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내가 참 대충 보고 대충 듣고 대충 아는 습에 젖어 사는구나' 하고 느끼고는 한다. 왜 그런 습에 젖어 있나 골똘히 생각해 보면 마주치는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의 밀도가 약해서가 아닐까 싶다. 무관심과 무 호기심, 그건 무지의 다른 이름 같은 것. 결국 따지고 보면 무지로 가득한 무명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거다. 앗, 그러고 보니 무명이란 말이 '밝음이 없음'임과 동시에 '이름이 없음'을 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어찌 이름이 없겠는가. 보이지 않으니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없는 거나 다름이 없어지는 것.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까닭은 내가 지금껏 냇가에 사는 물고기 이름 하나 잘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걸 고백하기 위해서다. 냇가를 가까이 두고 사는 축복을 누리고 산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내 눈에는 냇가에서 만나는 물고기가 다 그냥 물고기였다. 굳이 구별을 한다면 몸집에 따라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정도? 지느러미가 몇 개인지 비늘의 무늬는 어떤지 궁금해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이런 무심하다못해 무정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답지 않게, 둘째 다랑이는 물고기들의 세계에 관심이 깊다. 이름을 궁금해 하며 도감을 찾아보기도 하고 비늘 빛깔과 무늬에 경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잡아서 키울까 온통 그 생각에 빠져 지내기도 하고 말이다.

'물고기 잡으러 가자', 박다울 판화. ©박다울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력도 뛰어나서 훌륭하고 성실한 낚시꾼의 면모를 무수히 보여 주었다. 처음엔 플라스틱통 같은 것으로 잡다가, 시간이 좀 더 흐르니 날렵하게 잠자리채로 잡다가, 언젠가부터는 냇가 한두 곳에 어망을 던져두고 아침저녁으로(아니, 틈만 나면) 살피는데 '밑밥도 없이 던져둔 어망에 물고기가 잡히겠나?' 하는 내 짐작과는 달리 제 발로 헤엄쳐 들어와 주는 물고기가 꽤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잡은 물고기는 어떻게 하냐고? 항상 ‘이번에는’ 잘 키워 보겠단다. 큰 바가지에 멋진 돌과 이끼로 인테리어를 하고 물을 듬뿍 담아 물고기를 모시는 거다. 고양이들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바가지 위에 보호막을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들은 얼마 안 되어 죽는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익어 죽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얼어 죽고, 물을 자주 안 갈아 줘서 숨 막혀 죽고.... 결과적으로 다랑이가 잡은 물고기들은 우리집 고양이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거 봐, 이번에도 고양이 좋은 일만 시켰잖아. 다음부터는 물고기 키울 생각 말아라. 알았지?"

내가 이렇게 쏘아붙이면 다랑이는 순순히 대답한다.

"알았어, 이제 고양이 줄 것만 잡을게."

하지만 대답해 놓고 얼마 안 가서 또 이번에는 잘 키워 보겠다고 말하며 슬그머니 바가지를 가져갈 게 뻔하다. 내가 벌써 몇 번이나 당했는지.

'물고기 세상', 박다울 판화. ©박다울

그러던 어느 날, 다랑이에게 커다란 행운이 왔다. 아랫마을에 사는 아저씨 댁에 놀라갔다가 그 집 연못에서 잡은 여러 마리의 물고기를 선물로 얻어 온 것이다. 송사리나 피라미는 물론 갈겨니, 꺽지, 붕어.... 온갖 물고기들이 수십 마리나 되었고 걔 중에는 관상용 물고기 못지않게 빛깔이 화려한 물고기도 있었다. 다랑이가 얼마나 신이 났을지는 안 봐도 훤하지 않나? 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물고기 집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평소 다울이가 냇가에서 타는 배로 쓰는 커다란 고무 대야(빨대호)를 어항으로 삼겠다며 깨끗이 청소하고, 수돗가까지 수십 번씩 왔다갔다 하면서 물을 채우고.... 그리하여 마침내 물고기들을 새 집에 풀어놓았다.

"엄마, 이거 양어장 수준 아니야? 다랑이가 양어장 주인이 됐네."(다울)

"그래, 다랑이네 양어장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근데 물고기들이 잘 살 수 있을까?"(나)

"그러게 말이야. 다랑이 너 그동안 제대로 키운 적이 없잖아. 그냥 냇가에 풀어주는 게 나을 것 같다."(다울)

"안 돼! 내가 물도 잘 갈아주고 잘 돌볼 거란 말이야."(다랑)

다랑이는 이번에야말로 잘 키우는 걸 보여 주겠다며 큰 소리를 땅땅 쳤는데 과연 잘 키울 수 있을 것인지? 다음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무 대야에 사는 물고기들. ©정청라
어느 날의 수확.(다슬기, 민물새우, 이상한 벌레) ©정청라<br>
어느 날의 수확.(다슬기, 민물새우, 이상한 벌레) ©정청라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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