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2월 31일(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루카 2,22-40

아는 바와 같이, 루카는 예수님의 유년기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혹함과 약속들, 걱정과 기쁨들은 천사의 선언과 주님의 탄생이 가져온 모습들이다.

이제, 주여!

루카는 예수님의 가족이 백성에, 유대 민족의 종교와 희망에 속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늘의 성서는 예수님의 성전 봉헌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내놓는다. 루카는 “정결례”(루카 2,23)에 대해 말하는데, 그러나 사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레위 12,8) 여성인 마리아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레위기에 따라 속죄 제물을 바쳐야 했다. 만일 “양 한 마리를 바칠 힘이 없다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구해야 했다.”(레위 12,8, 혹은 5,7) 마리아가 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루카 2,24) 그것은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봉헌”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복음사가가 명기한 예수님 가족의 상황이다.

성전에서 “시메온이라는 사람이”(2,25) 메시아인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이스라엘의 희망이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메온은 백성 가운데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성전의 사제도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운 찬양가를 부른다. 이제 그는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2,29) 그러나 겸손한 유대인인 시메온은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에게도 말한다. 이 부분이 예수님에 관하여, 또한 마리아에 관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포된 마지막 예언이다. 예수님은 작금의 질서를 뒤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일어나고, 어떤 이들은 쓰러질 것이다. 메시아의 증언은 백성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하고, 그래서 그분은 반대의 징표가 될 것이며, 저항과 거부의 표적이 될 것이다.(2,34)

이 선언의 함축된 의미가 또한 마리아와도 관련이 있다는 짧은 구절이 이어진다. 메시아의 생각은 마리아의 마음을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프게 할 것이다.(2,35) 마리아는 이스라엘에 속한다. 믿음은 과정이며, 고통스러울 수 있다. 주님의 어머니가 삶에서 겪는 고통은 메시아의 일에 참여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것이다.

'시메온의 찬가', 렘브란트. (1631) (이미지 출처 = 위키아트)

지혜와 은총이 자라나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사람 안나는 루카가 표현한 대로 “여자 예언자”(2,36)로서 이 시점에 등장한다. 안나도 “보잘것없는 남은 자,”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을 대변한다. 시메온의 나이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도 삶의 마지막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안나는 매우 나이가 많은 여인으로 표현된다. 안나도 아기의 오심에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2,38) 그 소식을 전한다.

이러한 예언들은 희망과 고통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사랑으로 보호받는 이 아기가 지혜와 은총이 풍부해지는 것을(2,39-40) 방해하진 못한다. 아이는 가족과 살며, 이 사랑에 응답한다. 이것이 제1독서인 집회서의 주제다. 바오로 서간의 구절도 가족관계들을 다루고 있다. 비록 가족관계에 대한 바오로의 어떤 생각들이 의심할 바 없이 당대의 사고방식에 찬사를 보낸 것이긴 해도, 여기에서 참으로 중요한 점은 바오로가 이러한 결속들의 기반이 무엇인가를 말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몸”(콜로 3,15)을 이룬다는 것이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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