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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앞에 선 광야의 소리들[강신숙 수녀] 12월 8일(대림 제2주일) 이사 11,1-10; 로마 15,4-9; 마태 3,1-12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되어 가고 있다. 한번 멸종된 생물은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인류 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꼽히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 역시 지도 위에서 하나씩 지워지고 있다. 우린 그 섬들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섬 아홉 개로 이루어진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이미 섬 두 개를 떠나보냈다. 삶의 거처를 잃은 주민들에겐 ‘기후 난민’이라는 딱지가 돌아왔다. 이들은 주변 부자나라 호주에 받아들여지길 간청했으나 그마저도 거절당했다.

일찌감치 위태로운 생존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가 구원의 손길을 호소하고 있다. 물 위로, 사막 위로, 잘려 나가는 숲에서 솟구친 그들 손이 전 세계인을 향해 도움을 외치고 있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이자 재앙의 진원지인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는 기후변화 협약이나 탄소배출 제한에 매우 미온적이다. 탄소배출량이 자국 개발과 성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소배출의 직접적이고 최대 피해지는 이와 관계없는 약소국들이나 저개발 국가들이다. 원망스럽게도 기후변화는 부자나라보다 가난한 나라들을 먼저 친다. 지난해 탄소감축을 위해 강력한 호소를 보냈던 사모아 총리는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 초청 연설에서 이들 국가들의 비협조적 태도를 보고, ″누구 하나라도 기후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곧바로 정신병동에 수용되어야 한다. 완전히 멍청한 인간”이라며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기후 난민 문제는 남태평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50년이 되면 방글라데시 국토의 17퍼센트가 침수되고, 이로 인한 기후 난민은 대략 2000만 정도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기후 난민 문제는 인류가 직면하게 될 최대 핵심이슈가 될 전망이다. 기후변화의 재앙은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가뭄과 산불, 거대 태풍을 일으키며, 사실상 지금까지 이룩한 인간 문명을 모조리 앗아갈지도 모른다. 인류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와 있다.

위기의 섬 투발루.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사모아 총리의 절박한 호소가 있고 난 뒤 1년이 지난 올 9월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행한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은 다시 광야에 나선 소리가 되었다. 그녀가 UN 세계 정상들 앞에서 절규한 소리는 전 세계를 뒤흔들 만큼 짧고 강렬했다. 그레타 툰베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유명인사였다. 16살 소녀가 등교거부를 시작하며 일으킨 기후변화 행동 촉구는 전 세계 청소년들을 일깨워 하나의 대열로 모여들게 하였다. 그녀는 이번 유엔 연설에서도 온몸으로, 혼신을 다해 경고했다. 생태계의 대멸종 앞에서 당신들은 이렇게, 이런 알량한 방식으로 거짓 포장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 더는 검증되지 않은 수치와 통계로 엄혹한 상황을 빠져나갈 생각은 말라는 것, 미래 세대를 위하는 척 거짓 가면과 연기를 즉각 멈추라는 경고를 하고 또 했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악마적 행위와 다름없다. 그러니 결코 지금까지 했던 대로 면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광야에서 외치는 세자 요한의 ‘소리’엔 이런 긴장감이 묻어 있다. 그는 단지 느슨한 도덕적 회개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소리는 전면적이고 즉각적이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10) 그는 곧 닥칠 임박한 시간을 알리는 최후의 전령으로 수많은 군중 앞에 서 있다. 그 속엔 사회의 지식인들, 군인들, 귀부인들, 장사꾼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도 있다. 그 역시 난국을 피하려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가차 없는 한 마디를 날린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세자 요한의 소리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 오늘 그레타 툰베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외쳐지고 있다. 그들은 지구적 재앙을 멈춰 보자고 모여든 세계 정상들과 인류를 향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태 3,8)고 촉구하고 있다. 임박한 대재앙 앞에서 목숨을 구하는 방법은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보는 일도, 의전적 세례도, 조상 대대 신앙을 지켜 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마태 3,9)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를 반복하면서 어떤 난국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문을 외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세자 요한에 따르면 사랑이신 분이 스스로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릴 것”(12)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얼마 전 폐막된 아마존 시노드 폐막미사에서 “포식자와 같은 개발 형태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삶의 불안”을 지적하며, 교회에서조차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소리를 틀어막는 행위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또한 ‘생태적 죄악과 회심’이라는 용어로 현 상황의 나태한 태도를 엄중한 죄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미친 듯이 질주해 오던 개발과 성장의 최면에서 깨어나 완전히 다른 문명을 창조해 나가자는 호소이기도 하다. 사실 인류의 진짜 위기는 이기적인 무능한 공감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대기권의 몸부림을 위협적 존재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가 인류를 살리려는 하나의 경고음이다. 그 경고음에 수많은 그레타 툰베리가 동참하고 있다. 굽고 휘어진 길을 곧게 하라는 외침은 전례 때에 동원되는 일회성 소리로 끝나선 안 될 것이다.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전환의 시작은 이 소리들이 뭉쳐서 함성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강신숙 수녀

성가소비녀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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