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 빛이 오심을 전하고 빛을 따라가는 길을 기억하는 가장 오랜 축일, 세상 모든 곳, 모든 세대, 모든 이들의 집에 빛의 축복을 전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세상에 오심"을 기억하는 축일 중에서 가장 오랜 축일이다. 이미 2세기에, 곧 로마에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기 시작하기 훨씬 전에 이집트에선 바실리디안이란 영지주의적 종파가 1월 6일에 예수의 세례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4세기 초에 이집트 지역에서부터 1월 6일에 예수 아기의 성탄 축제가 발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예수의 탄생 자체보다는 구세주가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린다는 점, 곧 주님 공현에 오히려 더 중점이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퍼진 이 성탄 축일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베들레헴의 지역적 전통으로 더더욱 풍성해지면서 로마제국의 동부지역 전체로 전파되었다.

1. 성서적 배경과 의미

'삼왕의 왕', 살그머니 손가락으로 찔러 별을 가리키는 천사의 안내, 아우툰 대성당 부조, 12세기. (이미지 제공 = 박유미)

마태오 복음사가만이 동방의 현인들이(현대적 해석으로는 점성술가, 주술가라고 보지만, 마태오 복음에선 동방의 현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0세기부터  현인들이 왕으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왕이 태어남을 알리는 별을 보고 아기 예수 태어나신 곳으로 경배하러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마태오 2,1-12) 

루카 복음사가의 예수탄생 이야기가 황제 아우구스투스, 총독 퀴리노 그리고 목가적 모티브인 목자 등 서방지역 교회의 성탄축제에 깊이 영향을 주었다면, 마태오 복음사가의 성탄 이야기는 "별, 꿈 그리고 현자" 등 동방적 모티브로 동방교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의 이 부분은 사제 전승에 따른 형태로서 여기서 동방의 현인들은 진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복음사가 마태오는 의식적으로 이들을 유대 율법학자들과 대조를 이루도록 기술하고 있다.  율법학자들은 성서의 약속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일어난 실재를 인정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그들만의 지식체계(책의 세계)에 매여 있었던 반면, 이와 대비해서 이방인 사제들은 '실제로' 진리 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고, 그때까지 그들 자신이 표상할 수 있었던 차원을 기꺼이 넘어설 차비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사가는 율법학자들과 동방의 현인들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율법학자들의 이런 옳지 못한 자세가 유대교가 결정적으로 가치를 잃어 가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말 타고 가는 삼왕', 바르셀로나, 13세기. (이미지 제공 = 박유미)

마태오 사가의 이런 풍자적, 비판적 관점은 당시 그리스도교가 유대 문화공동체의 품에서 떨어져 나온 상황, 곧 갈등을 겪으며 서로 분리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초기에 곧 예수의 복음 말씀이 자신들의 종교에 깊이 배어 있는 이스라엘보다 오히려 밖에서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도들 모두가 유대인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경계를 넘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향했다.

마태오 사가는 세 사람의 점성술가 이야기를 통해서 이렇게 이방인들에 개방되는 상황을 앞당기고 있다.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마태오 사가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복음을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백성들이 나의 제자가 되게 하여라“(마태 28,19)

이처럼 동방의 현인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찾아왔다는 성서 기록은 그리스도교가 이미 아주 초기부터 한 나라, 한 민족에 머물지 않고 세계 모든 민족을 향한 움직임으로 나아가도록 용감하게 도약했다는 것을 담고 있다. 당시에만 머물러 있는 의미는 아닌 듯하다. 그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계속 생각하게 하는 의미, 전혀 다른 풍습, 전혀 다른 표상을 지닌 세계에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지는 한 계속 새롭게 돌아보게 되는 의미다.  

2. 동방에서 온 현인들에 대한 표상의 변화와 그 의미

'동방 세 현인의 경배', 라벤나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모자이크, 6세기. (이미지 제공 = 박유미)

보통 동방박사 세 사람, 또는 삼왕이라고 하지만, 사실 성서에는 아기 예수를 찾아온 현인들의 수가 적혀 있지는 않다. 다만 황금과 유황과 몰약이라는 '세 개의 선물'로부터 간접적으로 이들의 수를 이끌어 내도록 하고 있다. 완전함을 상징하는 이 '3'이라는 숫자는 늘상 이들 세 현인이 전체 인류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라비아 남쪽으로부터 에티오피아와 바빌로니아 등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전해 오던 동방의 세 현인들의 이름이 오늘날 전해지듯이 가스파르와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로 정해진 것은 3세기 오리제네스의 기록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6세기에 만들어진 라벤나의 비잔틴 양식 성당 산타폴리나 레 누오보의 모자이크에서 볼 수 있듯 이 당시 선조들은 이들 세 현인이 인간 삶의 세 단계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멜키오르는 하얀 수염을 지닌 노인으로, 가스파르는 갈색 수염을 지닌 중년의 성인으로, 그리고 발타사르는 수염이 없는 소년으로, 세 세대를 표현하고 있다.

9세기쯤부터는 이들 세 현인이 각각 당시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알려진 세 개의 대륙,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대표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멜키오르는 아프리카의 흑인으로, 발타사르는 아시아의 황인으로 그리고 가스파르는 유럽 백인으로 표현했다.

