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매우 부실
국회, 민간 감시체계 시급

지난 5월 발표된 월성 핵발전소 방사성 물질 누설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조사단 조사 결과가 매우 부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누설 사고에 대한 즉각적 공개와 안전 조치를 위해 더욱 강화된 법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월성 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등 설비에서 벽체 균열, 부식 등으로 방사능 오염수가 계속 누설되는 가운데 21일 열린 토론회 ‘월성원전 방사성 물질 누설로 본 안전 법규제 위반 실태와 대응, 조사단 발표 결과 분석 중심으로’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논의다.

2021년 1월 경북 월성 핵발전소 부지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고농도로 검출된 사실이 공식 알려졌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3월 핵발전소 규제 기관인 원안위의 ‘월성원전 삼중수소 조사단’, ‘월성원전 삼중수소 현안소통협의회’가 구성됐다. 같은 해 9월 월성1-4호기 방사성물질 누설 조사 1차 결과와 향후계획이 발표됐고, 2022년 5월에는 2차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삼중수소는 다핵종제거설비(ALPS, 오염처리시스템)로도 정화되지 않아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출에서도 심각성이 지적된 방사성 물질이다. 전문가들은 삼중수소가 사산, 다운증후군, 소아 백혈병 등에 의한 유아기 사망과 건강 등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21일 토론회에서는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박창근 교수(가톨릭관동대), 이정윤 대표(원자력 안전과 미래)가 조사 결과의 미비점과 부실함, 원안위와 한수원의 안전 규정 위반 사항, 법적 개선점 등을 분석했다. 토론에서는 장마리 캠페이너(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국회와 시민사회의 적극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담당 기관으로 토론자로 예정됐던 김인웅 부장(한국수력원자력 방폐물관리부)과 임시우 과장(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과)은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회 참가자들. (왼쪽부터) 김영희 변호사, 장마리 캠페이너, 김용민 국회의원, 박창근 교수, 이정윤 대표, 임성진 교수(전주대). (사진 제공 = 김용민 국회의원실)
토론회 참가자들. (왼쪽부터) 김영희 변호사, 장마리 캠페이너, 김용민 국회의원, 박창근 교수, 이정윤 대표, 임성진 교수(전주대). (사진 제공 = 김용민 국회의원실)

이미 알고도 방사성 물질 누설 사고 쉬쉬

이들이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월성 핵발전소에서 수년간 방사성 물질이 누설된 것은 지역 주민은 물론 국민 안전에 매우 중대한 사항이며, 다른 핵발전소의 구조적 안전 문제와 연결되는데도 원안위와 한수원이 이 사실을 숨기고 안전 조치를 즉각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조사 결과에 누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근본 해결책 등이 나오지 않고, 안전 관리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도 전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2018년 8월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차수막 파손 사실을 확인하고 원안위에 보고했지만 원안위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고, 2019년 11월 <탈핵신문>이 이를 최초 보도한 뒤 2020년 6월에야 조사해 월성 1-4호기 구역 지하수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것을 확인한다. 2020년 12월 ‘월성원전 부지 내 지하수 삼중수소 관리현황 및 조치계획’라는 내부 보고서를 시민사회가 입수하면서 누설 사고가 전국에 알려졌다.

월성 1호기 발전기 냉각수 저장수조의 방수막 역할을 하는 에폭시의 손상 및 방사능 오염수 누설 문제, 이에 대한 조치 필요는 2019년 9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월성원전 규제실 검사원이 내부 문서인 정기검사보고서에서 이미 지적됐다. 하지만 원안위와 한수원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2020년 월성 3-4호기 부지 지하수 삼중수소 농도가 2010년 월성 1-2호기 백그라운드 농도보다 100-1000배 높아졌다는 점까지 지적하고 있고, 이번 조사에서 이는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이정윤 대표는 2019년 3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내부 인사위원회의 녹취 내용 일부를 공개 했다.

