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떠나간 존재들의 죽음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봄이다. 우여곡절의 세상사, 얽히고설켜 있는 인연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김없이 생명이 꼬물꼬물 땅을 뚫고 올라오고 새 잎사귀와 꽃잎이 피어나는 계절, 봄! 봄에 들어서자마자 죽은 존재들이 드리운 그늘 같은 것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이 정말 살아 있긴 했나? 아니 정말 죽은 것일까? 사실은 모두 다 꿈이었던 건 아닐까?

만약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꿈처럼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훅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역시 세월이 약이야' 그러고 말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동물들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은 물론 아니지만 정말 최소한의 예의랄까? 함께 삶을 나눈 사람으로서의 도리 정도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같은 인간의 죽음마저도 너무나 쉽게 내팽개쳐지기 일쑤인 세상이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양심의 부르심.

왜,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 않나. 인디언이라 불리는 옛사람들은 사냥해서 잡아먹은 짐승의 뼈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지 않았다고. 본디 모습에 가깝게 뼈를 맞추어서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한 뒤 거기에 숨을 불어넣는 의식을 통해 그것이 다시 살아나기를 빌고 또 믿었다고. 나도 사실 그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잘 보내주기, 그리하여 잘 가게 하기. 그들이 잘 가야 생명의 잠재태가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잘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하늘나라로 간 동물 친구들. ©박다울
하늘나라로 간 동물 친구들. ©박다울
다나가 만들어 준 아기 생쥐 무덤.&nbsp;©정청라<br>
다나가 만들어 준 아기 생쥐 무덤. ©정청라

생명들이 갑자기 썰물처럼 확 빠져나가던 그 무렵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다울이가 나에게 "엄마, 활짝이가 어디가 아픈 것 같아. 자꾸 살이 빠져"라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을 두지도 않고 ‘살이 빠질 수도 있지 뭐 그런 걸 가지고 야단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엔 활짝이도 갑자기 죽는 거 아닌가 싶어서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집에 고양이가 너무 많아서 어느 하나라도 조용히 사라져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는데 그런 내가 고양이가 죽을까 봐 마음을 쓰게 되다니!

그때 난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동물들을 데리고 살아 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알고 보면 동물들이 나와 살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나랑 함께 살아 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하는 게 아니겠냐고.(앞서 목격한 몇 차례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이 정도의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이루었을까. 아무튼 동물들 앞에서 오만방자하던 난 지난 겨울 이후 확실히 저자세가 되었다.) 때마침 지난해 11월 첫날부터 나는 아침마다 "향모를 땋으며"란 책에 나오는 감사연설문을 낭송하고 있었는데 동물에게 감사하는 대목에서 정말 새록새록 절절하게 추임새를 넣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마음을 모아 우리와 함께 걷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동물에게 인사와 감사를 드립니다. 동물은 우리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많습니다. 동물이 계속해서 우리와 삶을 나누는 것에 감사하며 언제나 그러길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모든 동물님들에게 감사를 드립시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 "향모를 땋으며" 168쪽.

이렇게 납작하고 가난해진 마음으로 맞이하는 이 봄에, 우리 집엔 다시 기적처럼 새 생명이 가득 들어차 있다. 우리 마을 할머니 한 분이 키우라고 갖다 주신 털강아지 금똥이, 아니카가 낳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 닭장에서는 몸집이 가장 작아 우리가 꼬맹이라 부르던 암탉이 알을 품고 있으니 잘 하면 병아리도 만나게 될지 모를 일! 그뿐 아니라 날마다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다랑이 덕분에 작은 양어장까지 차려지게 되었으니.... ㅜㅜ (이 이야기는 다음 원고에!)  이렇게 난 자리에 새로 든 생명들이 이제는 참말로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먼저 간 동물 친구들 덕분이리라.

언제까지나 우린 결코 혼자가 아님을 여기서든 저기서든 기억할 수 있길!

새 식구 금똥이. ©정청라<br>
새 식구 금똥이. ©정청라
지금이 민물고기 제철, 다랑이네 양어장.&nbsp;©정청라<br>
지금이 민물고기 제철, 다랑이네 양어장. ©정청라

"쏠루세의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크리터로서 잘 살고 잘 죽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피난처들을 재구성할, 부분적이고 강건한 생물학적-문화적-정치적-기술적 회복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할 힘들에 참여하는 것인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애도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상실했고, 더 많이 상실할 것이다. 다시 시작된 생성적 번성은 불사의 신화나 사자死者, 소멸된 것과 함께-되기에 실패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 "트러블과 함께하기" 175쪽.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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