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 성녀 아녜스 안에서 그리스도에 속한 아름다움이 영원히 환하게 타오른다.

'성 아녜스', 가장 오래된 그림 중 하나. 4세기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에 있는 팜필리우스 공동묘지 무덤에 있다. (이미지 출처 = Scholarly discussions of medieval religious culture 웹사이트)

어린양의 신부가 되고자 13살 어린 나이에도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 하느님의 기적을 증거하고 온전히 자신을 바친 아녜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오랜 세월 그 이름과 삶을 기억하며 공경해 왔다.                 

그렇게 그의 이름과 삶은 세상 삶의 모든 위협과 어두움과 악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막아 주는 마음 깊은 곳, 맑고 투명한 공간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평신도로서 자신들의 소명 안에서.

오늘날까지 공경받고 있는 초대교회 성인들의 삶에 대해 정확한 기록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스스로 글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여성들의 경우는 더더욱 비석이나 그림, 그에게 봉헌된 성당과 같은 흔적에 담긴 성담으로 이어온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체험한 이들로부터 오랫동안 신앙의 모범으로 공경하는 것이 이어져 왔다면, 그에 대한 성담이 얼마만큼 사실인가? 라는 것보다 그 안에서 교회와 신앙의 선조들은 어떤 신앙의 덕과 모범을 보고 따르고 전하고자 했는가가 더더욱 중요하다.

시토회 시편기도에 있는 성 아녜스. 13세기 후반.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사실 아녜스라는 이름도 정확히 그의 이름인지 덕을 기리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전해 오는 성담에 연결된 그 이름의 의미를 풀어서 성녀의 삶에 담긴 신앙의 덕을 기억하고 기리기도 한다. 1월 21일, 258년 순교한 로마의 딸 아녜스 축일이다. 아녜스 성녀는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동방정교회와 영미 루터교에서도 공경받는 성녀인데, 특히 그리스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에서 매우 높이 인정한다. 그리스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례 안에서 이름을 들어 공경한다. 동정순교자들 중에서도 첫 번째로 미사 성찬례 양식에 기도로 들어갔다. 동정순교자들 중에 일찍부터 성 아녜스처럼 커다란 공경을 받은 이는 없었다. 미사 제1양식과 “로마법전”에서 그의 이름을 들어 덕을 기린다.

성담에 따르면 : 아녜스는 로마 부유한 귀족의 딸로 태어났고 미모가 뛰어났다. 많은 남자가 그를 좋아했지만 스스로 그리스도와 약혼하고 그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서약한 아녜스는 자신의 뜻을 전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녜스가 13살이 되었을 때 마침 그 지역 총독의 아들이 청혼하였으나 이렇게 거절하자 자존심에 상처받아 격노한 그가 아버지에게 전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것이 밝혀졌다. 총독은 온갖 고문기구를 앞에 두고 로마의 신에게 절하고 배교하도록 위협하였으나 아녜스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순결하게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머리로 몸을 가린 성 아녜스', 프랑스 르망의 생 줄리앵 대성당 색유리창. 13세기 중반.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격분한 그는 아녜스의 옷을 모두 벗겨 매음굴에 보내 그의 순결함을 더럽히려 하였다. 그러나 아녜스의 머리가 자라 온몸을 덮고 천사의 도움으로 그가 들어간 방이 강한 빛으로 비춰져서 아녜스에게 하얀 옷이 입혀진 것처럼 그녀의 몸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그를 범하려 다가간 젊은이는 급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아녜스가 기도로 청하여 다시 살려 주었다. 놀란 총독은 두려움에 그녀의 판결에 더 이상 손대려 하지 않았고 다른 재판관이 화형을 명하였다. 그러나 아녜스가 불길에 들어가자 불길이 갈라져 그를 피해 가며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병정 하나가 단도로 아녜스의 목을 찔러 죽게 하였다. 4세기 암브로시오 성인은 자신의 성인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녜스는 기쁜 걸음으로 서둘러 재판장으로 나아갔다. 인위적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머리를 꾸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장식하고 꽃 화환이 아니라 덕의 화환을 쓰고 갔다. 모두가 눈믈을 흘렸지만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한 번의 제물로 순결함의 순교자이자 하느님 공경의 순교자라는 이중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동정녀로서 순교의 관을 쓰게 되었다.“

'불길 속에 있는 아녜스', 로마 아고네 성 아녜스 성당, 1660년. (사진 제공 = 박유미)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부모와 친지들이 아녜스의 시신을 거두어 노멘타나 길에 있는 카타콤바에 묻었다. 후에 아녜스 카타콤바라 이름 붙여졌다.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를 무시하고 장례를 치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아녜스의 양언니 에메렌시아나와 마카리아를 비롯한 친구들이 기도하며 시신을 지켰는데 결국 이들도 기도하는 동안 반대자들에게 죽임을 당해 같은 카타콤바에 묻혔다. 이들이 무덤을 지킨 지 8일째 되는 날 밤 아름다운 처녀들이 둥글게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한가운데에 황금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의 약혼반지를 끼고 있는 아녜스가 있었다.

