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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과 가장 커다란 해방[오늘은 여기까지 - 박유형]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가졌던 날을 기억한다. 아마도 초여름이었는데, 학원에서 돌아와 보니 새 책상과 새 침대가 놓인 나만의 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까지는 항상 할머니나 언니와 같이 방을 썼는데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 문 앞에 서서 방을 바라봤던 순간은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완벽한 장면이다.

방이 생기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아무도 없다. 고로 자다가 팔다리를 마음껏 뻗쳐도 상관없다. 새벽까지 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들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뭘 하는지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어느 때고 마음대로 일기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소한 창밖의 풍경조차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일이 된다. 이곳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이 안겨다 주는 평화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내 방에 있을 때는 시간마저도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기분이었다.

가끔 마음이 정처 없을 때는 머릿속에 작은 방을 떠올려 본다. 책상과 침대가 놓여 있을 뿐인, 작고 단출한 그 방에서 나는 조용히 앉아 있거나 가만히 누워 있는다. 때로는 조용히 기도하기도 하고,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가끔은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이런 상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내가 어딘가에 정박해 있는 순간이 필요한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울프는 고정된 수입과 자신만의 온전한 공간이 삶을 윤택하게 함을 넘어서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해방"을 선사한다고 설명한다.

".... 그리고 일이 년이 지나자 연민과 관용도 사라지고 가장 커다란 해방, 즉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저 건물을 내가 좋아하는가 아닌가? 저 그림은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 진정 숙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의 베일을 벗겨 주었고, 밀턴이 우리에게 영원히 숭배하라고 천거한 신사의 크고 위압적인 모습 대신 훤히 트인 하늘을 보여 주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61쪽)

아마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는 나를 나 자신으로 바라볼 자유 또한 의미하리라. 내가 나의 방에서, 혹은 상상 속의 방에서 말로 할 수 없는 평화를 느꼈던 까닭은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를 충분히 음미할 시간과 여건이 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방 (이미지 출처 = Flickr)

자기만의 방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글이 또 하나 있다. 타인들이 자신의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방이 무한히 있는 호텔의 투숙객들이 계속해서 방을 옮기는 이야기다.

"칸토르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 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마음산책, 22-23쪽)

요즘 비교적 빈곤해지기 쉬운 비혼 여성은 더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계속해서 내 방이 주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 월세나 전셋값 때문에 쫓기듯이 방을 옮겨 다니지 않고, 저 소설에 나오는 투숙객들처럼 타인의 평화와 고요를 지켜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정녕 청년에게 허락된 것은 열 평 남짓한 청년임대주택뿐인 걸까? 정말 열 평이 인간의 품위를 충분히 지켜 줄 수 있는 평수인가? 이마저도 나에게 허락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사물을 그 자체로, 나를 나 자신으로 바라볼 자유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고정된 수입과 자기만의 공간,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의 태도가 마련된다면 일단 그러한 해방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별안간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 또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박유형
기본소득 청‘소’년네트워크에서 기본소득 운동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좋아한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장래에는 잘 훈련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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