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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사' 정신을 기르자[오늘은 여기까지 - 박유형]

얼마 전에 어떤 면접 자리에 갈 일이 있었다. 참고로 내 키는 176센티미터이고,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키가 몇이에요?"다. 그래서 키에 대해 알려 주는 일도, 내 키를 듣고 놀라는 감탄사를 듣는 일에도 익숙하다. 나를 처음 본 면접관께서 딱딱한 분위기를 풀 생각이었는지 키를 물으셨다.

"키가 몇이에요?"

"176입니다."

다음에 보통 나오는 말은 "생각보다 크시네요."라거나 "뭘 먹고 그렇게 컸어요?"이기 마련이고, 아마 바람직한 것은 처음부터 키처럼 외모와 관련된 사항을 묻지 않는 것이리라. 어쨌든 이 대화가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으련만, 면접관은 내가 결혼을 했는지 묻고는 "키가 커서 남자를 만나기 힘들겠어요, 허허." 하고 나의 연애 사정을 염려하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물론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결례라고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면접장을 나오면서 '다음번에 또 누가 결혼했냐고 물으면 파혼했다고 대답해야지.' 하고 굳게 다짐했다.

'남이사' 정신을 기르자. (이미지 출처 = Unsplash)

애석하게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평상시에 화장이나 머리에 신경 쓰지 않고 다니는 편인데, 수시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화장 좀 하고 다녀." "화장을 안 하니까 아파 보이네." "어라, 오늘은 치마를 입었네." 꾸며도, 안 꾸며도 따라오는 말들이다. 한번은 성당에서 저런 말을 들었는데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이제 제 얼굴 말고 영혼을 좀 보시겠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이는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네!"라고 받아칠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 일말의 두려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말이 항상 의도한 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말이다. 외모나 차림에 대한 말은 어찌되었든 일종의 '평가'이고,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기분 좋은 말이 될 수도, 지적질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영화 속 우아한 주인공들이 만나서 날씨 이야기부터 하는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상황과 상대에 따라 미묘하게 언어의 거미줄을 타는 노력은 관계에서 당연히 들여야 하건만, 보통은 목적도 없이 키나 결혼 여부를 묻고도 좋은 대화였다고 착각한다.

화장이나 옷차림에 대해 수시로 평가받는 건 단연코 여성이다. 얼마 전 한 배우와 가수의 사진을 두고 살이 쪘다느니, 성형한 것 같다느니 댓글마다 호들갑이었다. 그 배우는 '아픈 것도 아니고, 성형한 것도 아니고, 밥을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고 오히려 쿨하게 답했다. 남자 배우가 살이 찌면 '입금 전' 몸매라고 포장할 뿐, 자기 관리에 실패했다고 혀를 차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의 외모에 대해서는 다들 뭘 맡겨 놓기라도 한 듯 쓸데없는 참견이 너무 많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남이사' 정신인 것 같다. 여성이 체중이 늘었든 말든, 화장했든 안 했든, 사실은 전혀 중요치도 않은 일을 대화 거리로 '소비'하는 걸 언제까지 참아 주어야 하나?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가 그답게, 내가 나답게 살도록 서로 돕기 위해서다.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기준으로 상대를 속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이다.

박유형
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좋아한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에는 잘 훈련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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