'삼왕의 경배', 잔 드 브레이. (1674) (이미지 제공 = 박유미)

10세기부터 현인 세 사람은 왕의 모습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사실 250년경 아프리카의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노가 이미 이들을 삼왕이라고 표현했었지만, 서방교회에서는 10세기에 와서 이런 관점이 널리 퍼졌다. 마태오 사가의 성탄이야기가 원래 왕의 탄생(헤로데, 새로 태어난 유대의 왕)과 관련된 이야기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 현인들의 모습은 왕의 모습으로 바꾸어 생각하게 되었다고도 하지만, 또한 주님 공현 대축일 전례에서 늘 봉독되는 이사야서 다음 구절의 내용이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들며 제왕들이 솟아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오는구나/ 큰 낙타떼가 너의 땅을 뒤덮고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이 우글거리리라. 사람들이 세바에서 찾아오리라. 금과 향료를 싣고 야훼를 높이 찬양하며 찾아오리라.“(이사야 60,3.6)

10세기경에 이런 관점이 널리 퍼진 것은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아마도 당시의 왕들에 대한 이상을 여기에 담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중세에 이들 삼왕이 성직자/지배자에 대한 하나의 이상이었던 목자들의 상을 보충하는 또 하나 지배자의 이상이 되었던 것! 그리스도교 신자인 지배자는 헤로데처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신경을 쓰지 말고 힘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자신의 제물을 바쳐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쾰른 대성당 제대부에 있는 삼왕의 유해를 모신 관. (사진 제공 = 박유미)

12세기 바르바로사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 재상이었던 쾰른 대주교 라이날트 폰 다셀이 이들 삼왕의 유해를 밀라노에서 쾰른에 모셔 오면서 이런 의미를 담아 이들 유해를 담은 유골함에 순례를 하는 것이 당시 샤를 대제의 도시 아헨에서 이루어지던 왕위 대관식 전례의 주요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을 순례하며, 별을 보고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났던 삼왕처럼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다지게 되면서 쾰른이 유럽의 순례지로 자리 잡고 이들 순례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3. 동방의 현인들을 이끌었던 별의 상징

동방에서 현인들이 보았다고 하는 별은 성서의 계약(약속)이 실현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징이다 :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엘에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민수기 24,17)

한편에서는 베들레헴의 별은 아마도 예수가 탄생하던 해(기원전 7년)에 있었던 아주 드문 천체내 항성의 구도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다. 요한 케플러가 처음으로 계산했던 것처럼 이 해에 목성과 토성이 하나로 겹쳐 지구에서 보면 마치 두드러지게 밝은 한 별처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동방의 현인들을 삼왕으로 기록했던 오리제네스로부터 많은 신학자와 천문학자들은 이 별이 그저 자연의 한 현상으로서 천체의 움직임,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당신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동방의 현인들을 이끄신 그분 고유의 방식이라고 보았다. 하늘에서 비치는 빛이었든지 마음에 비치는 빛이었든지. 그렇게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며 비춰진 빛을 상징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 아이들은 별을 들고 노래하며 각 집을 방문하고 그 집에 한 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글자를 적는다. (사진 제공 = 박유미)

4. 주의 공현 대축일 풍습: 가난한 아이들을 기억하며 별 들고 노래하며 집집 축복하기

우리에겐 성탄절 새벽송으로 전해졌지만, 서구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에 삼왕처럼 별을 들고 노래하며 각 집을 방문하고 그 집에 한 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글자를 적는다. 

언제부터인지 기원이 확실하진 않지만 언젠가부터 전해져 오다가 16세기께에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에 널리 퍼졌다, 당시엔 성탄 전부터 선생님과 남자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이 별을 들고 집집을 다니며 성탄에 관한 이야기도 해 주고 노래도 가르치고 단 것을 받아 가곤 하던 교육적 풍습이었다고 한다.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지역에서 모두 전해지는 풍습이었다.

가톨릭 지역에서는 세계 2차 대전 후에 독일을 다시 선교한다는 움직임과 함께, 세계의 선교를 돕자는 Mission이 태동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다른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을 돕는 구호활동으로 연결되어 자리를 잡았고, 개신교 지역에서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별을 들고 행렬로 노래하면서 동방에서 온 현인들의 이야기를 '거리에서' 공연하고 현재화하며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하는 교육에 더 중점을 두고 이어졌다.

'별 들고 노래하며 돌기' 풍습에는 15세기부터 이어지는 '집 축복'의 전통이 함께 연결된다. 집 문에 십자 표시를 하여 축성하던 옛 전통처럼 별을 들고 각 집을 돌며 노래도 부를 뿐 아니라 축성받은 하얀 백묵으로 집집에 '세기+C+M+B+연도'를 적어 한 해 동안 그 집을 축성한다.

C+M+B는 삼왕의 이름인 라틴어 가스파르와 멜키오르, 발타사르의 머리글자이면서 동시에 'Christus Mansionem Benedicat'의 머리글자로 "그리스도께서 이 집을 축복하소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랫동안 전해지는 주님 공현 축일의 의미를 돌아보며 그 의미를 담은 한 해의 축복을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가정에도 전한다.

"그리스도의 빛을 보고 찾아온 동방의 세 현인, 삼왕의 여행처럼 그분 축복 속에 흔들림 없이 그분의 빛을 보고 그 빛을 향해 나아가는 한 해 되소서!"

* 독일 리폴츠베르크 수도원성당 홈페이지의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이를 번역하고 몇 가지만을 보충하였다. http://www.klosterkirche.de/spirituelles-wissen/zeiten/epiphanias/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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