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평론> 42호(2023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가자지구

“가자지구의 주민 어느 한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은 이가 없 다.” 지난 10월 7일부터 이스라엘 점령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차별적으로 행한 공격으로 한 달 만에 1만여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살해당했다. 1967년 이후 살해된 아동 총수보다 이번 한 달간 공격에 살해된 아동 수가 더 많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을 비롯해 2만 5000톤이 넘는 폭탄을 투하해 병원 과 구급차를 폭격하고, 언론인을 표적 살해하며, 군인들은 팔레스타인인을 폭행하고 고문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참혹한 현실 속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도망갈 곳 없이 이스라엘 점령군에게 계속해서 학살당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우리는 인간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 대상에 걸맞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발언 이후 가자지구의 모든 전기와 물을 끊고, 연료와 음식을 차단하며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 존 커비 또한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학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미국은 이에 여전히 제한선은 없다”며, 스스로 가자지구의 대량학살 당사자이자 전쟁 범죄자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SNS 계정에 “이것은 빛의 아이들 대 어둠의 아이들 간의 투쟁이다. 인간성 대 정글의 법칙 간의 투쟁이다”라고 작성한 후 비난이 이어지자 곧장 삭제한 바 있다.

가자지구는 지붕 없는 감옥이자 거대한 수용소로 불린다.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은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를 통해 군사점령에 맞섰고, 그 결과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어 2000년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이후 이스라엘은 2007년 가자 지구의 육해공을 전면 봉쇄하는 ‘집단 처벌’을 실시하는데, 이는 국제법이 금지하는 것 중 하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수시로 폭격하고, 대규모 공습을 자행해 수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으며, 여기서 사망자 대다수는 민간인과 아동이다. 가자지구의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2023년 11월 9일 이스라엘의 공격을 당하고 있는 가자지구. (사진 출처 = AFP)<br>
2023년 11월 9일 이스라엘의 공격을 당하고 있는 가자지구. (사진 출처 = AFP)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국제사회와 이른바 ‘주류 언론’들이 팔레스타인을 바라볼 때, 군사점령과 식민화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문제를 수동적으로 바라보게 해 이를 감추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서구의 정치인 역시 팔레스타인인들을 비인간화함으로써 제국주의 군사점령의 문제를 보이지 않게 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장관의 “우리는 인간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는 발언이나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대량살상은 ‘순전한 악의 행위’로 묘사하는 것,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술라 폰 데 라이언의 ‘팔레스타인은 고대의 악’을 떠올리게 한다고 발언한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 존 커비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에 대해 “민간인 사망자가 생겨났고, 앞으로도 더 생겨날 것이다, 전쟁은 원래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니까”라고 했다. 반면 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시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에 대해 눈물을 보이며 “우크라이나에서 푸틴과 러시아 군대가 하는 짓들은 정말 참담하다. 어떤 사진들은 정말 보기가 힘들다”며 이중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량학살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칠 때, 국제사회는 오히려 ‘이스라엘은 방어권을 확보할 자격이 있다’고 군사점령을 옹호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에 반응하는 것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일상 속 테러에 대한 온도 차를 봐도 국제사회가 얼마나 팔레스타인에 무감각한지 알 수 있다. 선진국 도심지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 면, 이에 대해 ‘이 땅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야만적인 일’이 되어 희생자에 대한 추모가 전 세계적으로 이어진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불법 정착촌 점령민에게 총으로 살해당하거나 점령군에게 학살과 괴롭힘을 당해도 ‘그곳에선 원래 일어나는 평범하고도 안타까운 일’로 치부된다. 유적지 파괴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화재로 망가졌을 때 세계 ‘문명인’들이 보인 안타까움과 탈레반이 불교 유적지를 파괴했을 때 비난 등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오래된 성당과 사원을 폭파했을 때 ‘문명 사회’ 어디에서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나 팔레스타인 민중의 슬픔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고, 그저 하마스를 지지하는 가자 주민이 자초한 일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생산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점령군은 하마스 통치 지역인 가자지구뿐 아니라 하마스와 상관없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통치하는 서안지구에서도 올해 들어서만 하루 평균 1명꼴로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는 등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해 전반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2023년 11월 10일 이스라엘군에 공격당하는 서안지구(웨스트뱅크) 제닌 지역. (사진 출처 = AFP)
2023년 11월 10일 이스라엘군에 공격당하는 서안지구(웨스트뱅크) 제닌 지역. (사진 출처 = AFP)

지난 75년이 넘는 학살과 점령의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대규모로 살해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이를 적당한 선에서 규탄만 할 뿐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를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로 풀이해 왔다. 특히 유럽 사회에서는 이스라엘을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등치시키며 보상해줘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겨 왔다.

애초 국제사회란 미국과 미국의 친위대 등 그들끼리의 제국주의 국가들만을 의미하며, 그 외 이른바 미국의 ‘적’으로 불리는 집단에게는 국제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명목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며 그들만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고 지원한다. 미국이 이번 학살에만 약 19조 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하는 와중에, 유럽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대거 난민이 유입될 것을 우려한다며 국경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이스라엘 인종청소와 군사점령의 역사

점령은 반세기 가깝게 지속되어 왔다. 1948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 약 75만 명을 추방하는 데서 시작해 현재까지 시오니스트들의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그들의 집을 부수고 쫓아내 빼앗은 땅 위에 이스라엘 깃발을 꽂아 건국했다. 이때 75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하루아침에 난민으로 내몰린 것을 일컬어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67년 팔레스타인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 시리아 골란고원, 이집트 시나이반도(1979년 반환)를 군사점령한 뒤 1980년 동예루살렘, 1981년 골란고원을 불법 병합했다. 200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이스라엘 점령군 및 불법 유대인 정착민은 최소 6407명 팔레스타인인을 무고하게 살해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7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종청소와 민족말살을 해왔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저항할 때마 다 끔찍한 잔혹 행위를 겪었다.

