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탈핵평화순례 2, 한일의 엉터리 핵 정책 다뤄

8월 28-31일 열린 한일 천주교회의 탈핵평화순례에서는 간담회가 두 번 진행됐다.

30일 대전교구 관평동 성당에서 열린 첫 간담회에서는 일본 홋카이도의 핵폐기물 처리 반대 투쟁에 연대하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활동상이 소개됐다. 이어 대전 탈핵운동은 새로운 핵 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경주를 포함해 전 지역으로 확장돼야 하고, 자본주의 성장 담론을 넘어 반전 평화와 생태 사회로의 전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됐다.

8월 31일 서울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두 번째 간담회에서는 일본 정부의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정책의 공론화 과정이 지닌 문제와 핵산업 강국을 내세우는 한국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왜 시대착오적인지 지적됐다.

첫 간담회에서 일본 천주교 삿포로교구 정의와 평화 협의회(이하 정평협) 후지타 카쓰미 씨(홋카이도 방폐장 건설반대운동 활동가)가 홋카이도 지역에서 핵폐기물 반입 및 노후 핵발전소 재가동 반대 투쟁에 연대해 온 정평협의 활동상을 소개했다.

후지타 씨에 따르면, 홋카이도 전력의 토마리 핵발전소는 방사능 누출 사고에서 주민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구체적 위험성이 인정돼 1-3호기의 운행이 중지됐지만 일본 정부는 재가동을 꾀하고 있다. 정평협은 2017년부터 학습회, 강연회 등을 열고 토마리 핵발전소를 재가동하면 안 되는 이유, 핵폐기물 지하 저장의 문제점 등을 알렸다. 일본 정부가 2000년 제정된 특정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법에 따라 핵폐기물을 지하 300미터 이상 깊이에 매설 처분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우면서 홋카이도에 핵폐기물 반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삿포로교구는 핵발전소 사고 및 재난 피해자를 지원하는 홋카이도의 힐링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토마리 핵발전소 재가동 및 핵폐기물 반입을 반대하는 홋카이도 모임, 핵폐기물 거부 조례 요청 행동, 핵폐기물 저장 시설에 반대하는 읍장 선거 후보 응원, 2021년 가을 중의원 선거와 2022년 여름 참의원 선거 후보 예정자에 공개 질의서 송부, SNS를 이용한 항의 등을 진행했다. 천주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도 2021년 3월 ‘핵폐기물 문제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회의’를 만들어 반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후지타 씨는 “홋카이도는 식량, 농업 등 1차 산업이 중요하고, 자연 환경이 아름다운 곳”이라면서 “모든 이들이 안심하고 홋카이도에 올 수 있도록 다양한 단체와 협력하고 여러분과 연대해 꾸준히 반대 운동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첫 간담회 발표자인 (왼쪽) 이경자 씨(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 집행위원장)와 후지타 카쓰미 씨(홋카이도 방폐장 건설반대운동 활동가). ⓒ김수나 기자

나아리 주민 투쟁, 핵이 시민의 당면 문제임을 받아들이는 시작점

이어진 발표에서 이경자 씨(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 집행위원장)는 한국 반핵 운동의 시초인 영광 어업 피해 보상운동부터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핵폐기장 반대 운동, 1991-2021년 신규 핵발전소 유치 반대 운동을 소개했다. 특히 그는 핵 도시가 돼 버린 대전과 혁신원자력연구단지라는 대규모 핵 단지가 건설되고 있는 경주에 주목했다.

한일 탈핵순례단은 이날 오전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앞에서 “핵폐기물 재처리 실험 중단”, “핵 진흥 정책 폐기”,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 및 쇄신” 등을 촉구하며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문 앞에서부터 인근 관평동 성당 부근까지 약 2킬로미터를 행진했다.

이들이 대전을 찾은 이유는 대전에 한국의 핵발전 연구 시설이 몰려 있고, 각종 핵폐기물이 대량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대전은 146만여 명이 사는 대도시지만 현재 중저준위 핵폐기물 3만여 드럼, 고준위 핵폐기물 1699봉이 핵발전 관련 시설에 보관돼 있다. 대전에 있는 핵발전 시설로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며 이 가운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로 중수 누수, 방사능 누출, 핵 관련 폐기물 불법 배출 및 매립 등 끊이지 않는 핵 사고의 주범으로 꼽힌다.

