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암탉계의 장희빈, 권력을 잃고 숨을 거두다.

닭을 키우면서 온갖 사건을 다양하게 경험했는데, 그 가운데 막장 드라마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사건들은 주로 희빈닭(갈색 암탉)의 생과 함께 흘러갔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희빈닭이 폭군 수탉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리는 무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알을 매우 잘 낳았지만 알을 품을 수는 없었는데 자신과는 달리 알을 품으려 하는(품을 수 있는) 다른 암탉들을 미워했다.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품지 못하게 방해 공작을 펼쳤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사실 나는 (여전히) 닭을 무서워해서 닭장 가까이에 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날마다 닭들의 밥을 챙겨 주는 닭장 관리인들(다울, 다랑, 다나)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다.

"엄마, 갈색 닭이 이모닭(알 품는 암탉)을 막 쪼아서 알 품는 걸 방해해."

"그뿐 아니라 모이도 못 먹게 하던데...."

"이상하게 이모닭이랑 내 닭이 품고 있던 달걀 개수가 자꾸 줄어드는데?"

그랬다. 알을 품는 암탉이 두 마리가 있어서 일부러 달걀을 넉넉히 넣어 주었는데 개수가 점점 줄어갔고, 유심히 지켜보니 갈색 닭이 날마다 달걀을 한두 개씩 빼앗아 못 쓰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하여 그 시즌에 태어난 병아리는 단 한 마리뿐이었고, 그 한 마리마저도 얼마나 모질게 구박을 하는지 가만 두었다가는 병아리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하던 닭장 관리인들은 당장 아빠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아빠, 갈색 닭이 병아리를 못 살게 굴어.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아."

결국 다울 아빠는 갈색 닭의 다리를 묶어서 닭장 한쪽 구석에 매어 놓았다. 그랬더니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탄식하게 될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핍박 받던 암탉들이 갈색 닭을 무참하게 쪼아 놓은 것이다.(그토록 처참한 응징이라니 닭들의 세계는 무섭다!) 나는 차마 눈 뜨고 보지도 못했지만 닭장 관리인들 증언에 따르면 갈색 닭 머리에 뇌가 다 드러날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심한 상처를 입은 갈색 닭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라고....

(잘 알고 보면) 마음씨 착한 다울 아빠는 갈색 닭을 닭장에서 데리고 나와 창고에 격리하여 돌보았다. 그러자 갈색 닭은 차츰 기운을 회복하고 이전처럼 하루 한 알의 달걀을 낳게 되었는데, 머리 한쪽이 심하게 찌그러지고 털도 더 이상 탐스럽지 않아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도 먹고 싸고 알 낳는 데는 지장이 없는 상황이라 갈색 닭을 닭장 안에 돌려보내기로 했다. 또다시 피바람이 불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따로 돌볼 수는 없는 일, 우리는 조심스럽게 닭장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여기서 순풍이가 바로 갈색 암탉. ©박다울<br>
여기서 순풍이가 바로 갈색 암탉. ©박다울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갈색 닭은 한동안 알아서 찌그러져 지냈다. 왕비처럼 누리던 특혜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도 감지덕지라는 태도로 납작 엎드려 지냈다. 그녀를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던 수탉마저도 그녀 곁에 가까이 가려 하지 않고 다른 암탉들은 그녀와 크게 거리를 두었지만 아무도 갈색 닭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닭장은 아주 잠깐, 평화까지는 아니고 큰 탈 없이 머물러 있는 듯이 보였다.

자, 이 정도 되면 이야기가 끝나야 할 것 같은데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러니까 몇 달이 지나자 다시 수탉이 갈색 닭을 총애하는 상황으로 돌연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자 갈색 닭의 갑질도 회복되었다. 폭군 수탉과 희빈 갈색 닭이 나머지 네 마리의 암탉을 몹시 괴롭히는 통에 닭장이 다시 시끄러워졌고 때 되면 알을 품던 암탉들은 더 이상 알도 품지 않았다. 암탉이 알을 품지 않는다는 건 병아리가 태어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때는 봄 가을로 병아리 소리가 울려퍼지는 걸 자연스러운 계절의 배경음악 정도로 여기며 만끽하던 때가 있었는데, 평화로운 세상이라야 그것도 가능한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때마침 이웃에 사는 분이 백봉 오골계를 키운다기에 그분께 부탁하여 백봉 병아리 6마리를 사 왔다. (백봉이 예뻐 보여서이기도 했지만 닭장 분위기를 쇄신해 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그 무렵 친정 엄마가 다른 친척분들과 함께 우리 집에 오셨는데 친척분 중 한 분이 왕년에 백숙가든을 하셨던 분이다. 그건 닭 잡기 도사라는 뜻! 폭군 수탉을 처단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부디 수탉을 잡아 잡수십사 부탁하여 닭장에서 수탉을 없앴다. (왜 갈색 닭은 잡지 않았냐 묻는다면 달걀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갈색 닭은 어떤 상황에서도 빠짐없이 알을 낳았고, 그 알은 다른 닭이 낳는 것에 비해 훨씬 컸으니까.) 그러고 나니 닭장 안의 최강자는 희빈 갈색 닭이 되었는데 그녀의 영화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어린 백봉 오골계 6마리가 자라 성계가 되었고, 그 가운데 세 마리가(아니, 세 마리나!!!-_-) 수탉이었으니까. 그리하여 한때는 그녀의 호령 앞에 쩔쩔매던 어린 수탉들이 장성하여 그녀를 쥐 잡듯이 잡게 되었다. 수탉의 사랑을 받을 만큼 젊은 나이도 아니지, (기존의 다른 암탉들이 어린 백봉이들을 잘 보살피고 폭군 수탉이나 희빈 갈색 닭의 만행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으로 공덕을 쌓았다면) 이전에 쌓은 게 공덕이 아니라 산더미 같은 원한뿐이지, 그런 상황에서 갈색 닭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갔다. 여왕에서 천덕꾸러기로.... 그렇게 설 자리를 잃게 되더니 결국 권력을 빼앗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 닭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고 닭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상해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 누가 죽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닌가 추측을 해 보는데 진실은 알 수 없다.)

한때 다울이가 닭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 그때 그 만화 한 장면.<br>
한때 다울이가 닭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소재로 만화를 그렸다. 그때 그 만화 한 장면. ©박다울

공교롭게도 지난 해 11월에 앞서 얘기한 네 건의 사망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지 뭔가. 그걸 복기하면서 조금씩 결이 다른 그들의 죽음을 통합해서 바라보아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고갯길을 오르는 심정으로.... 솔직히 희빈닭의 죽음 이야기를 마무리 할 무렵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왜 'Never alone'이라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할 지경이긴 하지만 다음 원고에 잘 마무리를 해 보겠다. 그러니까 아직도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 4편에서 또 만나요~! ^^;;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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