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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통증 2[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82]

“팔이 아픈데 그 팔을 사고나 수술로 잃었다고 쳐요. 그러면 이제 팔이 아플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자꾸 없는 팔이 아프다고 느끼는 거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가상의 통증, 환상통.

몸신은 허공에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차례대로 움직여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듯이. 딩동댕동. 어디선가 음산한 유령의 멜로디가 들려오진 않을까.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어어, 어깨 힘 빼세요.”

몸신은 어느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 척추뼈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다.

“턱을 당기세요. 더, 더, 좀 더요!

나는 턱을 주욱 잡아당겨 한껏 이중턱을 만들었다.

그런데 뭐, 환상통이나 유령의 멜로디는 아니더라도 나도 맘만 먹으면 애 우는 소리 정도는 들리는 걸. 자는 아기 깰까 봐 가슴 졸이는 엄마로 살았던 숱한 세월이 내게 준 환상의 소리. 메리, 욜라, 로가 아기였을 때 겨우 낮잠 재우고 잠깐 목욕이라도 할라치면 샤워 물줄기 소리 사이로 애 우는 소리 들렸어. 잠에서 깬 우리 아가가 엄마 찾아 우는구나. 아아, 막 심장이 벌렁벌렁해. 나는 왜 지금 목욕을 해 가지고. 왜 하필 비누 거품을 발라 가지고. 깨끗하면 뭐 할 거냐, 애가 우는데. 그냥 더럽고 말자. 하며 후닥닥, 우당탕. 뛰어가 보면 에헤라디야! 우리 아가, 쌔근쌔근 잠만 잘 자누나. 그렇게 나는 애 우는 소리, 애가 어디 부딪혀 넘어지는 소리, 애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 등등을 맘만 먹으면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게 되었도다. 환상통에 버금가는 환상의 소리를.

어릴 때 동생이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가 잘 자라서 닭이 되는 바람에 이별을 했을 때도 그랬다. 아파트에서 도저히 닭을 키울 수는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정든 병아리?를 외갓집에 보내게 되었는데 한참 동안은 밖에 나갔다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열 때마다 삐악삐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 선명해서 외갓집으로 간 뒤 생사가 묘연한, 아마도 삼계탕이 되었음 직한 우리 병아리가 살아 돌아온 줄 알고 ‘삐약아! 삐약아!’ 하고 이름을 불렀더랬지. 그땐 나 말고 우리 식구 모두 같은 증세를 보였다. 어떤 대상을 마음 가까이하는 경우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도 얼마든지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몸의 감각으로만 느껴진다는 데에 더 큰 상실감과 허무를 동반할 수는 있겠지만.

털북숭이 로. ⓒ김혜율

몸신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란 기이하게도 없는 걸 있는 것으로, 또 있는 것도 없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통증은 과연 적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얼마만큼 더 보태어졌을까. 겁 많고 조급한 내 마음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신이 내 굽은 4번 경추를 바로잡기 위해 땀을 흘리는 동안 나는 목과 어깨로 느끼는 고통 말고도 확실하게 느끼는 또 다른 고통을 떠올렸다. 세 아이들을 줄줄이 데리고 어디라도 나가면 선배 엄마들이 내게 타이르듯 해 주던 말, 그래서 지금은 ‘어이구, 또 그 소리네’ 할 만큼 귀에 못이 박힌 말, “지금이 가장 힘들 때지. 그리고 또 가장 행복할 때고.” 라는 말로 대변되는, 행복한 육아의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꼬맹이들과 엎치락뒤치락 씨름해 온 세월을 돌아본다. 무엇보다 내가 많이 늙어 버렸다. 애를 하나 낳고 둘을 낳고 셋까지 낳으면서 팍 맛이 가 버렸지.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하도 말을 안 들어 씩씩댔더니 성격도 다 배려 버렸지. 아이들로 인한 고민은 언제나 업데이트되었고 넘어야 할 고비는 첩첩이 산중이었지. 아, 그런데 앞으로 갈 길은 또 얼마만큼인지. 라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마다 나는 선배들이 말한 육아의 신비, 즉 고통이 상쇄되어 행복으로 승화되는 체험을 하려고 무던히도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지금 인생 최고로 행복하다!(고 남들이 그러네). 아, 행복한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구나!(라고 남들은 말하지만....)’

젠장, 잘 모르겠다. 아주 조금, 양념처럼 뿌려지는 행복 덕분에 지금이 인생 최곤지 잘 모르겠고 아주 기가 차도록 힘들고 정신이 없기로 인생 최고인 줄은 확실히 알겠다.