대전의 핵 문제가 심각함에 따라 2017년 대전, 충청, 세종 80여 개 단체가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연대를 만들고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담합 폭로, 탈핵 전국 집중행동, 감사원에 공익 감사 청구, 대전 시민안전성 검증단 구성,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 투쟁 등을 집중해서 벌여 왔다. 이경자 씨는 “대전은 사실상 핵폐기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전의 긴급한 과제는 하나로 원자로 폐로와 대전의 탈핵운동을 전국적 투쟁으로 넓혀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로 원자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연구용 원자로로 1995년부터 운영되고 있으나 2004년 이후 23건의 사고가 보고되고 자동정지와 수동정지를 반복하는 등 고장도 잦아 폐로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들은 2019년부터 나아리 주민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매주 서울과 대전에서 진행한다. 나아리 주민들은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 핵발전소 1킬로미터 반경에 살며, 핵발전소 3킬로미터 바깥으로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이경자 씨는 “주민들의 요구는 매우 단순하고 돈이 많이 들지 않지만 정부는 들어주지 않고 있다. 나아리의 요구를 들어주면 다른 곳도 들어줘야 한다, 핵발전소 1킬로미터 안에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는 논리에 가로막혀 투쟁이 8년째 접어들었다”면서, “나아리 주민 이주 문제는 이주 정착금 문제로 축소돼서 매우 오랫동안 탈핵운동에서도 소외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돈의 여부 떠나 이주 투쟁은 일정 성과를 거둬내야 한다. 경주, 대전, 부산 등 핵시설과 핵발전소 반경 20-30킬로미터 안에는 수백만 시민이 살고 있다”면서, “월성 이주대책은 핵 문제가 특정 지역의 문제만이 아닌 시민의 당면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시작되는 것이라 매우 중요한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대전교구 관평동 성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여한 순례단. ⓒ김수나 기자<br>
대전교구 관평동 성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여한 순례단. ⓒ김수나 기자

대전의 핵 문제 최대 핵 단지 조성되는 경주로 이어져

2019년 11월 원자력진흥위원회가 제2원자력연구원(혁신원자력연구단지)를 국책 사업으로 확정하면서 2021년 7월부터 경주시 감포읍 바닷가 70만 평 부지에 국내 최대 핵 단지 공사가 시작됐다. 앞으로 5년 동안 3200여억 원을 들여 16개 연구시설을 2025년에 완공한다는 것이다.

소형모듈 원자로, 원전안전 혁신기술, 방사능 폐기물 관리 및 원전해체 기술 등을 진행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대규모 핵재처리 실험과 소듐고속로 실증단지나 핵폐기장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경주에는 중수로형 월성 핵발전소 4기를 비롯해 모두 핵발전소 10기가 있고, 월성 핵발전소 안에는 고준위 핵폐기물 건식저장 시설인 맥스터와 중저준위 핵폐기장까지 있는 상태다.

이경자 씨는 “연구용, 소형이라 해도 새로운 핵발전소이며 세계 소형모듈 원자로 시장 30퍼센트 점유 목표라는 명분 뒤에는 핵 진흥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핵산업계의 의도가 들어 있다”면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소중한 문화유산이 가득한 경주가 핵 관련 전진 기지가 되고 대규모 핵 단지로 방사성 물질 피폭과 사고 위험에 놓일 것이다. 대전의 핵 반대를 위한 반경 30킬로미터는 300킬로미터로 넓혀져야 한다. 경주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탈핵 운동은 전기를 만드는 핵발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경자 씨는 “한국의 핵재처리 실험은 핵무장 논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끝나지 않는다”면서, “핵재처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요구와 논리와 정서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한 전쟁과 핵무장 위협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탈핵 운동은 반전 평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탈핵 운동은 핵발전을 재생에너지 운동으로 바꾸는 운동이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지금의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지상주의를 끝내지 않으면 기후재앙, 코로나 팬데믹은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결국 탈핵은 탈성장, 탈자본과 함께 가야 더욱 의미 있는 투쟁과 연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교구 관평동성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여한 순례단. ⓒ김수나 기자<br>
대전교구 관평동성당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여한 순례단. ⓒ김수나 기자

일본의 엉터리 핵 정책, 핵폐기장 공론화 문제

31일 이어진 두 번째 간담회에서는 먼저 타카노 사토시 씨(원자력자료정보실 연구원)가 “일본의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 정책의 문제점, 엉터리 공론화 정책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원자력자료정보실은 일본 비영리단체 법인으로 탈핵 운동단체다. 그는 발표에서 일본의 고준위 핵폐기물 현황,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핵폐기물 처리 지역 선정의 역사, 2000년 제정된 핵폐기물 최종 처분법의 문제점 등을 설명했다.

특히 현재 일본의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용량은 이미 80퍼센트가 찼다. 핵 발전이 계속된다면 곧 저장 용량이 가득 차 핵발전소를 가동할 수 없게 되지만, 일본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는 재처리 공장으로 옮겨지니 괜찮다고 선전하며 재처리 공장과 처분장을 지을 곳을 계속 찾고 있다. 지역 선정을 위해 일본 정부는 2000년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이하 NUMO)를 만들었는데, NUMO가 주도하는 지역 선정 과정에는 불투명한 정보, 일방적 의사소통, 대화 내용 비공개, 주민의 거부권 미보장, 교부금 지급에 따른 갈등 조장 등 여러 문제가 있다.

