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김영희 변호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

2012년 2월, 신고리 5, 6호기 원전 건설이 '원자력이용시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등에 관한 고시'의 일부 조항을 어겼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탈핵’을 위한 법률가들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사람 김영희 변호사. 2011년 7월 발족한 해바라기의 대표인 그는 10년째 매일 탈핵을 위한 소송전을 치르며, 신고리 5, 6호기 건설 취소를 위한 소송 대리인을 맡아 지난달 23일에도 2심 재판에서 변론했다. 

신고리 5, 6호기 승인 및 건설허가 취소 소송, 월성 핵발전소 소송, 월성 맥스터 건설 취소 소송, 핵발전소 지역 주민 갑상선암 관련 소송....

신규 핵발전소 건설, 핵발전에 따른 주민 피해, 핵발전소와 핵폐기물로 인해 예상되는 위험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거대한 카르텔과 싸우기 위해 무엇이든 다 알아야 하는 제네럴리스트이자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만 했다는 김영희 변호사를 만났다. 탈핵을 위한 법률 싸움의 어려움과 의미를 말하며, 그는 “결코 아마추어처럼 할 수 없는 일,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변호사. (사진 제공 = 김영희)

“그동안 국내 핵발전 산업은 국민적 통제 밖에 있었어요. 모든 것이 보안, 영업 비밀,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감춰져 있었고 심지어 국회에도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감시를 할 수 없죠. 후쿠시마 사태 이후 소송이 시작되면서 핵발전계 당사자들에게는 최소한 적법성을 갖추는 수준이나마 신경을 쓰게 만든다는 의미가 커요.”

그는 탈핵 관련 소송 이전에 새만금 개발, 4대강 사업에 대한 소송을 맡기도 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정보의 철저한 비대칭성”이다. 모든 자료를 가진 쪽과 그 반대인 쪽이 싸움을 하는 모양새다. 김영희 변호사는 “새만금이나 4대강보다 핵발전계는 은폐가 훨씬 심하다”며, “그나마 현재 일부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9년 싸움의 성과인데, 여전히 중요한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두 번째 어려움으로 핵발전 자체가 갖는 어려움, 전문성을 들었다.

참여연대, 민변 활동을 하면서 국책 사업뿐 아니라 삼성 관련 소송 등 재벌과 관련된 소송도 많이 해 봤지만 원자력계만큼 전문가들이 폐쇄적인 조직이 없다는 그는 “폐쇄성과 나눠 먹기가 가장 심하니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와 달리,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데, 시민사회계를 지원하는 순간 배신자로 낙인 찍혀 생계 위협을 받는 것도 많이 봐 왔다”고 말했다.

단어나 원리 자체가 어렵고, 대중적 정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숨어 있는 구조. 그 속에서 ‘이기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핵발전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동시에 특별히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김 변호사는 “지금도 매일 관련 기사와 논문을 읽으며 공부하고 연구한다”고 말했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를 위한 주민 찬반투표가 진행되는 현장. 그에게 현장은 법원뿐만이 아니다. (사진 제공 = 김영희)

생업을 유지하면서 대가가 없는 일에 오랜 시간 투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10년째 이 일을 끌고 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제 성격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핵발전의 위험을 인식하는 순간 그걸 외면하기 힘들어요. 마치 내 눈 앞에서 집이 불타고 있거나, 아이가 물에 빠진 상황을 외면하는 것과 같은 양심에 대한 도전이죠.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는 “쉬운 길도 있겠지만, 눈 앞에서 위험 상황을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어렵다고 적당히 할 생각이었으면 건강까지 해치면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보상을 기대하지 않지만 보상이 된다면 다행히도 에너지 전환이 조금씩이라도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하지만 에너지 정책, 인식의 전환은 여러 분야가 관련되어서 이뤄져야 한다. 전선의 접점이 소송이지만 아직 법원의 인식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취소소송 1심 판결(2019년 2월 14일)에서 재판부는 “건설허가과정의 위법성은 인정하나, 건설은 허가한다”고 판결했다. 이른바 ‘사정 판결’로 그 이유는 “건설을 중단할 경우 이미 투입된 예산에 대한 예상 손실이 약 1조 원으로 그 금액이 크고, 위법 사유는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는 이 판결에 대해 “한수원은 1심에서 공사비 1조 원, 2심에서 공사비 5조 원을 들고 나왔지만 그것은 단순 경제적 손실”이라며, “발전소 문제로 사고가 일어나는 최악의 경우 최소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2500조 원이다.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10월 23일 열린 2심 공판에서 김 변호사는 신고리 5, 6호기의 위법 사안 14가지를 제시했다. 그 주요한 위법 사항 가운데 하나는 주민의견수렴 대상 축소다.

