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연구자 백승덕 씨

“병역은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 신앙을 세속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역 문제를 주제로 강좌를 준비하고 있던 징병제 연구자 백승덕 씨를 11월 21일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앙인아카데미가 여는 강좌를 시작하기 앞서 청중과 나눌 이야기를 먼저 듣는다는 취지의 인터뷰였지만, 아쉽게도 강좌는 폐강됐다. ‘병역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정한 강좌 제목이 ‘징병제는 어떻게 신앙이 되었는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강좌를 주관하는 단체가 ‘신앙인아카데미’가 아니었다 해도 비슷한 제목을 정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병역”이라는 말 앞에 “신성한”이라는 말을 늘 붙여 왔기 때문이다.

“'신성한 병역' 혹은 '병역의 신성성' 같은 표현은 한국에서 징병제가 시작된 이래 계속 나왔고, 일본이 식민통치를 하던 때도 병역과 관련해 신성함, 명예, 특권 등의 표현을 썼죠. 한편으로 병역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의미의 종교, 즉 비판할 수 없는 영역으로서 병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체복무제 이야기가 나오면 병역은 국민의 의무이며, 징병제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대답이 반성 없는 교리처럼, 습관처럼 나오고 있어요.”

그는 병역을 신성한 종교의 지위에서 내려오게 하고, 세속의 언어로 비판해야 군대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합리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백승덕 씨는 2009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받았고, 1년 3개월 만인 2011년 2월 28일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형을 마쳤다. 이후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30대 청년 연구자로서 신진 역사연구자 네트워크 ‘만인만색’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는 편집위원이자 칼럼니스트, 객원기자로 활동해 온 인연이 있다.

그는 ‘신성한 병역’에 대해 말하던 중 2009년 병역거부 선언 당시의 인터뷰, 기자회견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들을 떠올렸다.

“댓글이 제가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어요. 저는 ‘병역은 신성하며 애국해야 하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같은 비장한 반응이 많을 줄 알았는데, 댓글의 80퍼센트 정도가 저의 외모에 대한 비난이었어요. 그때 의외로 병역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옥에서 겪은 반응도 그랬지요.”

그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병역은 ‘통과의례’ 같기도 하다면서, “통과의례로서 신나게 열정적으로 통과하는 것도 아닌 ‘뜻뜨미지근함’”이 있다고 말했다.

▲ 징병제 연구자 백승덕 씨. 그는 병영 사고를 없애기 위해 입영 대상자 필터링만 강화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본다. ⓒ강한 기자

“자유주의적 환상 속에서는 의무를 다하면 어떤 권리를 받지요.”

이 대목에서 기자는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주인공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 입대를 강행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어서 백승덕 씨는 물었다. “병역이라는 것이 신성하지도 않고, 그것을 행한다고 권리로 돌아오는 것도 없으며, 행하는 사람의 적극성도 없으면, 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공공성’은 대체 어떤 성격일까요? 공공성에 대해 그런 인식이 많은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이런 것을 분석하고 싶어서 백 씨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았다고 했다. 그것을 이해하고 분석해 나름의 언어를 가졌을 때 사회에도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는 감옥을 나왔지만 여전히 해석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갇혀 있는 듯한 자신을 해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당시 백 씨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도하는 입영제도 개선 관련 용역조사에 인권 분야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연구, 또한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모병제’ 논의와 관련해, 군대 안 폭력이나 자살, 총기난사 같은 병영 사고를 막기 위해 현역 복무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걸러내야 한다는 논리를 비판했다. “행정적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가장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계속 그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 때문에 자살했거나 폭행으로 죽은 경우가 과연 당사자의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 때문일까요? 그건 결코 아니죠. 그런데 필터링만 강화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하자 있는 사람이 군대에 들어와서 당했다는 식의 생각입니다.”

모병제에 대해 백 씨는 모든 제도에 절대선, 절대악은 없다면서, 왜 모병제를 요구하는가 하는 근거가 중요하며, 그것을 따져 물어야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몇몇 정치인들이 내세운 모병제 방안이 그 배경으로 빈번한 병영사고를 지적하고 있다면서, 모병제를 운영 중인 미국은 참전 군인이 겪는 트라우마 문제가 심각하고, 최근 모병제를 도입한 독일이 외국에 군대를 파견하는 등 모병제가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약화시키는 경향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징병제가 민주적 통제를 불가능하게 하고 국민을 신민처럼 데려와 쓰는 것이 문제라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과정에도 민주적 통제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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