물론 인생이란 시간차를 두고 행복해질 때가 많긴 하다. 성적에 연연했던 초등학교 시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님에게 ‘이번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안 그러면 엄마한테 혼나요.’ 하고 빌면서 청승을 떨며 눈물까지 찔끔거렸고, 그럴 때면 아, 나는 힘든가 보다. 하고 우긴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때야말로 걱정없이 평화로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하는 것처럼. 나이 들어 가면서 예전에 놓쳐 버린 행복을 찾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행복이 참으로 각박하다는 것. 그래서 오랫동안 찾아 헤매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자, 그럼 열쇠를 이리 주시오. 문이 따지나 안 따지나 봅시다. 철커덩, 덜컹. 아주 조그만 문 하나가 열렸다. 그래도 문이 많다. 아주 많다. 다른 문도 열어야 하는데 그건 할 수 없다. 그러려면 뭐든지 다 깨부수는 망치가 있으면 좋은데 그런 건 구할 수가 없다. 그저 우연찮게 열렸던 아까 그 문으로 들어가 본다. 아주 작은 방이었다.

아직도 기저귀를 못 떼고 엉덩이에 똥 칠갑을 한 로가 어기적거리며 자신을 씻겨 달라고 서 있다. 엉덩이에 똥독 오르기 전에 얼른 씻겨 주겠다만 똥 내음 맡는 것도, 손에 똥 묻히는 것도 과히 반갑지 않구나. 샤워기로 엉덩이가 좋아하는 최적의 물 온도를 맞추면서 깊은 한숨이 나온다. 신음소리가 나온다. 휴우우우. 애를 낳을까 말까, 낳으면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던 그 예전, 남편은 말했었지.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대. 잘 키워 주실거야.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하느님은 똥 기저귀를 대신 빨아 주진 않으셨어. 로의 엉덩이를 찰박찰박 씻기며 내 얼굴은 점점 굳어만 갔지. 눈빛이 매섭게 변해 갔지. 그때 로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 ⓒ김혜율

“엄마아~”
“....”

나는 대답도 귀찮았던 거야. 가만 있다가

“응, 왜?” 겨우 물으니, 로가 그랬어.
“엄마.... 사랑해.”

똥 쌌다고 자신을 미워하는 걸 알고 사랑을 고백하는 로.

나는 싫은 티를 낸 것이 부끄러워서 “어어, 그래. 엄마도.”라고 대답하고는 속으로 쩔쩔매었다.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로야, 괜찮아. 잘 했어. 똥 잘 쌌어. 싸는 장소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차차 하면 되니 개의치 말고 똥을 싸렴.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엄마가 널 사랑하는 건 변함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렴. 눈치 보지 마렴.’

그 이후로도 로는 나를 수시로 사랑했다. 우유 엎지르고 사랑하고, 집 어지르고 사랑하고, 형아 누나랑 싸우고 사랑하고, 아이스크림 줬다고 사랑하고, 사탕 먹고 싶어서 사랑했다. 하루에 수십 번 사랑한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사랑했지만 나중엔 이러다 우리 사이가 너무 형식적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로야, 그런데 너....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 아니니?”

얼씨구나, 절씨구. 하지만 그런 걱정과 부담감도 잠깐. 나는 어느새 사랑한다는 말을 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도 듣고 말해서 내성이 생기는 게 아니라, 들으면 들을수록 새롭고 의미심장하고 신기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짜증으로 폭발을 할 것 같은 감정도 쏴아아아... 바닷가 모래 위 글씨처럼 흐려지다 사라졌다.

로가 ‘엄마, 사랑해’ 하는 말이 실은 ‘엄마, 나 사탕 하나만’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 하나로 입이 헤벌쭉 벌어지고 무슨 일이든 용서가 되다니. 사랑쟁이 로가 맨날 화가 나 있던 엄마를 바꾸었네.

“흐흐흣, 엄마도 로 사랑해.”

나는 늦된 인간이어서 ‘무지 힘든데도 행복하다’는 감정의 역설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달까. ‘사랑해’라는 열쇠 하나로 똥 기저귀쯤은 얼마든지 치울 수 있는 아담한 방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 나는 이제 이 방에만 들어오면 아픈 것도 잊고, 힘든 것도 사라지네.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환상통-환상적인 고통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는 환상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데 좀 더 익숙해지도록, 그래서 말할 때마다 간질간질 웃음이 나도록 자꾸 이 말을 하려고 한다.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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