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 - 박유형]

연일 '이건 아니다' 생각이 들 만큼 뜨거운 날씨 속에서 문득 몇 년 전 방문했던 캐나다 몬트리올을 떠올렸다. 다녀온 뒤 여름마다 한국과 달리 습하지 않은 그곳의 여름 날씨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이런 건조한 여름이라면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곳의 여름을 그리워했던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내가 무엇을 입고 돌아다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도시의 분위기였다. 몬트리올을 다녀오고 내 SNS에 이렇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헐벗고 다녀도 아무도 등짝 때리지 않아서 좋았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수 있지만 아마 다수의 여성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여름에 끈나시를 입거나 짧은 바지를 입고 외출했을 때 가족에게, 혹은 길거리에서 모르는 이에게 잔소리 듣는 경험을 직간접으로 하며 자라 왔으니 말이다. 나 역시 아무리 덥더라도 주변 시선을 신경 쓰며 소매 있는 옷을 입으며 살아왔던 터라 몬트리올에서 '벗고' 다녔던 경험은 아주 속 시원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최근 몇 년간은 여성의 옷차림을 지적하던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이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입고 다니니 말이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분위기의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돌이켜 보면 끊임없이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사회적 공론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왜 여성들은 조신하게 입으라고 하는지, 왜 여성의 옷차림을 거리낌 없이 지적들 해 대는지, 왜 여성의 가슴은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무더운 여름에 답답한 브래지어를 입어야 하는지 등 그들이 했던 질문들이 지금의 변화를 만들었다.

프로불편러는 타인의 고통에도 불편을 토로하고 질문을 이어 가는 사람들이다. (사진 출처 = 빕클럽 포스트 갈무리)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불평, 불만이라고 치부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프로불편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편함을 전문적으로 토로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이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 만든 많은 변화를 생각해 보면 정말 '프로'라고 부를 만하다. 불법 촬영(몰카)이나 데이트 폭력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제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 불법 촬영이나 데이트 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캠페인 현수막들이 달려 있다.

가끔 이렇게 전문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들이 질문한다.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하세요?" 피곤하다. 그들이라고 왜 안 피곤하겠는가.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도 꽤 많은 일에 불편함을 표현하며 살고 있는데 가끔은 다들 잘 사는데 나만 불편해서 타인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침울해질 때도 있다. 아마 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끔 존경을 표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그러나 '프로'가 달리 프로이겠는가. 차별이나 폭력에 대한 공론화 이후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불편함을 문제 제기하며 변화들을 이어 나간다. 화장실 불법 촬영이 크게 공론화된 뒤에 공공 화장실에는 칸마다 '몰카 촬영은 신고가 예방입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었는데, 매번 누군가 그 위에 '신고가 예방이 아니라 안 찍는 게 예방 아닌가요?'라고 적어 둔 것을 발견한다. 불법 촬영 금지 캠페인 문구도 온건한 문구에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명확한 문구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보면서 어떤 불평, 불만은 독백으로 그치지 않음을 깨닫는다.

얼마 전에 본업을 하면서 동시에 부업처럼 공익 활동을 꾸려 나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떤 분이 공익 활동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게 마음에 남았다.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는데 앞서가던 할머니가 길에 떨어진 장갑 한 짝을 주우시더니 깨끗하게 털어서 잘 보이는 나무 위에 올려 놓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은 이후에도 잘 보이는 곳에 얹어진 한 짝짜리 물건을 보면 그 할머니가 해 놓으셨구나 생각하고 자신도 떨어진 물건이 있으면 깨끗하게 털어 잘 올려 둔다고 말씀하셨다.

왜인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 세계에 있는 프로불편러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피해에만 열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때문에도 불편을 토로하고 질문을 이어 가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들의 문제 제기는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한 짝의 장갑을 올려 보게 하고, 잃어버린 다른 짝의 행방을 염려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공동선을 위해 불편함을 크게 외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모두를 위해 기꺼이 허리를 숙여 팔을 뻗는 그들을.

박유형
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좋아한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에는 잘 훈련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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