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5월 27일(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마태 28,16-20

오늘 대축일은 우리 신앙의 중심점을 상기시켜 준다.

제자들을 만들기

예수님이 그분의 사명을 수행하기로 선택한 갈릴래아에서부터, 제자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0) 세례 주기 위하여 파견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이 선포되는데(신명 4,33) 지방으로부터, 예루살렘의 거만한 주민들이 멸시하는 땅에서 선포된다. 사명의 파견은 산 위에서 이루어지고, 산은 성경에서 중대한 계시가 일어나는 전통적인 장소다. 장면은 과장이 없다. 필요 없는 과장의 요소들이 없다. 단순하게 “그들이 예수님을 뵈었을 때,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8,17)라고만 묘사한다. 예수님은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그분의 힘을 불러일으킨다.(28,18)

사명은 “제자들을 만드는 것”(28,19)으로, “복음 선포”를 하기 위한 구체적 형태인 제자 양성으로 구성된다. 복음의 선포는 청중들을 예수님의 추종자로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분의 가르침을 그들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복음은 오직 말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말은 행위를 동반해야 한다.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말과 행위 두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결단이 없는 말씀은 공허하고 말씀이 없는 행위는 명료함이 부족하다. 우리는 생명을 주시고 메시지에 의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말과 행위 두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성령의 인도 아래

사명은 “모든 나라들”(마태 28,19),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만드는 것이다. 제자들은 고립된 사람들이 아니다. 신앙은 공동체에서 살아지고 신앙은 또한 하느님-공동체를 선포한다. 하느님 안의 이 공동체(삼위일체)는 우리가 그 안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28,19) 거룩한 생명의 표현이다. 신명기의 말씀은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백성의 믿음을 상기시킨다. 창조(신명 4,32), 계약(4,33), 탈출(4,34)의 하느님이시다. 사랑 때문에 인간 역사 속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4,39)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로마 8,15) 아이들은 노예들이 아니라 상속자다.(8,16) 자유의 영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를 모든 “마술적인” 길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외적이거나 비상한 어떤 것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의 행동과 말을 통하여, 사랑과 공의의 복음을 역사 속에서 육화시키려고 한다. 이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기본 의식주의 결핍, 실업,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사회갈등, 공의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에 따르고”(8,14) 그리고 우정을 바친다면,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마태 18,20)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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