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6월 10일(연중 제10주일) 마르 3,20-35

우리는 마르코 복음을 계속 읽고 있다.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나라의 우정과 선포라는 맥락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누가 미쳤는가?

사람들이 너무나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므로 그분은 음식을 드실 시간도 없다.(마르 3,20) 자신들을 권위 있는 율법의 해석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세운 종교기관들을 예수님이 비난하자 그분의 친척들은 당황한다. 이 사람들은 그분과 가까운 사람들이고, 혈육일 수도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혼란스러운 가르침을 우려하며, 따르는 군중으로부터 그분을 떼어 놓으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이 미친 것 같다고 두려워 한다.(마르 3,21) 이들의 반응은 거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게 해 준다. 우리 시대에도, 로메로 대주교의 용기와 복음 정신은 그 나라의 특권층으로 하여금 악소문을 퍼뜨리게 했으며, 장례식 때에 로메로 대주교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리플릿도 돌렸다. 그분은 엘살바도르의 가난한 이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었고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예수님의 메시지에 대한 반대는 더욱 더 완강해진다. 그분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자들과(“사탄”은 “반대자”란 뜻이 있다) 어울린다는 비난을 받는다. 두 개의 짧은 비유에서, 예수님은 그런 비난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증명한다.(3,22-27) 그리고 공세를 취한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의 죄와 위반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사람이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모함함으로써 생명의 하느님나라를 거부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는 심각한 죄라고 말한다.(3,28-29) 그런 유형의 행동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미리 생각하고 조작한 의도적인 태도다. 그것은 믿음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이고 그러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매우 중대한 죄다. 그래서 아담의 원죄까지 거론하는 것이다.(창세기 참조)

예수의 진정한 가족의 기준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에 있다. (이미지 출처 = Pxhere)

예수님의 가족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다시 말하자면 그분의 가까운 친척들) 그분(예수님)을 찾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 기회를 활용하여 누가 그분의 진정한 가족에 속하는지 밝히는 때로 만든다. 기준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에 있다.(마르 3,31-35) 그렇다고 가족의 유대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결속을 더 심화시킨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육체적 어머니됨은 그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과 분리될 수 없다. 마리아는 자신의 몸 안에 하느님의 아들을 환영한다. 마리아 안에서 여성과 믿는 이는 하나가 된다. 여기에서 마르코는 마리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사실 그는 마리아를 복음에서, 단 한 번, 마르 6,7에서 거론했을 뿐이다) 현대의 신학자가 “첫 번째 믿는 이”라고 부른 사람에 대한 마르코의 조심성은 마리아의 믿음의 내용을 강조한다. 예수님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것에 대한 강조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