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탈핵평화 순례, 20일부터 4일간 열려

“핵 없는 평화 세상! 저희가 생명과 아름다움을 지키게 하소서!”

한국과 일본 교회가 ‘2016 한일 탈핵평화 순례’를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순례에 이어 한국에서 열린 이번 순례에는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와 탈핵천주교연대,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와 일본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가 참여한다. 

20일 부산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간담회로 시작된 탈핵 순례는 첫날, 고리 1호기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부지 순례,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과의 만남으로 마무리됐으며, 둘째 날부터는 영덕 핵발전소와 울진, 삼척을 거쳤다.

한국과 일본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 탈핵운동가 등 60여 명이 참여한 이번 순례는 ‘탈핵’이 한일 양국 국민을 위해 시급하고도 절박한 공동의 당면 과제라고 보고, “한일 가톨릭 탈핵운동의 교류가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연결해 전문성을 보완하고, 신앙에 바탕을 둔 탈핵운동의 비전을 제시하며 대중성을 확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 탈핵순례 참가자들은 고리 1호기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발전소 가동 중단과 시민안전 비상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정현진 기자

“지진은 가까웠지만, 정부는 멀었다. 개인들은 또 다시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들은 첫 순례지인 고리 1호기 앞에서 탈핵부산시민연대와 천주교한일탈핵평화순례단 이름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주지역 지진에 따른 비상대책 수립과 핵발전소 가동 중단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더 큰 지진은 없을 것이라는 정부와 한수원의 말은 이미 틀렸고, 사고는 언제나 예측을 벗어날 때 발생한다”며, “핵발전소가 천년만년 안전할 것이라는 오만함에 경고한다. 전국의 모든 핵발전소를 즉각 중단하고, 지진 위협에 대응하는 안전 대책 수립, 신고리 5, 6호기 철회와 핵발전소 폐쇄 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순례에 참가한 밀양 송전탑 지역 주민 구미현 씨는, “추석 전후 지진을 겪으며, 신고리 5, 6호기 승인 당시 원안위 관계자의 발언이 기억났다”며, “한국에는 더 이상 지진이 없으며, 핵발전소 다수가 모인 지역이 안전하다는 그 말이 정말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는 무책임한 그들의 막말을 막아야 하고 핵발전소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고리 1-4호기 핵발전소를 바라보는 순례객들. ⓒ정현진 기자

“원자력발전은 속임수 용어.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이다”

첫날 간담회에 참석한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이번 경주 지역 지진으로 한국이 더 이상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위험에 제도적으로 대비하는 시민 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국 교회는 생태환경위원회가 정평위 산하에서 별도 위원회로 독립한 만큼 탈핵을 위해 일본 교회와 지속적으로 연대할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또 강 주교는 우선 용어 문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이다. 원자 속의 핵이 폭발하는 에너지인데도 속임수를 위해 원자력 발전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므로, 의식적으로 바꿔 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일본 탈핵 활동가 히루마 노리코가 일본의 반핵, 탈핵 흐름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 측에서는 현재 탈핵 운동 쟁점 가운데 신고리 5, 6호기 건설 저지,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반대, 핵발전소 인근 주민 갑상선암 공동소송에 대해 소개했다.

히루마 노리코는 일본의 탈핵운동은 195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냉전에 따른 국내 사회당과 공산당의 분열, 미국과 일본 간 안보 투쟁 등의 영향으로 “완전한 핵발전, 핵무기 금지”에 이르지 못하다가,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일본 탈핵 운동의 방향이 비로소 통일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는 대단히 슬픈 일이었지만 그동안 탈핵 운동에서 빠져 있던 정당이 다시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신고리 5, 6호기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최수영 사무처장(부산환경운동연합)은 고리 1호기 폐쇄를 이끌어 낸 경험으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 철회를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면서, “신고리 5, 6호기는 승인 이후 오히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리 1호기 폐쇄에 이어, 신규 핵발전소 승인 철회라는 역사적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반대에 대해 설명한 김용호 대표(기장 해수담수화 반대대책위)는 기장지역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문제는 “주민 권리와 안전성”에 있다며, “주민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공급받을 것을 강요한다는 점, 방사능은 물론, 삼중수소를 1퍼센트도 거르지 못한 해수담수화 수돗물에 대한 안전성 우려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민간주민투표 결과 83퍼센트가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핵발전과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은 거의 없다”면서, “탈핵을 정책으로 삼는 정당 활동을 정확하게 알고, 그런 정당에 소중한 주권을 행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 "이주만이 살 길". 월성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한일 양국의 핵발전소 문제를 공유했다. ⓒ정현진 기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 문제를 두고 공동소송을 벌이고 있는 이진섭 씨는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소송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소송을 시작했고 1심에서 이겼다. 그 결과를 가지고,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반대 운동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핵발전소 인근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타 지역의 최소 5배이며, 이들 가운데 592명과 공동소송을 하고 있다면서, “이 소송이 끝까지 이기게 된다면, 한국은 더 이상 핵발전소를 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민의 건강권을 담보로 한 핵발전소는 필요 없으며, 이 운동의 끝은 탈핵”이라고 말했다.

순례단은 핵발전소로 인해 강제로 이주당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근 마을을 돌아봤으며, 이주를 요구하는 월성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었다.

월성 핵발전소 인근 경주 나아리 주민들은 3년 째,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월성 1호기로부터 제한구역인 914미터에서 담벼락이 붙어 있는 인접 지역 주민인 이들은 특히 삼중수소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면서, 758일째 농성 중이다. 지난 1월 주민 40명이 자체 검사를 의뢰한 결과 40명 전원의 몸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으며, 이들 가운데는 5살에서 19살의 아동, 청소년도 포함돼 주민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삼중수소는 월성 핵발전소와 같은 중수로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로 몸속 수소를 대체해 장기적으로 몸속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백혈병과 암도 유발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검사 결과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며, 이곳에서 아이들을 더 이상 키울 수 없고, 이주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 "핵 없는 세상을 위하여" ⓒ정현진 기자

"아직은 괜찮다는 생각 넘어서야"

일본 예수회 소속으로 현재 한국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에 파견된 나카이 준 신부는 이번 탈핵 순례와 한국의 지진 사태, 그에 따른 정부의 대처를 보면서, “지진과 핵발전 사고의 경험이 있는 일본 정부도 핵발전소의 위험을 여전히 숨기고 있다”며, “탈핵과 재난에 대한 대책은 한국과 일본의 공동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문제가 보여도 ‘아직은 괜찮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며, “‘아직은 정상’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 위험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항상 대비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런 대책은 중앙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가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포항에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김 아가다 씨는 탈핵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먼저 한국의 전기 생산에 핵발전이 30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며, “그 정도라면 충분히 다른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고, 핵발전이 없어도 충분하다. 이런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는 특히 교회가 더 많이 가르치고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무엇보다 교회 안에 에너지 문제, 탈핵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소그룹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며, “신자들, 교회의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그 열매를 위해서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더 많이 알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한일탈핵순례는 23일 서울에서 마무리된다. 오전 10시부터 명동 가톨릭회관에서는 탈핵 간담회가 열려, 탈핵을 위한 지역, 국가적, 한일 연대적 차원의 과제를 논의하고, 교회 가르침에 근거한 탈핵 행동지침에 대해서도 나눌 예정이다. 간담회 뒤에는 명동성당 입구 광장에서 탈핵 음악회가 열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