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봄을 맞아 새롭게, 전례력의 구성과 의미를 생각한다.
태양력, 태음력 자연의 흐름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확장되는 변하지 않는 신앙의 표상과 순환.

고양이 스트레칭.(사순절, 몸과 영혼 정화하기) 힐데가르트 자매회로 시작된 독일 알렉산더도르프 게르트루트 베네딕트 수녀원의 카툰. 자연과 몸과 영혼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유난히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봄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때에 시작한 글을 날이 풀리고 물길도 풀리고 굳은 땅도 풀리는 때까지 쓰고 있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고양이 스트레칭으로 추위에 웅크러들고 찌뿌둥한 몸을 풀고 새롭게 가볍게 시작하는 시간이다. 

교회에서도 사순절 시작과 함께 목욕재계하듯 사랑으로 겪으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부활의 기쁨을 맞기 위해 몸과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 내고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탄(동지)로부터 40여 일이 지나면 해도 길어지고 빛이 작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만물이 소생하는 봄기운이 움직인다. 요즘이야 농사도 어업도 계절이 없지만, 자연에 가깝게 살았던 예전엔 동서를 막론하고 동지로부터 해가 한 시간 이상 길어지며 봄기운이 시작되는 때, 풍요로운 생산과 복을 기원하는 축제를 지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이런 축제들을 교회의 가르침에 연결해서 의미를 담아 전했다. 아직 추위가 머물고 있고, 지난 추수의 양식들은 떨어져 가며 고통스러운 시기지만, 빛이 커지고 있고 그 안에서 생명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며 기쁨과 경건함으로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이들에게 그 빛의 힘을 담아 키워 내는 땅과 마리아의 정결례, 그리고 하느님께 봉헌되심으로써 '민족들에게 빛이 되시는 분을 보았던' 시메온의 찬미와 그에 담긴 구원의 의미가 아주 구체적으로 깊이 느껴졌을 것이다.

붓.(사순절, 몸과 영혼 정화하기) 힐데가르트 자매회로 시작된 독일 알렉산더도르프 게르트루트 베네딕트 수녀원의 카툰. 자연과 몸과 영혼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그래서 빛을 세상에 전한 어머니와 함께 몸과 영혼을 정화하고, 한 해 동안 모든 악에서 집안을 밝혀 줄 초를 축성해서 빛을 집에 모셔 갔다. 그리고 모든 어두움을 밝혀 주시도록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할 때에 이 초를 밝혔다. '마리아 빛의 축제'의 의미다. 24절기의 시작으로 봄기운이 시작되는 입춘에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들이 많기를 기원하는 지방을 집에 붙이는 우리 전통과도 비교할 수 있다. 해가 가장 짧은 동지에 자리 잡은 성탄절을 기준으로 자리 잡은 축일들, 태양력을 기준으로 날짜 변동이 없는 고정 축일들이다.     

그리고 봄기운이 펴지며 사순절이 시작된다. 봄의 첫 시작이자 유대교의 한 해 첫 달인 니산달 보름에 있는 파스카 축일 전후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있었다는 성서 기록에 따라 정해진 시기다. 그리고 부활을 기준으로 이전 준비기간 사순절, 이후 예수 승천(40일 후), 성령 강림(50일 후), 삼위일체 대축일(성령강림 후 일요일), 성체 성혈 대축일(성령강림 후 두 번째 목요일),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성령강림 후 세 번째 금요일과 토요일) 등 축일들은 유대인 축제 전통에 따라 정해지니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정해진 축일들이다. 그래서 이 축일들은 이동축일로 해마다 날짜가 다르다.   

태양의 순환에 따른 주기를 따르다가 사순절의 시작과 함께 성서 기록에 따라 달의 순환에 따른 주기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새삼스럽지만 같은 시간 안에서도 태양력과 태음력을 함께 담아 구원의 의미를 나타내는 교회력의 형성과 의미를 다시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분명 교회력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교회가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보여 주며 형성되어 온 것이다. 일 년의 순환 안에 반복적으로 전례로 표현되는 축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전례력"이라는 개념으로 한 해에 자리 잡은 축일의 특성을 향하기도 하고, "성년" 또는 "주님의 해"와 같은 개념으로 구원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일 년의 순환 안에서 기념하는 축일과 주일 미사전례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억하고 현재화하며 종말에 재림하시는 주님에 대한 희망을 일깨운다. 그런 한에서 교회력의 생성과 점진적인 구성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귀착된다.