아녜스의 오른 쪽에 세례자 요한이 가리켰던 하얀 어린양이 있었다. 이로부터 아녜스는 어린양과 함께, '어린양의 신부'로 많이 표현된다. 4세기부터 전해 오는 성녀 아녜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그림은 소매가 넓은 고대 신부의 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아녜스를 표현하고 있다. 그 후 그의 이름이 뜻하듯 어린 양을 안거나 어린 양이 함께하는 표현이 나타나며 이로써 '그리스도(어린양)의 신부'라는 뜻을 나타낸다.  

성 아녜스, 산타 아그네제 푸오리 레 무라 아녜스 기념성당 모자이크, 630년경. (이미지 제공 = 박유미)

258년경에 순교했지만 아녜스 성녀에 대한 공경이 기록이나 증거로 나오는 것은 35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딸 콘스탄시아가 아녜스 성녀의 덕과 힘을 체험하고 아녜스의 무덤에 그에게 봉헌하는 성당을 지으면서부터다. 담장 앞의 아녜스 성당이라는 의미의 상트 아그네제 푸오리 레 무라 성당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성당은 7세기 호노리오 교황이 조금 옮겨서 재건한 성당이다. 그리고 이어서 암브로시오 성인과 예로니모 성인이 자신들의 "성인록"에 기록을 남겼다.

13세기 제노바의 대주교 코라지네는 자신의 "황금 성담집"에서 "그리스도가 성 아녜스를 믿음의 반지로 연결하고, 덕으로 옷을 입혀 고통으로 흘린 당신의 피로 그를 표현한다. 그렇게 아녜스를 당신 사랑에 연결하여 천상 영광의 보화들로 그를 풍요롭게 하셨다"고 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결합하여 자신을 바치려는 그의 덕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사제들의 모범'으로 사제들의 길에도 깊이 연결되었다.  

성담과 함께 아녜스라는 이름의 의미에서도 교부들은 신앙의 깊은 뜻을 찾아 전한다.

아녜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순결한 자'를 뜻하는데, 그리스어에서는 '맑은'이라는 뜻을 지닌 agnos와 '거룩한'이라는 뜻을 지닌 hagios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 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맑고 거룩한 곳, 그곳에서 우린 맑고 투명하다. 거룩하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율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양을 안고 있는 성 아녜스', 독일 보이론 베네딕도수도회 기도상본, 1900년경.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독일어 단어를 보면 그 의미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스어에서 Agnos와 연결되어 있는 hagios라는 말에서 '울타리'란 의미를 지닌 독일어 ’Gehege’, 'Hag'이라는 단어와 '편안한'이란 의미를 지닌 'behaglich'라는 단어가 파생되어 나왔다. 장미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에 앉아 계신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그림들처럼, 바깥의 어떤 어두움이나 악도 들어올 수 없는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마음의 공간을 그려 볼 수 있다. 우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거짓 없이, 왜곡됨 없이 흠없이 맑고 투명하게, 상처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

라틴어로 'Agna'는 어린 양을 뜻하며, 어린 양은 순결함과 온전한 희생제물로 여겨졌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처럼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하며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선포하였던 이름이기도 하다. 그 이름과 연결된 성담을 통해서도 아녜스 성녀는 종종 팔에 어린 양을 안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팔리움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성녀 아녜스의 이름과 성담에 담긴 뜻에 따라 오랜 공경의 역사를 담고 교회에 내려오는 전통이 있다. 해마다 1월 21일 아녜스 축일에 성녀의 무덤에 세워진 상트 아그네제 푸오리 레 무라 성당 아녜스 제대에서 두 마리의 양을 축성한다. 그리고 그 양털로 팔리움을 만든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기 위해 제의 위에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좁은 고리 모양의 양털 띠로 흰 모직천으로 만드는데, 아녜스 축일에 축성되는 어린 양의 털로 이 모직천을 만드는 것이다. 교황은 이 털로 만든 팔리움을 세계 교회 모든 대주교들에게 선사한다. 이것은 ‘주교 임무의 충실성’(plenitude of the pontifical office)과 교황 권위에 참여함을 상징하면서, 교황청과 일치를 보여 주는 외적 표지다. 또한 이것은 가장 약한 자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성 아녜스에 대한 커다란 공경을 보여 주며 그의 덕을 따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성 아녜스', 로마 상트 아그네제 푸오리 레 무라 아녜스 기념성당 제대화. (사진 제공 = 박유미)

맑고 아름다운 소녀, 약한 소녀지만 온전히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용감하게 나아가는 그에게, 범하고 싶은 어느 누구도 감히 다가갈 수 없게 했던 빛의 힘. 불길도 잡을 수 없었던 맑은 사랑이 지닌 기적과 빛이 지닌 치유의 힘을 보여 주는 성녀 아녜스.   

아녜스 성녀의 이름과 삶은 그렇게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소명 안에서 삶의 모든 위협과 어두움과 악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막아 주는 마음 깊은 곳, 맑고 투명한 공간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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