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목의 존재와 길을 묻다 5 ;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이은형 신부

[특별 기획] - 사회사목의 존재와 길을 묻다

1. 정의평화위원회
2. 생태환경위원회 - 탈핵 운동
3. 생태환경위원회 - 우리농촌살리기운동
4. 빈민사목위원회
5. 민족화해위원회
6. 사회복지회

2018년 새해를 맞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사목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떠한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다른 사목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회사목은 정의평화위원회, 민족화해위원회, 빈민사목위원회 등 각 ‘위원회’의 이름으로 ‘특수 사목’화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보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복음화하는 소명에 가장 가까운 사회사목이 과연 특수한 일부의 일인가는 오랜 물음이기도 하다.

촛불혁명 이후 적폐를 청산하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각계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이 역시 정부나 대통령의 일은 아니다. 적폐청산은 적발과 처벌,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에서 복음화해야 할 세상 속으로 교회는 어떻게 들어가고, 무엇을 바꿔야 할 것인가. 그리고 교회 스스로는 무엇을 바꿔야 할 것인가. 주교회의 위원회 구성을 중심으로 6개 사회사목 분야를 통해 그 길을 함께 고민해 본다.


이은형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는 지난 2월 1일 그가 속한 의정부교구 사제 인사에서 ‘안식년’ 발령을 받았다.

그는 “사제 생활 24년 만에 처음으로 안식년을 신청해서 받은 것”이라며, 안식년 1년 동안 “제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고, 스스로를 재충전하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상반기에는 석 달 정도 중견사제 연수를 받고, 나머지 시간 동안 사고의 지평을 넓힐 기회를 가질 계획이다.

다만, 2012년부터 그가 맡고 있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 총무 역할은 교구 인사와 별개이므로, 다른 사람이 임명되지 않는 이상 계속해야 한다.

그는 민족화해 분야에서 함께 활동해 온 신자들에게 “민족화해 사목을 특수사목으로 생각해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분단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형 신부 ⓒ지금여기 자료사진

다음은 이은형 신부와의 일문일답이다.

-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위태로웠던 남북관계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최근의 남북관계 및 동북아 정세에 대해 주교회의 민화위 입장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관계에 대변혁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주교회의 민화위가 담화문을 발표한 바 있다.(2018년 1월 19일, ‘평화의 여정을 시작하며’) 이 기회를 활용해 평화의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는 것이 교회 입장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이러한 긍정적 변화의 흐름 안에서,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과 방해도 내부적으로 있고, 외부적으로도 그런 움직임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데 흔들리지 않고, 평화의 가치를 위해 나아가도록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겠다.

 

- 남북관계를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움직임과 방해”가 내부에 있다는 것은 남한에 대한 이야기인가?

남북 분단이 70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대결, 분단의 갈등 구조를 통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도 있다.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국내 정치 안에서도 그렇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직접 겪는 당사자이기에, 우리 안에서 갈등 구조를 슬기롭고 지혜롭게 주도적으로 풀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릇된 생각과 방해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북한 급변 사태를 다룬 영화 '강철비'에서 ‘분단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더 큰 고통을 받는다’는 대사가 나왔던 게 생각난다. 혹시 그 영화는 봤나?

봤다. 우리가 겪은 상황에서 보면 그런 (대사에 맞는) 이야기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역사적 아픔이다. 북한에 보편적이지 않은, 특이한 체제가 자리 잡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 그것(분단)도 있는 것 같다.

이 기회를 통해 70년간 이어진 그릇된 분단 구조, 정전 체제를 분명히 바꿔 나가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잠시 중단한 상태가 아니라고 ‘완전한 종전’을 선언하고 ‘완전한 평화’를 이뤄 가도록 적극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며 함께 움직여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분단 70년을 맞아 교회는 주교회의 의장 담화문으로 ‘분단 70년을 평화의 원년으로 삼자’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꺼냈고, 그 이후 교회가 심포지엄 등을 통해 ‘평화체제’를 말해 왔다. 그 이야기가 좀 더 구체적으로 이뤄지면 좋겠다.

영화 '강철비'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영화사 NEW)

-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면, '강철비'는 남북한이 핵무기를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으로 끝난다. ‘힘의 균형’으로 이루는 평화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런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힘의 균형은 (실제로는) 늘 균형적이지 않다. 누군가는 강해지려고 하고, 그에 대해 상대방의 대응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고, 그것이 서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 그 결말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상상 속에서 이뤄진 결과인 것 같다.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은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적으로 이뤄야 할 우리의 과제다.

영화에 등장한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 유지보다는, 앞서 말했듯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갈 ‘평화협정’ 같은 것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우리는 ‘통일’ 이야기를 매우 많이 하는데, 누군가를 완전히 정복하는 느낌의 통일 논의는 갈등의 골을 깊게 할 수밖에 없고,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 우리가 지향하는 마지막 열매라면, 그것을 ‘긴 호흡’으로 보면 좋겠다. 긴 시간을 두고. 일단 상대방이 있는 상태니, 서로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시간을 두고 함께 통일의 결실을 맺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평화의 토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통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평화의 과정이 중요하다. 북한의 급변 사태를 염두에 둔다든지, 어떤 무기를 통해 적화통일을 한다든지, 이런 개념들은 버렸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통일 방안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1994)이 있는데, 국민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는 김영삼 정부 시절에 정해진 것이다.

