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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의 자유에서 한 걸음[어린이처럼 - 김유진] '전봇대는 혼자다'
"전봇대는 혼자다", 장철문 글, 방현일 그림, 사계절, 2015. (표지 제공 = 사계절)

자전거가 생겼어.

활짝 펼친 까치의 날개 무늬처럼

하얀 내 자전거는 이름이 눈사람이야.

 

앞바퀴 뒷바퀴 동그라미 두 개를 달고

내 눈사람은 나와 함께 잘도 달리지.

동글동글 봄에는 꽃비를 맞고

동글동글 가을에는 낙엽을 밟고

빙글빙글 바람을 일으켜 가며

빙글빙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햇살 아래서도 녹아 사라지지 않는

눈사람 자전거는 눈사람이 내게 준 씨앗,

눈사람 자전거는 눈사람이 내게 준 편지.

 

첫눈이 와 내 어깨에 닿을 때까지

나는 눈사람과 함께 달린다.

 

- 정유경, '눈사람과 함께 달린다' 전문("전봇대는 혼자다" 중)

 

자전거를 탈 줄 안다면 혼자서 처음 자전거 바퀴를 굴리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안장은 높아만 보이고, 자전거는 무거운 고철 덩어리처럼 여겨지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흔들흔들, 출렁출렁 첫 발을 굴리던 때를. 바퀴 세 개 꼬마 자전거를 타다, 보조바퀴 두 개가 달린 네 바퀴 자전거를 타고, 어느 날 두려운 마음을 가득 안고 보조바퀴를 떼어 버린 채 두 바퀴로 날아가던 순간. 오직 내 몸의 움직임만으로 제어되어서인지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의 순간은 자동차 운전을 처음 하던 순간과는 또 다른 즐거움과 신기함으로 기억된다.

자전거 타기는 어린이에게 가장 흥미로운 놀이 중 하나다. 내 몸을 움직여 내는 속도는 시원하되, 풍경을 돌아보지 못할 만큼 빠르지 않다. 적절한 속도가 자아내는 바람과 풍경과 거리가 자전거만의 매력이다. 내 두 다리를 굴리면 나를 둘러싼 공간이 달라진다.

며칠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에게 자전거와 자동차 운전이 완전 허용됐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우디에서 여성들의 자전거 타기는 2013년 4월에야 허용됐고 그나마 출퇴근, 등하교용으로는 금지된 채 취미로만 허용된 것이었다.(<오마이뉴스>, ‘자전거 타는 사우디 여성들이 TV에 출연한 이유’) 서구는 물론 세계 어느 곳도 성별 불평등이 없는 곳이 없지만 운전조차 불허한 나라가 있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영화 '와즈다'(2012)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크리스리픽쳐스인터내셔널)

2012년 개봉된 영화 ‘와즈다’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는 열 살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를 통해 일찍이 이러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와즈다는, 여성은 자전거를 탈 수 없다고 만류하는 엄마와 남자아이와 자전거 가게 주인 말을 모두 뒤로 한 채 제 길을 찾아간다. 우연히 본 초록색 새 자전거를 사기 위해 와즈다가 선택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쿠란 암송 대회에서 우승 상금을 타는 것이었다. 이 영화를 만든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사우디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자전거 운행뿐 아니라 사우디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을 담담하지만 촘촘히 비춘다. 와즈다는 자전거를 못탈 뿐 아니라 학교에서 히잡을 쓰고 운동화를 신지 말라고 강요당한다. 또 와즈다의 엄마는 직장을 다니기 위해 남성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매일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남성의 자동차를 얻어 타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성들만의 잔치가 환한 조명이 밝혀진 밤 마당에서 흥겹게 벌어질 때 어두운 옥상에서 와즈다와 와즈다의 엄마는 둘의 삶을 가만히 얼싸안는다.

오래전 혼자 여행하며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을 때 남성 동행이 없어 사원 앞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일은 꽤 충격이었다. 일행인 척하고 모르는 남성 옆에서 몰래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재를 거부당했다는 분노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톨릭은 그러지 않는다고? 사제 서품부터 미사보까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 성당 여러 곳을 가보았는데 단 한 군데 성당도, 단 한 명도 미사보를 쓰고 있지 않았다. 성체 분배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여성 신자들은 소매 없는 상의를 입고 있었고 일상 옷차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도 본당 주보에서 여름철 여성 신자들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규제하는 공지사항을 보게 될까.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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