1948년 나크바(대재앙)는 2023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br>
1948년 나크바(대재앙)는 2023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1948년 이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의 땅이나 건물에 대해 이스라엘 군정이 발급한 권리증서가 없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이들의 집과 이슬람 사원, 농경지를 계속 파괴해 군사훈련구역을 만들거나 불법 정착촌을 짓고 있다.

이처럼 ‘나크바’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 또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땅에서 쫓아내고 이집트 시나이로 완전히 추방하려는 계획이 깔려 있는 또 다른 ‘나크바’다. 이제야 세계인의 눈이 가자지구의 참상에 쏠렸지만, 사실 이는 지난 7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

1) 세계적인 연대 집회의 물결

‘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우리라!’ 이스라엘은 폭격과 폭탄을 퍼부으며 가자지구를 침묵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 세계인의 연대 함성을 침묵시킬 수는 없다.

2) 단순히 군사점령만이 아니라 정착민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1)라는 맥락 속에서의 이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는 한 집단이 다른 인종집단을 대상으로 가하는 차별과 억압을 말한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이 예루살렘에서 자행하는 모든 일, 알아크사 사원을 총으로 점령해 유대인 기도 장소로 바꾸려는 시도, 점령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이스라엘에 합병하려는 것, 이스라엘 내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다른 법 체제(이-이스라엘법, 팔-군법)로 차별하는 것, 팔레스타인인을 감옥에 가두고, 수백 명을 재판 없이 구금하고,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아파르트헤이트다.

팔레스타인인과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은 하마스를 지지하느냐’ 혹은 ‘하마스에 대해 비난하는 입장이냐’라고 묻기 전에 이스라엘 점령군의 제노사이드에 대해,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인종청소와 병원 폭격에 대해, 전쟁범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추상적 위로를 건네는 것보다 전범 국가 이스라엘의 처벌과 함께 팔레스타인인에게 사죄할 것을 명확히 요구해야 한다.

이스라엘대사관 앞 손팻말 시위. (사진 출처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스라엘대사관 앞 손팻말 시위. (사진 출처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팔레스타인 연대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집회.. (사진 출처 = 팔레스타인평화연대)<br>
팔레스타인 연대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집회.. (사진 출처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3) ‘중동 정세’는 복잡하다는 착각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중동’의 문제는 사실 전혀 복잡하지 않다.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행하는 잔혹한 식민행위를 감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약속의 땅 이스라엘과 현대 정치 속 이스라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유럽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대량학살, 그리고 반인도 범죄로 점철된 홀로코스트가 남긴 교훈을 망각한 채 유대인의 이름으로 이 모든 행위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정세 분석’이라는 말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타자화하기 쉽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땅을 빼앗기고 집이 부서지고 목숨을 잃는 상황에 대해 경제적, 정치적으로 ‘분석’하며 숫자놀음과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4) BDS 운동 참여

전 세계 꽤 많은 기업이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에 연루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범죄를 지원하는 이들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한 활동인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s(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운동이 있다. BDS 운동은 이스라엘이 국제법과 보편인권의 원칙을 준수하고 군사점령을 중단할 때까지 보이콧/투자철회/제재하자는 운동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쟁 경험에서 배운 전략이다.

한국 기업 중에도 이스라엘에 군사점령 및 불법 정착촌 건설에 필요한 상품을 수출하고, 불법 정착촌에서 생산된 상품을 수입하는 곳이 있다. 이 중 가장 큰 동력은 무기 거래, 이스라엘 대학과 학술적 교류, 한국 교회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큰 수입원이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화, 인종차별 정책에 공모하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HD현대가 있는데 HD현대의 중장비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과 우물, 학교, 이슬람 사원, 농경지 및 축사를 부수는 현장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2017년부터 팔레스타인 사회에서는 HD현대를 향해 이스라엘에 굴삭기 판매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BDS 운동을 통해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공모하는 기업들을 고발하고 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BDS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군사점령과 식민 행위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5) 팔레스타인인의 해방 기원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경험이 있는 나라다. 따라서 우리에겐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며, 군사점령과 식민 지배에서 생겨나는 여러 문제를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제국주의적 군사점령에 의한 아픔과 고통은 나라나 인종을 가려가며 나타나지 않는다. 지배 계급은 민중의 편이 될 수 없기에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우리는 서로 더 연대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 식민화,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아랍인에 대한 차별에 맞서야 한다. 지금 팔레스타인인에게 필요한 것은 안타까운 시선이나 동정이 아닌,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끝내고 학살을 중단하라는 전 세계인의 연대와 함성이다.

10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벌인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 세계 여러 도시도 시위를 펼쳤다. (사진 출처 = Montecruz Foto)<br>
10월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벌인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 세계 여러 도시도 시위를 펼쳤다. (사진 출처 = Montecruz Foto)

각주 1)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강제 인종차별 정책을 지칭하는 말로,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백인우월주의를 공식 선언하고 흑인들을 차별하고 억압했다.

젬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의정부교구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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