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탈핵평화순례 1, 핵발전소 주민 등 만나

한일 천주교회가 8월 28-31일 생명과 평화, 안전한 삶을 위해서는 핵 발전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외치며 핵발전 지역을 순례했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일본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2022년 한일 탈핵평화순례는 부산 고리 핵발전소, 경주 월성 핵발전소와 나아리,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서울 명동 일대에서 4일 동안 진행됐다.

순례 4일 동안 한국과 일본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 활동가 등 모두 약 20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 교회에서는 박현동 아빠스(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가 전체 순례 일정에 함께했으며, 일본 교회에서는 에드가 가쿠탄 주교(일본 정의평화협의회 위원장, 센다이교구장)를 비롯해 11명이 참여했다.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에서 거리 행진에 나서기 전 참가자들 모습. ⓒ김수나 기자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에서 거리 행진에 나서기 전 참가자들 모습. ⓒ김수나 기자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에서 거리 행진에 나서기 전 참가자들 모습. ⓒ김수나 기자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에서 거리 행진에 나서기 전 참가자들 모습. ⓒ김수나 기자

하느님 앞에서 핵발전은 인간의 오만일 뿐

순례단은 8월 29일 오전 건설 중인 핵발전소를 포함 모두 10기가 밀집돼 있는 부산의 고리 핵발전소 앞에서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반대를 요구하며 행진했다. 이어 인근 길천 방파제 등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리2호기 영구 정지”,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중단”, “탈핵은 생명”을 외쳤다. 이 자리에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와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산 탈핵시민행동 등 70여 명이 참여했다.

정부는 핵발전 강국 방침에 따라 노후 및 안전 문제로 가동을 중단한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미츠노부 이치로 신부(일본 정의평화협의회 탈핵소위원회 위원장)는 “최근 일본에서도 돌연 후쿠시마 사고 뒤 멈췄던 핵발전소 7기의 재가동이 승인되고, 새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를 이용해 논의 없이 조급하게 의사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핵발전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며 하느님 앞에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후쿠시마도 방문했는데, 쓰나미로 사라지고 황폐화된 후쿠시마와 지금 눈으로는 아름답고 편안해 보이는 고리가 겹쳐진다. 세계적으로 사양 산업이 된 핵발전 사업의 강화를 말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니 우리가 서로 마음을 모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기석 신부(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는 “RE100, 유럽과 미국의 탄소국경조정세 도입에 따라 핵발전이 친환경 에너지임을 증명하지 못하면 세금이 부과되고, 유럽과 미국의 조건을 맞추려면 수많은 비용이 든다”면서 “이 조건을 맞춰야 핵 산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핵 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 신부는 “수출로 사는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생산하는 산업은 사양화될 수밖에 없다. 산업의 일부인 핵산업계를 위해 국내 산업을 볼모로 할 수는 없다”면서, “무엇보다 핵폐기물 처리 방법이 없어 당장 폐쇄 또는 조기 폐쇄가 필요하다. 핵발전소 입지 조건은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곳으로 약한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어떤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에너지 전환에 노력하자”고 말했다.

(왼쪽부터) 에드가 가쿠탄 주교(일본 정의평화협의회 위원장, 센다이교구장)과 박현동 아빠스(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가 성명서 발표 전 발언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왼쪽부터) 에드가 가쿠탄 주교(일본 정의평화협의회 위원장, 센다이교구장)과 박현동 아빠스(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가 성명서 발표 전 발언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이어 순례단은 월성 핵발전소 1킬로미터 안에서 사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을 만난 뒤 대규모 핵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경주 문무대왕 과학연구소 건설 현장을 찾았다.

나아리 주민과의 만남에서는 이상홍 씨(나아리 이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과 주민 황분희 씨 부부의 발언과 질의응답이 진행됐는데, 마침 이날은 2005년 주민 투표 결과 120만 톤을 저장하는 월성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이 시작된 날이다. 주민들은 당시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찬성했다.

이상홍 씨는 “2005년 당시 주민들이 핵페기물 처리장에 찬성한 이유는 정부가 핵발전소 지역인 이곳에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소는 짓지 않고, 낙후된 경주 지역를 위해 여러 개발계획을 약속했기 때문”이라면서 “지난번 방문한 일본분들이 원자로 1킬로미터 이내에 이 많은 인구가 산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깨끗한 에너지라는 정부 홍보만 믿고 지내다 후쿠시마 사고 뒤 실시한 소변검사 결과 아이들에게서도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나와 이주를 원했지만 모든 부동산 매매가 중단됐고 이주할 수 없었다”면서, “현재 이주대책 농성 8년째인데 변화가 없고, 갑상선암에 걸린 주민 618명 공동소송도 진행 중인데 거의 진척이 없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주민의 암 발병률은 높지만 관련법이 없고, 방사선 양이 기준치 이하라서 핵발전소와 인과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이주의 근거가 될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논의가 더 진행되지 않았고 현재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 저장소까지 짓고 있다.

