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복실이마저 죽었다.

복실이가 이상하게 굴었던 건 지난해 여름부터였지 싶다. 마을과 살짝 떨어져 있는 우리집 윗밭에 복실이 파견근무소가 있었는데, 사람을 넘치게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외로워하는 기색을 보일 때가 많았다. 우리가 밭에 가면 반갑게 짖다 못해 낑낑거리며 울고, 밥그릇에 오줌을 싸는 행동으로 관심을 유도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개집 지붕 위에 올라가서 고공 시위라도 하듯 내려오지 않기도 하고.... 나는 복실이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날은 덥지 일은 많지 복실이한테 손 뻗을 여력이 없었다. 하루 한 끼 밥 챙겨주며 내 나름대로 살갑게 말 걸어 주는 게 고작이었던 것 같다. 산책도 한 달에 한 번이나 시켜 주었을까? (크게 마음을 먹고 산책을 시켜 주려 하다가도 복실이가 하도 날뛰는 통에 산책시키기를 포기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니까 복실이는 너무 좋아서 날뛰고 껑충 달려들고 하는 것인데 내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 뭘 같이 하기가 어려웠던 거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려 해도 너무 달려드니까 흠칫 물러서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은데, 꼬질꼬질 꾀죄죄한 복실이 행색이 하도 딱해서 저수지 나들이 길에 함께했다. 물론 복실이는 너무 좋아서 난동을 부리는 수준으로 내달렸는데 아이들이 저수지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우뚝 멈추어 서서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이때구나 싶어서 내가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복실이 목욕 좀 시켜 주라."

그러자 다울이가 복실이 목줄을 붙잡고 물속으로 끌고 갔고, 복실이는 깜짝 놀라 허둥거리는가 싶더니 개헤엄을 치며 물을 빠져나왔다. 와, 복실이가 헤엄을 칠 줄 알다니! 내가 기억하기로 복실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깊은 물에 들어간 건데 말이다. 나만큼이나 놀란 아이들도 신이 나서 복실이를 자꾸 물로 끌어들였고 복실이는 그렇게 생애 첫 목욕을 경험했다. 그때 나는 묘한 해방감 같은 걸 느꼈는데 아이들과 복실이가 저수지라고 하는 큰 물의 품 안에서 함께 노는 것을 보면서 사람과 개의 경계가 차츰 흐려지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격적 감각의 순간은 너무나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다시 복실이를 묶는 사람으로, 복실이는 다시 묶이는 동물로 돌아와 몇 달을 지냈다. 그러는 사이 계절이 바뀌었고 바쁜 가을걷이도 끝났다. 복실이도 임무를 마치고 우리 집 마당 한 켠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복실이를 본 이웃집 할머니가 복실이 눈 아래 눈물자국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워따매, 개가 많이 아픈가 보네. 밭에다 묶어 놔서 진드기한테 시달려서 그랬으까? 포리약 좀 뿡겨 줘 봐. 그라고 인자는 밭에다 묶어 놓지 말어. 그라믄 개 죽어."

고백하자면 그때는 할머니 말이 귀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껏 4-5년 정도 함께 살면서 복실이가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복실이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건 더더욱 몰랐다.) 밥 잘 먹고, 사람이 가까이 가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달려들고, 고양이들이 가까이 가거나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면 무섭게 짖고, 복실이의 삶은 그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순딩이가 죽고 나서 얼마 뒤, 복실이가 심상치 않았다. 밥도 먹는둥 마는둥 할 뿐 아니라 내가 가까이 가도 오두방정을 떠는 게 아니라 조용히 다가와 핥아 주는 정도의 약한 반응을 보였다. 과잉 반응이 없자 왜 이렇게 서운하고 왜 이렇게 불안한지, 나는 당장 복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복실이가 예전처럼 해맑게 까불고 마음껏 탐색하기만을 바라며.... 하지만 산책을 나가서도 복실이는 평소에 비해 매우 얌전히 행동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 날 다시 산책을 데리고 나갔을 때는 자주 멈추어 서서 구역질을 했다. 그런가 하면 밥은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 밥그릇에서 멀리 물러섰다.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장염인 것 같아서 뭐라도 약 되는 걸 먹이려 된장, 숯가루, 매실액 같은 걸 물에 타서 주기도 하고 죽도 쒀 줬지만 한 방울도 입에 넣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 다음 날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에 복실이를 들여다보니 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 혈변을 누면서 묻어난 것이리라. 피를 보니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어서 다울 아빠는 주사약이라도 사오려고 얼른 동물병원으로 가고, 나는 복실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윗밭으로 데리고 가서 목줄을 풀어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밭으로 가는 길에 복실이가 더는 못 가겠다는 듯이 주저앉아 버렸다. 집으로 다시 데려갈까 했는데 만사가 귀찮다는 듯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자꾸 내 눈길을 피했다.

"복실아, 조금만 기운을 내. 우리 함께 살아야지. 그동안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많아서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이제 정말 잘할게. 난 너랑 더 오래 함께 살고 싶어. 약한 마음 떨치고 제발 힘을 내 줘. 부탁이야."

울먹이며 통사정을 했지만 복실이는 계속 내게서 눈길을 돌린 채 바닥에 엎드려 꿈쩍도 안 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집에 가서 수레를 끌고 와 복실이를 태웠다. (그때 나는 두 번 놀랐는데 첫 번째는 복실이가 너무 가벼워서였고, 두 번째는 복실이가 너무 순순히 내게 몸을 맡겨서였다.) 그러고는 윗밭으로 가서 가장 햇볕이 좋은 데 자리를 잡아 복실이를 내려놓고 목줄을 풀어주었다.

"복실아, 목줄 때문에 많이 갑갑했지? 이제 목줄 없이 너 다니고 싶은 데 마음껏 다녀. 알았지?"

복실이는 내가 곁에서 지켜보며 자꾸 말을 거는 게 부담스럽다는 듯 슬그머니 일어나 창고 안 후미진 곳으로 가 엎드려 버렸다. 이미 살고 싶은 마음을 접었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 같았다. 안 되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안 되는데.... 안타까움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그때 마침 다울 아빠가 동물병원에서 사 온 주사약을 들고 왔다. 나는 서둘러 주사 놓는 방법에 대해 전해 들은 뒤에 잠시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복실이 등가죽을 들어 올려 주사를 놓았다. 두 개의 주사약 중 하나는 매우 아플 거라고 했다는데 그걸 놓을 때도 복실이는 잠자코 엎드려 있었고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러고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이제는 좀 자고 싶다는 듯이....

"복실아, 한숨 자고 일어나면 아픈 데가 다 나을 거야. 아무 걱정 말고 푹 자렴."

그게 결국 마지막이었다. 복실이는 깨지 않고 영영 잠들어 버렸다.

다울이가 그린 복실이 초상화. ©박다울<br>
다울이가 그린 복실이 초상화. ©박다울

넷. 암탉계의 장희빈, 권력을 잃고 숨을 거두다.

(이제 마지막으로 비슷한 시기에 숨을 거둔 암탉 이야기가 하나 남았다. 희빈닭 역시 죽기까지의 사연이 구구절절이라 다음 이야기에 이어가겠다. To be continued~!)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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