NUMO는 문헌조사, 개요조사, 정밀조사라는 3단계 과정을 통해 처분지를 정하는데, 각 조사 단계마다 응모하는 지자체에 교부금을 준다. 문헌조사 교부금은 20억 엔(약 190억 원), 개요조사는 70억 엔(약 670억 원)이다.

타카노 씨는 “가난한 지자체가 교부금을 위해 응모할 가능성이 있다. 현지인들이 반대했을 때 거부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일방적 시설 추진이란 지적에 2010년 여러 입장의 전문가가 논의하는 심포지엄이 시작됐지만 NUMO가 의제 설정을 유리한 쪽으로 주도하고, 결정된 의사 내용이 반영될지 알 수 없고 의사 결정 과정도 정의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부금을 위해 지역 선정에 응모하거나 정부의 신청을 수락하면서 갈등에 놓인 마을들이 생겨났다. 2020년 인구 약 2800여 명이 있는 홋카이도의 슷스마을이 응모했고 약 780여 명인 카모에나이 마을은 정부의 지역 선정 신청을 수락했다. 타카노 씨는 “이들처럼 매우 작고 가난한 지자체가 나오는 것이 문제”라면서, “슷스마을은 촌장이 문헌조사 응모 검토를 돌연 발표했고 반대하는 마을 주민회가 결성됐음에도 마을 조례를 어기면서까지 비공개 협의체를 통해 응모했다. 지금은 조용한 갈등 상태로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핵폐기물 처리를 위한 공론화 정책은 한마디로 엉터리라고 꼬집었다. 문제가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한번 결정되면 계속 진행하는 일본 특유의 ‘행정 무오류주의’가 그 원인이다. 핵발전 의제들은 사회적 토론 없이 진행될 수 없고 토론 없이는 최종 처분지에 대한 경의나 감사함도 없다고 강조했다.

정책과 의제에 대한 권한을 독점하고, 교부금으로 주민을 회유하고, 안전기준은 사후에 추가하는 등의 방식으로는 부지 선정의 탈락 기준도 모호해지며, 여러 가난한 지자체 간 유치 경쟁도 생겨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타카노 씨는 “숙의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을 하면 자동으로 공론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인들은 문재인 정부를 통해 깨달았다. 아직 일본은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대화와 사회적 합의, 저항이 양립된 사회운동이 가능할지 논의하고 싶다”면서, “부안, 삼척, 영덕, 울산, 슷스처럼 구체적 투쟁 현장이 사회적 대화와 공론의 계기를 만든다. 슷스마을처럼 지역 사회 분단을 격화시키지 않는 운동과 연대도 과제”라고 말했다.

두 번째 간담회 발표자인 (왼쪽) 타카노 사토시 씨(원자력자료정보실 연구원)와 석광훈 씨(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김수나 기자

한국의 엉터리 핵 정책, 윤석열 정부의 핵 진흥 방침

석광훈 씨(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우선 정책과 문제를 발표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뒤에도 한국의 핵발전 안전 조치와 안전규제 체계는 매우 미흡한 상태이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 주듯 핵발전소에 대한 테러와 전쟁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럽연합(EU) 의회가 친환경 투자 기준인 녹색분류체계(Taxonomy, 택소노미)에 가스와 핵발전을 포함시켰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의 핵발전 안전 조치를 요구하는 것인데도 한국 정부는 맹목적으로 핵발전 비중 상향과 핵발전소 수출 방침을 세운 상태다.

윤석열 정부의 주요 에너지 정책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기존 23.9퍼센트에서 33퍼센트로 상향 ▲부실시공으로 가동 멈춘 핵발전소 조기 가동 ▲2030년까지 핵발전소 10기 수출 ▲재생에너지 비중 30퍼센트에서 24퍼센트로 하향 조정 등인데, 그는 다음이 이유로 이를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세계는 911테러,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했고, 웨스팅하우스(세계적인 미국의 원자력 발전소 제작 회사이자 방위산업체)도 도산했다. 최근 EU 택소노미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핵발전 안전조치를 요구하며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 핵발전 안전 규제도 더 강화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가 핵발전을 넘어 급성장하는 시대에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은 배타적인 발전 방식인 만큼 핵발전소 수출 정책도 시대착오적이다. 앞으로 4-5년 지속될 러시아발 가스 대란에도 건설에만 10년이 걸리는 핵발전소는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

간담회에는 30일에는 한일 순례단 참가자를 비롯해 대전 지역 신자와 환경단체 활동가 등 40여 명, 31일에는 수도자, 평신도 등 60여 명이 참여했다.

모든 순례 일정을 마친 2022년 한일 탈핵평화순례단. ⓒ김수나 기자<br>
모든 순례 일정을 마친 2022년 한일 탈핵평화순례단.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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