그는 “8년 투쟁 결과 지난해 처음 원전 관련 부서가 아닌 환경부가 주민 건강 조사를 하기로 하고 올해 5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12월이나 내년 1월쯤 결과가 나올 텐데 정말 객관적 결과를 낼지 걱정하며 기대하고 있다”면서, “쉽게 쓰는 전기 뒤에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법률 제정과 변화에 도움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이주를 지원하는 법안은 2021년 8월 양이원영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있다. 이 법안은 핵발전소와 저장시설 등 건설로 건강권과 재산권을 침해받는 인접 지역 주민 가운데 이주를 원하는 주민을 지원한다는 것으로 이 법이 적용되는 지역은 나아리를 포함해 전국 핵발전소 인근 13곳이다. 현재 이 법안은 소관위심사만 거친 상태로 진행이 멈춰 있다.

천년 고도, 역사의 도시 경주도 대규모 핵도시가 돼 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된 제2원자력연구원(혁신원자력연구단지) 사업이 2019년 11월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국책 사업으로 확정되면서, 2021년 7월 문무대왕릉 등 문화유산이 산재한 경주시 감포읍 바닷가 70만 평 부지에 공사가 시작됐다. 앞으로 5년 동안 3200여억 원을 들여 16개 연구시설을 2025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순례단은 감포 해안관광단지 부지였으나 연구원 부지로 확정된 뒤 2021년 3월 공사를 시작한 문무대왕 과학연구소 건설 부지를 둘러봤다. 이 자리에서 용석록 씨(<탈핵신문> 편집인)은 “부산과 경주 상황뿐 아니라 고리 핵발전소 10기, 월성 핵발전소 6기로 포위된 지역인 울산도 탈핵 운동에 함께할 수밖에 없다. 좀 더 많은 이에게 이 상황을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 명동 일대를 돌며 손팻말로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한일 탈핵평화순례 참가자들. ⓒ김수나 기자
서울 명동 일대를 돌며 손팻말로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한일 탈핵평화순례 참가자들. ⓒ김수나 기자

우리의 편안함은 가난한 지역의 고통과 눈물

순례 기간 동안 대전교구 관평동 성당과 서울 명동에서 각각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서는 일본 홋카이도 방폐장 설립 현황, 대전 탈핵운동의 현안, 일본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정책의 문제점, 윤석열 정부의 핵발전 우선 에너지 정책의 문제를 다뤘다. (간담회 내용은 ‘한일 탈핵평화순례2’ 기사에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순례 마지막 날인 31일 손팻말을 들고 서울 명동 일대를 돌며 핵발전 중단을 외쳤다. 이어 한일 교회 공동 성명을 내고 ▲주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중지 ▲답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핵발전 중단 ▲신규핵발전소 건설 계획 백지화 ▲국회는 주민의 거주권, 생명권을 보장하는 법 제정을 요구하며, 핵발전과 핵무기 폐기를 위해 한일 시민의 연대를 촉구했다.

한일 교회 순례단은 이상 기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위기 속에서 핵 부흥을 강조하는 한일 정부의 움직임을 우려하며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실제로 이상 기후, 해수 온도 상승 등 변화된 상황에서 더 심각한 고장과 비상 상황 등을 더 자주 접하게 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전쟁과 테러 위협에 취약성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한 번 사고로도 복원할 수 없는 심각한 대량 피해를 일으키는 핵발전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하는 때”라고 말했다.

이어 “핵발전 현장에 가면 지역이 갈등하고 분열하는 모습,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 쓰는 핵에너지 생산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이 지고 있음을 아프게 보게 된다”면서 “그리스도인에게 핵에너지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으로 만들어진 것이자, 사람들을 분열하게 하고 그 피해와 고통은 힘없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 얹어진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을 바탕으로 편안을 누리기보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면서, “성장과 불의에 싸우며 분열하고 피폐해지지 않고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모두 함께 하자”고 요청했다.

거리 행진 뒤 참가자들이 모여 핵발전 중단을 외치는 모습. ⓒ김수나 기자
거리 행진 뒤 참가자들이 모여 핵발전 중단을 외치는 모습. ⓒ김수나 기자
순례단에 참여한 한 수녀의 가방에 '지구를 행복하게' 메시지가 적혀 있다. ⓒ김수나 기자<br>
순례단에 참여한 한 수녀의 가방에 '지구를 행복하게' 메시지가 적혀 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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