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 씨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 씨. 그는 사드반대를 위한 긴 싸움을 준비한다. 올해는 농사도, 삶도, 사드를 뽑는 일도 모두 지켜내겠다고 했다. ⓒ정현진 기자

1월 17일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 연대 시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동안, 뒤에 서서 마을 주민들을 살피는 한 사람이 있다.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 씨. 농사일을 모르던 그가 남편을 따라 시댁이 있던 소성리로 내려온 지 40년이다. 젊어서 소성리에 부녀회를 만들고 성주군 가톨릭농민회 분회활동에 몸담던 그는 경북여성농민회 초대 회장을 지나, 1990년대 초-중반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 뒤, 병으로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시름이 깊던 그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사건이 소성리 사드 배치였다. 몇 달만 싸우면 물러가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난 한 해는 농사일도 작파하고 덤벼들었다. 불법이므로, 주민들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므로 싸우면 금방 사드는 뽑혀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소성리 사드 반대 싸움이 3년째 접어든 지금 그는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9월 7일 아침 사드 4기를 속절없이 들여보내고 이틀 뒤, 주민들이 사드가 마을로 들어오는 악몽을 꾸고 막아야 한다며,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뛰쳐나와요. 나와서야 꿈인 걸 알죠. 마음의 충격이 그만큼 큽니다. 사드로 안보를 지킨다고 하지만, 정작 주민들의 삶은 지키지 못해요. 주민이 100명밖에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나이 들고 몇 안 되는 주민들이니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괜찮다는 겁니까.”

지난 9월 6일 저녁부터 7일 오전까지 15시간을 싸우고도 사드 장비 4기를 들여보낸 이야기를 하며, 임순분 씨는 울컥 울컥 속울음을 삼켰다.

싸움이 힘들어서, 사드가 이미 들어와서, 싸우다 다친 몸을 제대로 치료할 틈이 없어서도 아니다. 더 희망할 것이 없을 것 같은 불안, 억울함, 깊은 배신감 때문이었다.

2017년 7월 중순,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황동환)

지난해 4월 26일 사드 첫 반입 때는 미리 각오하고 들어올 것을 짐작하고 매일 길을 막았지만 허무하게 사드가 부지로 들어가는 것을 봐야 했다. 하지만 그 뒤 탄핵이 이뤄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보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때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번갈아 마을을 찾고 “사드 배치를 되돌릴 복안이 있다”며 약속한 것이 20여 차례, 국방장관은 “적어도 한밤중에 장비를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9월 6일 오후 5시 30분 추가 배치가 발표된 직후부터 들어온 사드 장비를 밤새 막아야 했다. 4월 26일보다 주민들을 막는 강도도 심했다. 9월 7일 아침 8시 발사대 4기와 장비를 실은 차량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주민들은 절망감에 첫 반입 때처럼 목 놓아 울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점심 즈음 정신을 차렸다. 임순분 씨는 주민들이 “4월에는 힘도 못 썼지만 이번에는 원 없이 싸웠다. 장하다. 사드는 불법이다. 이 힘으로 사드를 뽑아내자”며 다시 기자회견을 하고 일어섰다며, “그래도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인근 주민들이 모두 퇴근하고 마을로 들어와 우리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사드가 들어온 9월 7일 저녁, 각자의 일을 마치고 소성리로 퇴근한 이들은 조용히 지쳐 있는 주민들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를 한 뒤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임순분 씨는 “마치 우렁각시 같았다. 우리가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할까봐 이러는구나, 우리를 달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그래서 빨리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고, 주민들은 다시 모였다”고 말했다.

수요일 오후에 열리는 집회는 주민들이 참석해 상황을 공유하고, 결의를 다지는 장이다. ⓒ정현진 기자

지난해 말 소성리 주민들은 마을총회를 통해 2018년 한 해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싸움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국방부가 사드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시한을 2018년 12월로 밝혀 최소한 평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을을 지키고, 그 이후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마을 주민들은 다행히 아직 한 마음으로 싸우기로 했고, 연대도 변함없다. 그러나 주민들이 힘든 것은 정작 지자체와 정부의 태도다.

임순분 씨는 “무엇보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우리에게 한 번도 설명하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국회의원은 우리에게 빨갱이라고 한다”며, “국회의원,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고 100명밖에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희생하라고 강요받는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 하나는 끊임없는 분열 조장이다. “보상을 받으니 곧 부자 되겠다”, “부녀회장과 이장이 열심히 하는 이유는 돈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주민들에게까지 들려온다. 일부 단체가 벌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역할도 빠지지 않는다. 주민들은 기자 기피증까지 걸렸다.

임 씨는 “보상을 바란 적도 없고, 정부에서 소성리 주민들에게 보상에 대한 한 마디도 꺼낸 적이 없다”며, “우리는 소성리 외에 다른 지역에 사드를 배치하라는 것이 아니고,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사드가 들어오는 과정이 적폐 중의 적폐인 만큼 그것을 되돌리라는 것이고, 세상 어디에도 전쟁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발 약속을 지키라는 말. 불필요한 사드를 가져다 놓고 같은 민족끼리 무기를 겨누는 일을 거둬 달라는 말.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주민들이 없도록 실질적 안보를 지켜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임순분 씨와 소성리 주민들은 지난해 농사를 포기했다. 그러나 올해는 농사일도 놓지 않을 생각이다. 그동안 삶이 너무 피폐해졌고, 그 삶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면 싸움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삶을 지키는 일이 또한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드는 소성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다시 강조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소성리에 와 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동안 소성리가 버티며 싸웠던 것은 주민들만이 아니라 연대하는 이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는, 마을 어르신들이 얼굴을 익힌 이들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소성리를 잊은 거냐며 불안해한다며, “주민들이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잡은 손을 놓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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