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대체복무 길 열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없는 것은 헌법불합치”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병역법 제88조 1항은 합헌”이며, 이와 더불어 “병역의무 불이행을 처벌하는데도, 대체복무제가 없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는 병역법 제5조 1항(병역의 종류)은 헌법불합치”라고 판결했다. 또 헌재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 관련법을 만들어 2020년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로 2001년 오태양 씨가 첫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로 18년, 2011년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병역법을 합헌 결정한 지 7년 만에 대체복무제의 길이 열렸다.

이날 헌재 앞에서는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쟁없는 세상, 참여연대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 결정을 환영하면서, 대체복무제도를 빠른 시일 안에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임재성 변호사는 “한국전쟁 뒤 68년간 2만 명에 이르는 병역거부자가 처벌받아 감옥에 가고 있고, 현재도 200여 명이 수감되어 있다”며, “오늘 헌재의 결정으로 그동안의 고통과 슬픔을 멈출 수 있고, 한국사회가 그런 고통을 만들었던 사회임을 반성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현재 재판 중에 있는 이들과 수감된 이들은 무죄판결이나 형집행 정지 신청 등으로 해결하고, 남은 형기를 대체복무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미 형을 살았던 이들은 사면복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엠네스티와 민변 등이 28일 헌재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국제엠네스티 이경은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그동안 국제엠네스티를 비롯한 전 세계 인권단체는 유일한 병역거부자 처벌 국가인 한국에 수없이 국제규약을 이행하라고 권고, 촉구해 왔다며, “양심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간 이들을 즉각 석방하고, 행정부와 입법부는 즉각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먼저 “양심적 병역 거부는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들이 말하는 양심 또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따랐다는 의미로, 병역에 응했다는 것이 비양심이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특히 남북 분단과 관계 악화로 억눌리고 침해됐던 인권을 돌아봐야 할 때이며, 대체복무제 마련은 최소한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대체복무제는 군복무와 전혀 다른 성격으로 만들어야 하며, 군복무와 유사하거나 지원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도 이번 판결을 통해 대체복무제의 종류나 형태가 군복무와 전혀 다른 방식이어야 하며, 형벌의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시민사회단체는 합리적 대체복무제 조건으로 “관리와 내용 모두 순수 민간영역이어야 하며, 유엔 등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징벌적 성격이 아니어야 하고,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시기 또한 입대 시기 전뿐 아니라 복무 중이나 예비군훈련 중에도 가능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유명한 한 사례는 오스트리아의 신실한 가톨릭 신자 프란츠 야거스타터다. 그는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군에 입대하기를 공개 거부하여 1943년 8월 9일 사형됐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7년에 그가 신앙을 위해 죽은 것을 기리며 복자품에 올렸다. 야거스타터는 자기를 희생해 저항한 심벌로도 여겨진다. (사진 출처 = Sziklai at German Wikipedia)

2005년 천주교 신자로서 첫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던 고동주 씨(비오)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그동안 대체복무제가 마련될 기약이 없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다. 이제 판결이 됐으니 빨리 도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을 보면, “죽을 만큼 고생하는 곳에서 5년 이상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있다며, “그것은 대체복무가 아니라 형벌이다. 이미 한국에는 (산업기능요원 등)대체복무제가 있고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4주 군사 훈련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간은 국제기구가 제안한 병역기간의 1.5배 정도라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그동안 개인의 양심보다는 국민으로서 의무를 우선한 분위기를, 개인의 양심을 우선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의미를 갖는다며, “앞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평화운동으로, 병역거부뿐 아니라 무기감축 등의 영역으로 넓혀 갈 것이며, 개인적으로도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