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6월 3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마르 14,12-16. 22-26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기념은 우리에게 경배의 중요성을 다루는 구약, 신약의 구절들을 제시해 준다.

파스카의 배경

제자들과 주님의 최후만찬은, 그때 성찬례가 설립되었는데, 과월절 축제 때에 마련된다.(마르 14,12.16) 과월은 억압과 불의의 땅인 이집트에서 자유와 공의의 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유대 백성들의 이 과월은 하느님의 해방하시는 참여 덕분에 가능했다. 이 역사적 사건이 이스라엘 신앙의 기반이 되었고 그 중요성은 영원히 믿는 이들에 의하여 새겨져야 했다. 이러한 새김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죄가 불의의 뿌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주님의 무상의 사랑에 대한 응답은 사람들 사이의 공의롭고 사랑스러운 관계의 창조로 표현되는 것임을 알도록 이끌었다. 그러므로 파스카의 가장 깊은 의미는 죄로부터 은총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성찬례의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배경을 만들어 준 유대의 과월절과 성찬례를 분리시킬 수 없다. 바쳐진 주님의 몸과 쏟아진 주님의 피를 통하여 새로운 계약이 설립된다.(14,22-24) 예수님의 최후만찬은 그분에게 일어날 일, 즉 그분의 생명을 내어놓는 사건을 미리 기념하고 있다. 주님은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고 우리가 사랑, 하느님나라에 대한 그분의 뜻에 충실하도록 결단을 촉구한다.(14,25)

'최후의 만찬' (이미지 출처 = de.wikipedia.org)

참회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계약은 필연적으로 이중의 의무를 가져온다. 그것은 상호적인 소속과 충실함을 암시한다. 하느님은 하느님께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충실하시다. 오늘 우리가 읽는 탈출기의 구절은 경배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긴밀한 연결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구절의 주요 요지는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3.7)이다. 실제로 생명, 사랑 그리고 공의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지 않고서 하느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이 구약의 참다운 경배라면, 예수님의 희생에 관해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그분 때문에, 우리는 죽음과 불의로 표현되는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씻고 “살아 계신 하느님을 경배할”(히브 9,14) 준비가 될 것이다. 그러한 경배는 생명, 사랑 그리고 모든 사람의 권리에 대한 존중의 행위를 요구한다.

이번 주일의 독서는 우리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탈출 24,3)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몸과 피를 바치신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가 주님의 생명과 공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적 경배, 주일의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이 모든 내용을 잃게 된다. 개인적 여정과 성실성을 넘어서는 가난한 이들의 불의와 소외의 시끄러운 상황은 그리스도의 피로 봉인된 새로운 계약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성찬례는 우리들에게 오늘날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죄악의 구조들”을(메데인 회의와 요한 바오로 2세 인용) 상기시켜야 한다. 이 죄악의 구조들을 만드는 데에 참여했다는 우리의 뉘우침은 장엄한 전례 순간에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삶의 기본 요구가 착취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사회 건설부터 시작하는 것이어야 한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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