가톨릭 전례력 구성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오늘날과 같은 교회력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을까?

초대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일요일을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로 경축하면서 일주일을 리듬으로 하는 전례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개별 성인을 공경하는 기념일들이 점점 더 많이 들어가며 교회력의 구성이 더 넓어지게 되었다. 성인 기념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기 자연종교 안에서의 축제와 관습을 포함하거나 시대적 징표와 자연의 주기에 연결된 관습과 요청을 전례에 담게 된다. 

4세기에 새로운 그리스도 축일들이 생겼다. 성탄과 주님 공현 축일 등이다. 기념해야 하는 중요한 의미라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언제 경축하는가는 당시 사람들에게 잘 이해될 수 있는 시기로 논의의 과정을 거치며 정해졌다. 태양신의 축제가 있었던 서방교회에서 빛으로 오신 분의 영향이 커지는 의미를 담아 동지 무렵의 태양신 축제를 성탄으로 연결해서 이해하도록 대체하면서 12월 25일이 성탄으로 정해졌다. 그래서 동방 정교회 쪽에서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그리스도 축일이 정해진 후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며 부활절을 둘러싼 전후로 사순절, 성주간, 부활절, 주님 승천, 성령강림 등을 배치된 부활주기가 이루어졌다. 성서에 기록된 바에 따라 달의 주기에 따른 날짜지만, 파스카 축일로 할 것인지 그 다음 주일로 할 것인지 부활절 날짜에 대한 논의를 거쳐 니산달 보름 다음 주일로, 유대교 파스카 축일과 겹치지 않는 부활절이 정해졌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탄주기도 대림절, 성탄시기와 성탄절들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구원사에 연결되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건에 관련된 축일들이 자리 잡았다. 그와 동시에 주님의 어머니 성모님 공경의 흐름에서 여러 성모 축일들이 자리를 잡으며 더더욱 신자들에게 선호되었다.

중세 중기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관련된 축일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가르침의 차원들 및 그에 대한 신심과 의미를 기리는 축일들이 자리 잡으며 오늘날과 같은 교회력이 구성되었다. 삼위일체 대축일, 성체 성혈 대축일, 예수 성심,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가정 축일, 성혈 축일과 같이 그리스도 공경의 특정 주제들과 관련된 축일들이다.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동정마리아 축일, 성모 승천, 성모 성심과 같이 성모님을 공경하는 축일들도 여기에 연결된다. 

이 밖에 동방정교회,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가톨릭의 자기 이해를 위한 교회 역사적 사건들의 축일과 기념일들이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전례포 직조장 캄푸그란지에서 만든 개신교 전례력.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개혁을 거치면서 많은 의미축일들이 그리스도의 구원사 우선으로 집중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성모 축일들도 그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거나 그리스도 축일로 집중하게 하였다. 

수많은 축일이 있고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의 측면들처럼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다양한 축제가 있지만, 이 모든 축일들이 성찬례를 경축함으로써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현재화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성탄 주간과 부활 주간이 두 개의 축을 이룬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다른 주일과 휴일 전례로 구약과 신약에 쓰인 것처럼 인간과 함께하는 하느님의 역사가 된다.

교회력의 구성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20세기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주일이, 예컨대 가정 주일, 세계선교 주일, 성소 주일, 청소년 주일, 평신도 주일, 추수감사 주일 등과 같이 어떤 특정한 원의에 봉헌하는 날로 규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의 날,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또는 자비 주일과 같이 세계적 주제에 대한 날들도 있다. 구원의 뜻을 오늘에 어떻게 담아 지낼 것인가, 시대의 징표에 어떻게 응답하는 전례를 이루어 낼 것인가로 변화되고 채워지는 것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것을 느끼며 부활의 기쁨을 향해 자신을 정화하는 시간, 교회력의 의미를 돌아보며, 모든 시간에 담긴 구원의 뜻보다 인간의 자만과 이기심이 더 크게 작용하는 혼란한 오늘, 적폐청산, 묵은 때 벗기기로 몸살을 앓는 시간들. 그 안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와 우리를 위해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평화의 도구, 플뤼에의 클라우스가 바친 청원의 기도를 드린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당신께 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게서 가져가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당신께 향하도록 촉진하는 모든 것을 제게 주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게서 저를 취하시고
제가 온전히 당신 것이 되게 하소서.

 

2017.12.28-2018.01.01 바젤, 떼제 청년 유럽모임에서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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