가 모여, 세계 신학이 동참해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의 관심사를 나누고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전 세계 차원에서 마련할 필요를 논의했다. 그 결과로 세계해방신학포럼이 결성됐다.

세계해방신학포럼은 지난 10년 동안 브라질, 세네갈, 캐나다, 케냐, 튀니지 등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주로 열렸고, 올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이다. 포럼의 의제, 일정, 장소는 세계사회포럼을 고려해 설정하며,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가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세계경제 시스템의 희생자들과의 연대하는 신학을 위해 주로 ‘제3세계’에서 연다.

2024년 2월 13-19일까지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세계해방신학포럼 참가자들. (사진 출처 = 세계해방신학포럼)
2024년 2월 13-19일까지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세계해방신학포럼 참가자들. (사진 출처 = 세계해방신학포럼)

이번 포럼은 '해방과 연대의 관점에서 본 정치와 종교'를 주제로 2월 13-19일 카트만두의 ‘고다바리 피정의 집’(Godavari Ashram)에서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성명서에서 전 세계 토착 원주민이 자신의 사회문화적 전통과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앙과 종교적 관습을 자율적으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단언했다. 또한 이들은 “토착 원주민의 영적 주체성을 파괴하고 식민 통치를 강제한 전 세계 그리스도교의 행태를 규탄”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토착민이자 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히고 이를 되찾으려는 토착 원주민들의 저항에 연대를 표명"했다.

세계해방신학포럼 및 세계사회포럼 신학 분과에서 발표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미트리 라합(Mitri Raheb)은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은 이미 75년 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불법 점거에서 시작되었다고 지적하고, 지난 4개월 동안 3만여 명이 살해됐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잔혹한 감옥”이라며, “지난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현재까지 가자 지구에 1개 유대교 회당이 파괴된 반면, 이슬람 사원은 200여 개, 교회 3개가 철저히 파괴됐다”고 밝혔다.

또한 “이스라엘인 132명이 납치됐지만 팔레스타인 1100여 명이 인질로 감금되어 있는데도 서방과 이스라엘 언론은 이스라엘인만을 기사로 다룬다”면서,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팔레스타인을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동물’(human animals)이라고 부른 것을 유엔을 포함한 서방 세계도, 또 중동 국가들도 노골적이거나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미트리 라합(가운데)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세계해방신학포럼)
현재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미트리 라합(가운데)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세계해방신학포럼)

전 다르알 칼리마 대학 총장이자 팔레스타인 해방신학자인 그는 “이번 가자의 대량학살은 ‘하느님이 어디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게 아니라, ‘양식 있는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다”면서, 이는 “팔레스타인의 자유 없이 인류 가운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매체인 <팔레스타인 신문>(Palestine Chronical)에 따르면, 2024년 2월 19일 현재 학살당한 이들이 2만 8985명, 부상자 6만 8883명, 실종자가 7000명이다. 사망자 가운데는 유아, 어린이, 여성이 70퍼센트에 이른다.

포럼 참가자들은 ‘네팔의 역사와 사회정치적 상황’, ‘정치와 종교의 부정한 유착’, ‘교회의 지위와 역할 재고: 개발, 돌봄, 엔지오’, ‘네팔 가톨릭 청년과 토착 원주민의 종교문화 전통’, ‘네팔 인신매매 실태와 교회의 노력’, ‘종교와 정치 언어에 포위당한 팔레스타인’, ‘식민주의적 종교와 정치적 야합’, ‘해방과 연대로 가는 길로서의 토착 원주민의 종교성 복원’, ‘식민주의적 선교와 순교의 화해 가능성: 교황청의 공식 사과 요구’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했다.

해방신학 포럼 참가자들이 2월 15일 2024년 세계사회포럼 개막 가두행진에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이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황경훈)<br>
세계해방신학포럼 참가자들이 2월 15일 2024년 세계사회포럼 개막 가두행진에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세계해방신학포럼)

세계해방신학포럼과 동시에 열린 2024년 세계사회포럼은 2월 15-19일 마찬가지로 처음 네팔에서 열렸으며, 전 세계 92개국에서 4만여 명이 참가했다.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총 1252개 단체가 13개 분야 아래 402개 소주제로 토론 및 활동을 펼쳤다.

이 포럼에서는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 정의, 노동, 이주, 노예제, 인신매매, 카스트, 직업과 혈통에 따른 차별, 인종과 민족, 또 불가촉천민과 외국인 혐오 등 온갖 형태의 차별, 성정체성, 성평등, 평화와 분쟁, 난민과 기후 정의, 생태계 보호와 지속 가능한 개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세계해방신학포럼(WFTL) 성명서(전문)

2024년 2월 13일부터 19일까지 '해방과 연대의 관점에서 본 정치와 종교'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 참여한 WFTL 회원 40여 명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정착민을 식민 통치하고 또 현재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대량 학살(genocide)을 정당화해 온 시온주의 성경 해석에 반대한다. 우리는 해방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신학 해석의 핵심 자리이자, 하느님에 대한 이해와 그것이 오늘날 세계인의 삶에서 갖는 함의에 있어 중요한 한 전환점으로 삼고자 한다.

- 우리는 전 세계 토착 원주민(Indigenous Peoples)과 선의의 세계 시민,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문화적 전통과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앙과 종교적 관습을 자율적으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단언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토착 원주민의 영적 주체성을 파괴하고 식민 통치를 강제한 전 세계 그리스도교의 행태를 규탄하며, 토착민이자 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히고 이를 되찾으려는 토착 원주민들의 저항에 연대를 표명한다.

- 우리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종교적 근본주의 및 민족주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정치와 종교의 부정한 유착을 규탄한다. 또한 우리는 해방과 연대의 관점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 또 각 사회의 현실과 특징을 반영하는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존중함을 밝힌다.

장 프랑수아 루셀 박사, 캐나다, WFTL 총괄 코디네이터
데니스 쿠튀르 박사, 캐나다, WFTL 사무국장
코추라니 아브라함 박사, 인도, WFTL 집행위원회 위원

카트만두, 2024년 2월 19일
www.wftloffici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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