저장수조 누설의 문제를 제기한 규제실 검사원은 “월성사이트 지하수에 울타리 안에 있는 지하수에 삼중수소 농도가 굉장히 높아요. 그 높은 게 뭐냐면 계통수(핵발전 과정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수)가 나오지 않는 한 그렇게 높아질 수가 없는 상태로 지금 높아요. 환경으로 새고 있다는 것처럼 저는 판단이 돼요.... 그거 문제 제시하니까 조직에서는 그 문제 나가면 시끄러워질 거 빤하니까 지적사항 내는 거 못하게 해요”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그런데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2021년 2월 보도자료를 통해 "사용후핵연료저장조로부터의 직접적인 누설이 아니며”, “핵연료저장조의 건전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이라고 했다며, "이는 규제기관의 명백한 거짓말로 이렇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는 콘크리트 벽 구조에 방사능 오염수의 유출을 막기 위한 방수막으로 내벽을 '스테인레스강(스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최고 노후 핵발전소인 월성의 저장수조는 '에폭시'로 설계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에폭시 손상으로 인한 오염수 유출이 문제가 돼 전 세계적으로 방수막은 '스테인레스강'으로 설계한다.

월성 핵발전소는 스테인리스 방수막으로 교체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인 2012년 후속 안전설비인 격납건물 여과배기설비를 시공하면서 차수막까지 파손됐으며, 이어 재가동까지 추진됐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법적 설계기준상 최신 기술인 스테인리스 방수막을 설치해야 하지만 이를 적용하지 않고 재가동을 추진한 것도 위법에 해당한다.

월성 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단면. 콘크리트 구조물 안 벽면에 방수를 위해 에폭시라이너가 설치돼 있다. 저장조 심도 9미터 부근의 흙과 물에서는 세슘까지 검출됐다. (자료 출처 = 김영희 변호사 발표자료)
월성 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단면. 콘크리트 구조물 안 벽면에 방수를 위해 에폭시라이너가 설치돼 있다. 저장조 심도 9미터 부근의 흙과 물에서는 세슘까지 검출됐다. (자료 출처 = 김영희 변호사 발표자료)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위법

김영희 변호사는 “월성 1-4호기 부지에서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이 확인됐다. 일부 굴착지점과 관측정에서는 세슘까지도 검출됐다”면서 “원전 누설이나 사고 등에는 일정한 경우 보고하고 국민에 공개해야 하는 원안위 고시가 있고, 이에 따라 한수원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돼 있는데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뿐 아니라 이번 조사 결과에도 중요한 정보나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박창근 교수(가톨릭관동대)는 ▲지하수 흐름 원리상 방사성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관측공별 지하수위, 삼중수소 농도 등 근거 자료 미공개 ▲삼중수소 누설됐다면서도 명시적 제공 자료 거의 없음 ▲누설량을 아직까지 확정하지 않았고, 외부 유출에 대한 유의미한 조사도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조사한 지) 1년 반이 지났는데 누설량도 확정 못했다면 밝힐 의사가 없는 것이다. 전문가가 대거 투입됐다면 이렇게 긴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면서, “이런 문장만 봐도 지금까지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기존 조사 방법이 왜 잘못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밀실에서 그들만의 리그로는 밝힐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정윤 대표는 월성 1호기 수조 바닥 손상이 가장 심각하고, 2호기 수조의 손상 정도로 봐서 3-4호기도 손상이 의심된다며, “수조 손상은 원안위 조사단 내부 합의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보고, 공개 규정 위반이며, 구조물의 손상과 누설은 원자력안전법상 원자로 시설 등의 기술 기준 위반이다. 국회 등의 현장 시찰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월성 핵발전소 굴착지점과 관측정. 1번 굴착지점에서는 세슘까지 누설된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 출처 = 김영희 변호사 발표자료)&nbsp;<br>
월성 핵발전소 굴착지점과 관측정. 1번 굴착지점에서는 세슘까지 누설된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 출처 = 김영희 변호사 발표자료) 