그 틀의 첫째가 화해협력 단계, 그 다음이 남북연합 단계, 그리고 완전한 통일이다. 기본 틀은 남북 간에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교류 협력을 활성화해 나가고, 그게 무르익은 다음에 국가 연합, 연방제로 넘어가는 구조다.

평화를 유지하고, 평화가 점점 확장되고 깊어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한 정치적인 부분으로 넘어가는 그 방안을 지금에서도 잘 기억하며 이뤄 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게 아니라 옛 보수정부가 선포했던 방안이다. 그 틀대로 가면 좋겠다.
 

- 한반도 상황에 좋은 변화가 이어진다면,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이뤄진 천주교 주교단 방북 후 거론됐던 ‘북한에 사제를 정기적으로 파견’하는 일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당시 주교회의 민족화해 주교특별위원회 주교님들이 방문했는데, 그해가 2015년 12월이었다. 2015년이 분단 70주년이었고 방북의 기회도 가졌던 것인데, 한국 교회 입장에서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북한 천주교회는 매우 특수한 교회다. 성직자 없는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는데, 그처럼 불완전한 교회를 우리가 도와준다는 면에서 성직자가 상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처음부터 성직자를 상주시키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으니, 교회의 특별한 축일(예컨대 4대 축일)에 사제가 정기 방문해서 북쪽 신자들과 성사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데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남북이) 이야기를 좋게 나눴다. 조금 더 상황이 좋아지면 정기적 사제 파견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하나 덧붙인다면, 중국과 바티칸의 관계가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외교관계 수립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중국과 교황청의 긍정적 관계가 이어진다면, 그 영향을 북한 천주교회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는 종교인들에 대한 거부감, 두려움이 크다. 그러다 보니 중앙에서 통제하려는 욕구가 큰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마찬가지다.

북한이 종교 문제에 대해 좀 더 개방적으로 나오더라도 중앙이 강력히 통제하는 중국식 모델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한국 교회가 북한 교회와 직접 접촉하고 관계의 폭을 넓혀 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중국을 통한 연결고리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점들을 찍듯 만나다 보면 그게 선으로 연결되고, 이어서 면, 공간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점과 점이 만나는 초보적 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간 남북관계가 막혀 있다시피 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을 갖고 접촉해 나가야 한다.

천주교 입장에서 말한다면 단순한 종교적 만남뿐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전할 인도적 차원의 교류도 분명히 교회가 적극 실천해야 한다.

이은형 신부(왼쪽)가 2015년 11월 9-10일 금강산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종교인 모임’에서 북한 종교인과 함께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 종교인평화회의)

- 주교단 방북 이후 북한 천주교회의 새로운 소식은 없나?

크게 새로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주교단 방북 뒤 남북관계가 급격히 나빠졌다. 또 우리는 촛불 시위를 통해 정권이 바뀌었고, 동계 올림픽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려는 강력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민간, 종교 차원의 적극적 교류, 협력이 재개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조금 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 들어갈 수 있겠다.

 

- 천주교가 민족화해를 위해 펼치고 있는 활동으로 특히 중요해지고 있거나, 새롭게 시작된 것이 있나?

가장 큰 변화는 주교단 방북 뒤 2016년 춘계 주교회의 때, 민화위원장 주교님 발의로 본당 안에 민족화해분과를 둘 것을 강하게 건의했다. 왜냐하면 분단 문제는 우리 삶과 직접 연관되고, 영향을 주며 신앙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인데,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교회가 너무 소극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본당 안에서 실천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민족화해분과 설치를 건의했고, 공감을 많이 얻은 것 같다.

분단을 직접 체험하는 교구(의정부, 인천, 춘천교구) 중심으로 본당 민족화해분과가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교구에서도 조금씩 움직임이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여긴다.

이 분과가 생기면, 분과 활동을 위한 교육이 신자들에게 확장되고, 그게 평화교육과 연결되며, 분단 문제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집단의 시각으로 분단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실 그대로 바라보며,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화해 분과 설치는 교회 내 큰 변화의 시작이었고, 그 변화의 과정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을 돌보는 데 교회가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 본당을 시범 본당으로 지정해 신자들이 더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또 하나 덧붙이면 교육의 필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왜곡된 정보로 인해 분단 상황을 잘못 파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대교구는 평화나눔학교, 의정부교구는 민족화해학교를 통해 각기 신자들을 교육하고, 평화활동가들을 양성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 이번 인터뷰에서 반드시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교회가 사회와 소통할 가장 강력한 힘은 ‘평화’의 가치다. 교회가 강조하는 평화가 단순히 신앙적인 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해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평화의 가치로 세상 사람들과 깊이 연대할 힘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헌정 사상 최초로 촛불 시민들에 의해 정권이 바뀌는 과정을 보며 긍정적 자부심을 얻었다고 본다. 그 사건을 경험하며 국민들은 우리가 모은 힘으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자부심, 기대감을 갖게 됐다. 이는 평화를 향한 열망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연결될 것 같다.

그동안 남북, 평화 문제를 우리의 힘이나 생각과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외세에 끌려가는 듯한 구조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우리 힘으로 평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그런 차원에서 교회와 세상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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