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월 12일. 유목민족인 헤레로족은 독일의 남서아프리카 식민지였던 오늘날의 나미비아에서 독일 식민통치권력에 맞서 봉기했다. 진압을 위해 베를린의 독일 정부는 로타어 폰 트로타의 지휘를 받는 1만5000명 군대를 파견했다. 헤레로 전사들은 물이 거의 없는 오마헤케 사막으로 도주했고, 트로타는 이 지역 전체를 봉쇄한 뒤 그나마 몇 군데 식수원이 있는 곳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쫓아내버렸다. 이렇게 해서 물을 구하지 못한 수천 헤레로가 가족과 가축들과 함께 탈수로 죽어갔다. 트로타는 ‘헤레로 몰살령’을 내렸다. “헤레로들은 더 이상 독일 신민이 아니다. 독일 국경 내에서 모든 헤레로는 무장을 했든 안 했든 사살한다. 나는 여자들이나 아이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자신들 부족에게 돌려보내거나 역시 사살하게 할 것이다.” 그의 의도는 오해의 여지없이 명료했다. “그런 종족은 완전히 씨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 그대로였다. 사막에서 살아남은 헤레로들은 수용소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이 수용소에서는 열대병 연구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도 자행되었다. 수감자의 거의 절반이 수감 첫해에 영양실조와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 

1904년 10월에는 나마족이 저항운동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들은 1907년에 결국 독일 지배자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나마족들 역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고 그중 절반이 죽었다. 이 강제수용소들은 1930년대에 나치가 독일과 동유럽 지역에 새 수용소들을 지었을 때 그 모델이 되었다. 1904년에서 1907년 사이에 헤레로 6만5000명과 나마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두 아프리카 부족에 가한 범죄는 20세기에 자행된 첫 ‘인종청소’ 사례로 간주된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2021년 5월이 되어서야 ‘인종청소’로 인정했다. 그래도 여전히 독일 정부는 나미비아와 범죄 대상이 된 부족들에 대한 공식 배상을 거부한다. 앞으로 30년간 독일은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거주 지역 프로젝트에 11억 유로를 ‘화해배상금’ 조로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헤레로와 나마의 대표들은 더 강도 높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2024년 1월 12일. 헤레로 봉기가 일어난 지 120년이 지난 뒤 바로 같은 날, 독일 정부는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소 내용에 대해 단호하고 확고하게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이 이런 비난을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가 과거에 자행한 인종청소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각별한 책임, 즉 ‘죄‘가 있으므로 향후에도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하고 변호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정부는 본심 재판에서도 제삼자로서 이스라엘 편에 설 것이라는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공격을 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이미지 출처 = Pixabay)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소를 지지한 나미비아 대통령 하게 게인고브는 독일 정부의 입장 표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독일이 나미비아 땅에서 20세기 첫 인종청소를 자행한 장본인이며 이 범죄에 대해 여전히 온전한 배상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더 나아가 게인고브는  가자지구에서 2만3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당한 폭력적인 죽음과 85퍼센트에 달하는 민간인 추방,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빚은 생필품 및 의료 지원 결핍을 독일 정부가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다.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에 상응하는 행위들을 지원하는 한, 독일 정부는 인종청소에 반대하는 유엔 협약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하게 게인고브는 올해 2월 4일에 82세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미비아의 이와 같은 입장을 세계의 수많은 유대인이 지지하고 있으며, 이 유대인들의 목소리는 이와 함께 독일의 이중적 기준을 폭로하고 있다. (관련 기사)

이런 끔찍한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서방 국가들의 ‘무위‘는 미국, 독일, 영국이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무기와 군사장비를 공급하는 현실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 가운데는 저 악명 높은 ‘벙커 버스터'(방공호나 엄폐호를 뚫고 들어가 파괴하는 폭탄)도 포함된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트 아로노트>(Yedioth Ahronoth)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10월 7일부터 군수품을 가득 실은 화물수송기 230대와 선박 20척을 이스라엘로 보냈으며, 독일은 탱크 포탄 1만 발을 이스라엘로 보낼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 포탄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가며 생필품이 도착하기를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1월 중순에 이미 이런 실제 사례들을 현장의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독일을 보이콧하라' 홈페이지 갈무리. (이미지 출처 = Strike Germany)
'독일을 보이콧하라' 홈페이지 갈무리. (이미지 출처 = Strike Germany)

올해 1월 초부터 ‘독일을 보이콧하라(Strike Germany)‘라는 익명의 호소가 여러 언어로 인터넷 상에 퍼지고 있다.(strikegermany.org) 아랍 지역 분쟁에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에 서는 독일의 문화산업을 보이콧하자고 전 세계 예술가들과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무시하는 한, 독일에서 콘서트를 열지 말고 문학작품 낭독회에 참여하지 않으며 예술작품을 전시하지 말자는 움직임이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독일이 이스라엘과 연대하면서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견해들을 ‘반유대주의’로 낙인 찍어 사상과 예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1월 중순까지 1천여 명이 이 호소에 동참해 서명했고, 그 가운데는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도 있다. 독일의 저명하고 권위 있는 출판사인 피셔(Verlag S.Fischer)에서 이미 장편소설 한 권과 단편소설집 한 권을 독일어로 출판한 보스니아 여성 작가 라나 바스타지치(Lana Bastasic)가 피셔에 결별 선언한 일은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입게 되는 엄청난 금전 손해에도 바스타지치는 이 결단을 자신의 도덕적, 윤리적 책무로 본다고 말했다. 가자에서 계속되는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독일 내 팔레스타인 지지 예술가들이 조직적으로 검열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피셔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셔 출판사는 10월 7일에 벌어진 일들 이후에 이렇게 선언했다. 피셔는 서적 출판을 통해 지속적인 반유대주의를 경고할 것이며, 새로운 반유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사고와 행위에 맞설 것이라고. 이에 맞서 바스타지치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인인 자신의 가족들이 겪은 체험을 소환했다. 1940년대에 바스타지치 조부모 세대는 세르비아 소수민족 박해 때문에 크로아티아를 떠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부에 정착했다. 1990년대에 바스타지치는 이곳에서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에게 가한 폭력과 억압을 목격했다. 바스타지치에게 트라우마가 된 이 일은 가자지구의 인종청소 상황을 접하면서 다시금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반응이었지만, 독일의 주류 언론은 바스타지치의 주장과 입장 표명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와 분노로 대응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식적 비판은 독일에서 여전히 ‘터부’에 속한다. 이스라엘 비판이 곧 이스라엘과 홀로코스트 희생자 및 그 후손에 대한 독일과 독일인의 역사적인 죄과를 부정하는 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스라엘과 관련한 반유대주의”라는 개념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한 범죄를 비판하거나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인물 또는 조직을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지난 11월에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벌인 가자전쟁 반대 시위에서 “독일의 죄에서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Free Palestine from German guilt)”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등장한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인들의 죄의식을 지적한 것이었다. 

게르만 호흐(Germann Hoch)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라틴어 및 그리스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복수전공했다. 기쎈 대학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eutsch als Fremdsprache)'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사로 재직했다. 한국에 와서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정년퇴임한 뒤, 번역과 독일어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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