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들 부활절 메시지

주님 부활 대축일(부활절, 4월 1일)을 앞두고 천주교에서는 많은 교구장들이 교회 안팎으로 일어난 미투 운동을 직간접으로 언급하면서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의 성찰과 쇄신의 노력을 당부했다. 그 밖에 제주 4.3 사건, 남북의 화해와 일치, 한반도 평화도 예수 부활을 맞아 관심사로 제기됐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현재 우리 사회의 어둠과 혼란의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염 추기경은 "오랫동안 상처로 억눌려 있던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서 "교회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면서 함께 치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일부 성직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오히려 약한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면서 이를 "사제의 본분을 망각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교회 전체가 정화와 쇄신이 필요한 때"라면서 "특히 성직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쇄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사회 각계로 번지면서, 큰 충격과 함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여성 인권 유린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 알게 됐다"면서 "교회 역시 이러한 부끄러운 일들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을 접했다"고 말했다.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도 "지금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미투 운동’은 우리의 몸에 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게 해 준다"면서 "이 운동이 '나도 당했다'를 벗어나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 먹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나도!'하고 응답하는 운동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이 운동을 그는 "우리의 몸이 근원적으로 다른 이를 섬기기 위해 있다는 것을 깨치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배 주교는 “우리의 몸은 약자를 힘으로 눌러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살리기 위하여 쪼개고 희생시키기 위해 있다"면서 "부활 시기에 나누는 기쁨이 진심이기를 바란다면 내 몸을 쪼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시작은 나약하지만 결코 꺼질 수 없는 희망의 불꽃을 보았다"면서 "자신에게 닥칠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공동선을 위해 정화의 촛불을 든 양심이 그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유 주교는 "희망의 불빛이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의 일부를 드러냈고, 교회는 사회와 신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면서 이는 "단 하나의 행위에 국한된 사죄가 아닌, 원천적 변화를 통해 교회다운 교회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약속이며, 이런 점에서 2018년 부활은 한국 천주교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인격에 상처를 주었거나 그로 인해 누군가 교회를 떠나게 했던 모든 죄를 반성한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교구 시노드를 통한 교회 공동체의 반성과 변화, 쇄신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2018년 교구장들이 부활 메시지를 각 교구에 발표했다. (이미지 출처 = Pxhere)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일상에서 주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기뻐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삶에 깊이 박혀 있는 죄악과 악습의 돌을 치워 내야 한다"면서 "때마침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의 악습들을 과감히 청산하고자 하는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교회가 솔선수범해, 우리 삶에 박혀 있는 어둡고 깨끗하지 못한 돌들을 치워 나가며 이 세상 안에서 부활을 증거하고, 주님의 부활을 함께 나누며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나아가자"고 말했다.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지난 겨울, 곳곳에서 터져 나온 '나도 당했다’는 억울한 목소리는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면서 "‘너는 죄인이다’라는 비난이 난무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이제껏 걸어온 길을 떠났으며, 심지어 죽음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억울함이 또 다른 억울함을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용서와 화해, 교회의 쇄신, 우리 자신들의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생태환경 파괴, 동물 학대,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폭력, 어린이, 여성, 노인,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행해지는 온갖 형태의 인권유린과 존엄을 파괴하는 행위"를 지적하며, 부당한 폭력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생명이 느끼는 마음의 감정을 읽어 내고 공감하는 능력"으로서 "생명 감수성"을 강조했다. 이 주교는 미투 운동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주변에는 우리가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면서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고, 70주년을 맞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아픔에 함께하자고 말했다.

이어서 권 주교는 “우리 모두 본당의 쇄신을 위해 어떠한 ‘쇄신의 삶’을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인지, 또 ‘세상의 쇄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한편,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회는 진심을 다해 평신도 희년을 경축하는 것이 마땅하다"면서 "희년의 정신이 그 본래의 취지에 맞갖게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안으로 확산되기를 기원하고, 우리 사회에서 남북의 화해와 일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희년으로 구체화되기를 희망"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근래 교구는 많은 시련을 겪고 있지만, 지금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내고 회개와 쇄신을 이루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라면서 "교구 내의 모든 사제단, 모든 신자 공동체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만이 쇄신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인천교구의 정신철 주교는 부활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성사는 세례성사라고 강조했으나, 사회 현안이나 교구내 병원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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