방사능방재법이 개정되면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신고리 5, 6호기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내 주민들은 약 170만 명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의견을 들은 것은 법 개정 이전 범위를 적용한 약 6만 명이다. 방사선 영향권 안에 있는 약 164만 명을 베재한 셈이다.

김영희 변호사는 “핵발전 문제가 어렵지만 관건은 위법”이라며, “위법과 절차 위반에 대한 경험은 충분하다. 상대방이 거대 로펌이지만 제출한 자료도 우리쪽의 것이 훨씬 많고 철저하다. 우리의 목적은 핵발전소를 못 짓게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꼭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변호사는 월성 1호기 수명연장허가 무효 소송에도 참여했다. 월성 1호기는 우여곡절 끝에 영구 중단된다. (사진 제공 = 김영희)

탈핵을 위한 소송 10년. 김 변호사는 어려워도 혼자 가는 길은 아니라고 했다. 100여 명의 동료 변호사들이 있고, ‘해바라기’의 일원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다양한 방향으로 또 다른 싸움을 하는 동료들도 있다. 법조계 외 의료, 교수 모임도 지원을 요청하면 기꺼이 짐을 나눠 든다.

긍정적인 성격으로 “이왕 하는 것 즐겁게”가 모토인 그는 또 다른 희망도 본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 공약을 내건 정부에요. 비록 아직 성과가 미미하지만 의지는 확실하다고 봐요. 정부의 의지도 그동안 바뀐 부분의 하나고, 지자체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이 늘어나고 있고 잘하고 있어요. 탄소중립 선언도 아직 선언이지만 중요한 진전이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이 에너지 전환을 확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죠. 기술의 발전 또한 진보적으로 가고 있어서 에너지 전환을 끌어가는 동력이 될 거라고 봐요.”

소송이라는 법률가의 방법 외에 김영희 변호사는 ‘활동가’로서도 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통해 매일 탈핵과 핵발전 관련 뉴스, 시민사회계의 움직임을 공유하는 그는 “핵 문제는 무조건 하나라도 더 아는 사람이 더 많이 떠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법적 소송은 상대적으로 소극적 액션이다. 사실 가장 결정적 변화는 제도와 입법”이라며, “법으로 규제하고, 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제도 변화와 입법은 여론으로 가능한데, 그 이전에 중요한 전제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전기가 누군가의 대가를 밟고 선 에너지라는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는 저절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죄의식을 가질 것도 아니다. 다만 기후위기나 핵발전 위험에 대해 인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그래서 많은 홍보와 소통이 필요하다. 전기를 아껴 쓰면서도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가 제도를 만들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아는 이들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희 변호사는 특히 종교 영역에 대해서, “지구와 인류의 삶이 안전할 때, 종교도 있는 것이고, 또한 종교는 그 두 가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며, “각 종교가 신자,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주도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구호나 가르침뿐 아니라 구체적 행보가 필요하다. 각 성당에 태양광 의무 설치와 같은 가시적 행보, 캠페인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신고리 5, 6호기 2심 선고 공판은 2021년 1월 8일 열린다. 이 결과에 따라 김 변호사는 또 한 해 핵발전소 하나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싸움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잘 되어야 할 텐데”라고 우려 섞인 말에 김 변호사는 “할 수 있고 해내야만 한다. 대신 즐겁게”라는 말을 내놓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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