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7월 1일(연중 제13주일) 마르 5,21-43

애덕은 나눔이라는 의미에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준다.

익명으로부터 정체성의 회복으로

회당의 지도자는 이름이 알려진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회그룹에 속하지만, 주님을 개별적으로 찾아간다. 그의 딸이 죽어가고,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딸을 낫게 해 달라고 청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야이로가 그분과 함께 간다는 구절을 읽는다.(마르 5,23-24)

많은 군중이 또한 거기에 있다. 마르코는 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하는데, 아름답고 부드러운 장면이다. 한 여인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 당시의 분류에 따르면, 이것은 여인이 불결하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여인은 낫기 위하여 애쓰면서 가진 모든 것을 다 써 버렸다.(5,25-26) 여인으로서 소외받고, 아파서 그리고 가난하여 무시받으면서 여인은 예수님께 초라하게 다가간다. 그는 그분께 감히 말조차 할 수 없다. 여인은 속으로 아마도 예수님의 옷을 만지면 그분이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자신이 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도 그분에게서 기적을 훔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5,27-28) 여인의 계획은 성공한다.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을 만지고 건강을 회복한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는 항상 개인적이어야 하므로, 이어지는 대화가 이러한 여인의 태도의 의미를 완성시킨다.

“누가 나의 옷을 만졌느냐?”(5,30)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질문이 순진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꽉 차 있어서, 누가 만졌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분은 여인에게 그가 힘겨워 하고 있었던 소외와 멸시로 고착된 익명성을 떠나보낼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인을 군중 속에서 지적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 것은 바로 여인이다. 주님께서 그를 온전한 존엄성을 지닌 한 인격으로 맞이할 때에, 여인은 그분에게 “진실을 다” 말한다.(5,33) 주님께서는 여인의 믿음과 용기를 높이 인정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평화 속에 가거라”(5,34) 너는 나에게 신뢰를 두었기 때문에 네 스스로 너를 낫게 한 것이다. 이제 평화를 받으라. 그분은 여인의 신체적 건강을 회복시키고 사회 안의 지위까지 회복시킨다.(여인은 소외된 상황으로부터 벗어난다) 믿음을 가지는 것은 생명을 갖는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을 만지고 건강을 회복한다. (이미지 출처 = Flickr)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다

야이로의 딸에 관한 나머지 이야기는 생명을 다루고 있다. 소녀가 방금 죽었고, 상황은 끝난 것 같다.(마르 5,35) 그러나 죽음이 예수님을 정지시키지 못한다. 믿음은 죽음보다 위대하다. 실상, 믿음은 죽음에 대한 승리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한 말은 “두려워하지 말라”(5,36)다. 복음에서,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다. 예수님은 거창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예수님은 그분이 하려고 하는 것의 중요성을 최소화시키고자 한다: “아이는 죽지 않고 그저 잠자고 있을 뿐이다.”(5,39) 주님께서 아이에게 생명을 준다. 아이는 일어나고 -자세한 상황은 보이는 것보다 더 중대하다- 예수님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좀 주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오늘날 죽음의 친구들은(지혜 1,16) 이 세계 많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부인한다. 이번 주일의 말씀은 예수님이 선언하는 생명에 대한 의지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처럼, 고통받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 앞에서, 바오로는 코린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라고 요청한다. 재치 있게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가진 사랑의 진실성”(2코린 8,8)을 증명하는 구체적 자세를 제안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의 나눔은 “공평한 균형”(2코린 8,14)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아픈 여인과 야이로의 딸에게 했던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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