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 - 박유형]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젊은 사람이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꽤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어떤 분은 젊은이가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 수녀원에 들어갔던 사연이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해서 크게 웃었다. 평소에 왜 신학을 공부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 자주 묻기도 한다. 특히 공부가 힘들 때 말이다. 가끔 곰곰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쩌다가 이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10살 때 즈음의 일이다. 어떤 친구가 수녀님에게 질문했다. “수녀님, 하느님은 여자예요, 남자예요?” 수녀님이 대답했다. “하느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시란다.” 어린이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세상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가 가능하다니. 그런데 성경 동화 속 하느님은 항상 수염을 달고 계시는 걸? 그때는 이해가 안 돼서 넘어갔지만, 인생의 많은 순간에 왜인지 저 말이 떠올랐다. 특히 내가 여성이라서 세상과, 신앙과 불화하게 되는 순간에 말이다. 그때는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갈증이자 해방으로 남아 있을지 알지 못했다. 수녀님의 저 말은 내 마음속에 작은 불씨처럼 남아서 커졌다, 작아졌다 흔들리며 살아남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가끔 생각한다. 이 불씨가 나를 지금까지 데리고 온 것이 아닐까. 사실 젊은 사람이 왜, 어쩌다 신학을 공부하게 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할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나, 젊은 여성이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인 나를 구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외에도 내 짧은 삶에 숨겨진 '내가 이 공부를 하는 이유' 퍼즐은 곱씹을 때마다 생겨나고, 이걸 다 늘어놓으면 신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4박5일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궁극적으로 이 공부를 하는 이유를 표현하는 답은 주로 신부님들이 나에게 신학 공부하는 이유를 물어볼 때 드리는 답이다. “아마도 신부님이 사제가 되신 것과 같은 이유로요.”

신부님들이 나에게 신학 공부하는 이유를 물어볼 때 드리는 답이다. "아마도 신부님이 사제가 되신 것과 같은 이유로요." ⓒ노바 카리타스

나는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소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대답을 이해할 수 있고, 그도 이와 똑같이 답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소명이 꼭 크고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도 없고, 무엇이든 소명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랬듯이 말이다. 도미니코회 사제이자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자인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는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선호와 자연스러운 충동이 신이 준 재능 그리고 신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깊이 탐구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면서, 어쩌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분명 즐거움도 소명을 드러낼 수 있다고 결론 내렸을 거라고 말한다.

지난주에 교구 청년 미사에 다녀왔는데, 다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애쓰며 응답하고 있는가 생각했다. 세르티양주는 소명을 느꼈다면, '당신이 빛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지명된다면, 신께서 당신이 운반하기를 기대하는 그 어슴푸레한 빛이나 불꽃을 감추면서 가지 마라.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가져오는 삶의 열매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요즘 나는 이 빛이 얼마나 작고 꺼지기 쉬운가 생각하고, 이 열매는 얼마나 귀한가 생각한다. 이것을 원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또한. 미사를 드리는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말의 의미를 헤아려 보다가, 그들이 운반하는 빛과 불꽃이, 그리고 그것을 감추지 않는 용기가 나에게 주는 온기에 감사하며 집에 돌아왔다. 나 또한 타인에게 그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박유형
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좋아한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에는 잘 훈련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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