2021년 3월 30일 구성된 민간조사단과 현안소통협의회는 지금까지 조사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이나 설명회 등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2021년 9월 1차 발표 때는 지하수 방사능 누설을 인정하되 핵발전소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사하겠다고 했고, 2022년 5월 2차 조사 결과에서도 누설은 됐지만 외부 누설 여부는 확인이 안 돼 계속 조사하겠다고만 했다.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누설됐는지, 수조 내부 에폭시 손상 누설부위 사진이나 조사 내용은 무엇인지, 대국민 설명회는 왜 없는지 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 대표는 “누설 사실만 확인하고 원인 규명은 미흡하다”면서, “오염된 지하수가 마을로 들어갔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보다 누설된 그 자체로 문제”라며, “누설로 인한 오염 여부는 발전소 내에 국한된다는 결론과 바다로 유입된 사실이 빠진 것은 무의미한 조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먼저 월성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추더라도 저장수조의 에폭시 방수막을 모두 스테인레스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월성 핵발전소의 발전량은 2.4기가와트로 1년 기준 전력 비중에 2-3퍼센트에 그치고 전력 예비율이 10-15퍼센트이므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누설은 그 양에 관계없이 콘크리트를 손상시켜 저장조의 구조적 안전성에 문제가 된다.

김영희 변호사는 원안위가 방사성 물질 누설 사고를 즉각 공개하지 않은 것은 ‘원자력 이용시설의 사고, 고장 발생 시 보고, 공개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원안위가 미공개 근거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원안위가 방사성 물질 누설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누설이 월성 핵발전소 부지 안에서만 일어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원자력이용시설의 사고, 고장 발생 시 보고, 공개 규정’에 따르면 보고 대상 사건은 “배수구, 배기구 이외의 곳에서 환경으로 방출이 확인됐을 때, 계획 또는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경으로 방출이 확인됐을 때 등”으로 규정하는데, 원안위는 규정에서 말하는 환경에 부지 안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김 변호사는 “원안위는 환경을 해당 발전소 관리범위를 벗어나는 외부 구역을 의미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이는 위헌적이고 위법, 부당한 해석”이라면서, “환경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가장 상위법인 환경정책기본법 제3조 환경에 관한 일반적 규정에 따라야 한다. 원자력이용시설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작성고시도 단순히 환경이라고 규정하므로 환경에 부지도 포함된다. 이는 명백한 규정 위반으로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진행된 한일탈핵평화순례 때 월성 핵발전소를 찾아간 수도자들이 탈핵을 촉구하는 모습. ⓒ맹주형
지난 8월 진행된 한일탈핵평화순례 때 월성 핵발전소를 찾아간 수도자들이 탈핵을 촉구하는 모습. ⓒ맹주형

원자력이용시설의 사고, 고장 발생시 보고, 공개 규정에 따르면, 위원회는 국민에게 정보를 미리 공개할 수 있으며, 사업자는 위원회에 구두 보고한 경우 사건 발생시점으로부터 24시간 내에 홈페이지 및 언론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보고, 공개하지 않아도 제제나 처벌 규정이 없다.

김 변호사는 “원전의 안전에 얼마나 위법이 일어나는지 외부에 철저히 알려져야 한다. 원자력안전법에 보고, 공개 관련 상위 규정을 두고 위반 시 엄한 처벌과 징계, 제제 규정을 두어야 한다”면서, “원전 사고, 고장 등 안전 감시체계에 지역 주민, 시민단체, 독립 전문가 등 민간의 상시 통제를 위한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마리 캠페이너는 “이미 수조 바닥 콘크리트 심부 균열까지 예상되는 자료가 공개됐고, 원안위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관련 영상과 사진을 보유하고서도 조사단과의 내부 합의로 밝히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면서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진 담합으로 월성 원전의 심각한 누설, 구조적 안전성 문제를 근본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원안위는 심각한 안전성 문제에도 왜 쉬쉬하며 안전하다고만 하는가, 환경으로의 누설 자체를 왜 인정하지 않는가, 지진에 대비한 핵발전소의 안전성 문제 등에 대한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이 토론회는 그린피스, 원자력안전과미래,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김성환, 김용민, 박찬대 국회의원이 공동 마련했다. 토론회 영상은 김용민 의원 유튜브 채널, 발표 자료는 김성환 의원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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